제주 4·3 희생자 직권재심 재판에 참석한 유족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 한라일보 자료사진

[한라일보] 제주 4·3 당시 누명을 쓰고 억울한 죽임을 당하거나 행방불명 된 제주 4·3 희생자들에 대해 올해 첫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제주지방법원 제4-1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10일 제주 4·3 군사재판 수형인 60명을 상대로 제20차, 제21차 직권 재심 공판을 잇따라 열어 피고인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아무리 죄명이 무시무시해도 증거가 없으면 인정할 수 없다"며 "피고인들이 내란죄나 국방경비법 위반죄를 저질렀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무죄를 선고한다. 이 판결로 조금이나마 한이 풀어졌으면 좋겠다"고 위로했다.

이날 누명을 벗은 4·3 희생자 대부분은 대전·목포·인천형무소 등 다른 지역 형무소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가 사망하거나 한국전쟁이 터지고 난 후 행방불명됐다. 60명 가운데 11명은 1948년에서 1949년 사이 1·2차 군법회의에서 내란죄를, 나머지 49명은 국방경비법 위반죄를 뒤집어 썼다.

이날 재심 재판에서도 한 맺힌 유족들의 증언이 이어져 법정을 숙연하게 했다.

故 송도윤씨의 아들 송병기씨는 "토벌대를 피해 아버지, 어머니, 누이동생과 함께 산으로 피신했다가 얼마 안돼 잡혔는데 아버지만 풀려나지 못했다"며 "어머니는 아버지 생사라도 알고 싶어 용한 점집을 찾아다니곤 했다"고 회고했다. 송씨는 어렸을때 목격한 4·3의 참상을 또렷이 기억했다.

그는 "마을이 불에 타는 모습과 사람이 죽는 모습을 봤다"며 "심지어 양손을 뒤로 묶고 라이터 불로 지지는 모습도 봤다. 바짓가랑이에 오줌을 쌀 정도로 겁이 났다"고 증언했다. 송씨는 "그 때의 일을 다 잊어버리고 싶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故 고수영씨의 조카 고채은씨는 "(4·3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큰아버지인 故 고수영씨가 희생돼) 아버지는 고아 아닌 고아로 자랐다. 왜 수많은 도민들을 못 살게 굴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중산간 농촌지역에 태어난 죄 밖에 없는데…"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故 김창식씨의 외조카 김군선씨는 4·3때 외삼촌을 포함해 5촌 삼촌, 아버지가 희생된 사실을 언급하며 "세 집안 가족들이 대전형무소로 끌려갔다가 골령골에서 집단 총살됐다"며 "세 집안에서 (남자는) 저 혼자만 살아남았다. 이런 비극의 역사를 철저히 밝혀달라"고 말했다.

故 장찬진·장찬립 형제의 외조카 조평림씨는 "법정에서 두 분의 이름을 (부를수 있다니…) 목이 메어서 말을 못 하겠다"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한편 이날 60명이 무죄를 선고 받음에 따라 직권 재심을 통해 누명을 벗은 제주 4·3희생자는 총 581명으로 늘었다.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