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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22] 2부 한라산-(18)신라 향가에 나오는 오름
'오름'이라는 말의 기원, '오르다'의 명사형일까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입력 : 2022. 12.27. 00:00:00
향가 혜성가에 나오는 악음(岳音)제주어 '오름'과 같은 말

[한라일보] 그럼 오름은 무슨 뜻일까? '오르다'의 명사형일까? 신라 향가에 혜성가가 있다. 향찰식 이두로 '구리동시정질(舊理東尸汀叱) 건달파의유오은성질힐양망양고(乾達婆矣 游烏隱城叱兮良望良古) 왜리질군치래질다(倭理叱軍置來叱多) 봉소사은변야수야(烽燒邪隱邊也藪耶) 삼화의악음견사오시문고(三花矣岳音見賜烏尸聞古)…'라는 노래다. 이 노래를 학자들이 풀었는데, 그 내용이 '옛날 동해가에 건달파가 놀던 성을 바라보고, '왜군이 왔다'고 봉화를 든 일이 있었다. 세 화랑이 산 구경 간다는 소식을 듣고…'처럼 되어있다. 마지막 구절 '三花矣岳音見賜烏尸聞古…'를 양주동 박사는 '三花아ㅣ오람보샤올듣고…'라고 풀었고, 그 후 '세 화랑이 산 구경 간다는 소식을 듣고…'라고 풀이한 이도 있다. 두 해석 모두 이 '악음(岳音)'이라는 부분을 '산'이라고 보고 있다는 점에선 같다. 당시에는 산을 '오람'이라고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악음(岳音)'의 '악'을 '오라'의 훈독자 표기로, 음(音)을 'ㅁ'의 말음 첨가 표기로 봐서 '오람'으로 읽은 것이다. 그런데 이 '오람'이라는 독음이 '오르다'의 어간 '오라-'를 명사형으로 변형한 것이라고 봤다는 주장들이 보인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신라 때는 '산' 그 자체를 '오람'이라 한 것인가 아니면 '오르다'의 명사형을 '산'이라 한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만약 '악음(岳音)'이 '오르다'의 명사형이라면 '세 화랑이 산 구경 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틀린 해석이 된다. 현대어에서 '산'을 '오르다'의 명사형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오르다'의 명사형은 그저 '오름'일 뿐이니 '오름 구경 간다는 소식을 듣고…'로 해야 맞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올라가는 것'이라는 그 행위 자체를 구경하신다는 것이니 내용상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흉노 고분군으로 유명한 몽골 노인울라, 보크룩 스베타(1924~1925) 지에 실린 사진(표트르 코즐로프 촬영)

‘오름', 산 가리키는 ‘올'의 파생어

이 오름이라는 말이 '오르다'의 명사형일까? 양주동 박사는 '악음(岳音)'이라는 말의 '악'을 '오람'의 훈독자 표기로, 음(音)을 'ㅁ'의 훈독자 표기로 봐서 '오람'으로 읽고, '오르다의 어간 '오라-'를 명사형으로 변형한 것이라고 봤다. 같은 뜻으로 '오름'은 중세어 '오라-'의 명사형이라 주장한 이도 있다. 그러면서 이 말은 몽골어 산정 또는 정상을 의미하는 '오로이(oroi)', '오르다'를 의미하는 '우르구호(urguho)', '산봉우리'를 의미하는 '울라(ula)'와 계통적으로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오름은 학계에서 국어의 '오르-' 어간에 'ㅁ'이 붙어 만들어진 파생어로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점차 제주어에 대한 연구가 확대되면서 만주어나 몽골어에서 차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편 신라의 향가와 중세어에 '오름(岳音)'을 뜻하는 표기가 나타나는 것으로 볼 때 '오름'이라는 말은 몽골어에서 차용한 것이 아니라 신라어 계통의 고유어거나 몽골어와 언어학상 동일 계통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삼국유사의 향가 혜성가 부분

그런데 이러한 종래의 견해와는 상당히 다른 의견도 있다. 현대국어에서 제주어에만 보이는 '오름', 이 말의 어근은 '올'이라는 것이다. 국어 '오르다(登)'의 어근도 '올'인데 이는 '오름'의 어근 '올'과 같다. 따라서 국어의 고대어에서 '올'이 '산'의 뜻을 지니고 있었는데 소실어가 되었고 제주어 '오름'과 '오르다'라고 하는 동사에 마치 화석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만주어 'alin(산)', 퉁구스어 'uro(산)', 몽골어 'aula(산)' 등과도 같은 어원이고, 일본어 'oro(岡)'의 어근 'or'이 국어 '올(산)'과 어원이 같은 말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일본어 oro를 나타내는 한자 岡(강)은 산등성이, 고개, 비탈길(비탈진 언덕의 길), 언덕, 작은 산을 뜻하는 '산등성이 강(岡)' 자이다.

동사와 형용사는 명사에서 전성
'오름'을 '오르다'의 명사형으로 이해하려면 풀 수 없어

이러한 주장의 요체는 우리말에서 '동사의 어간과 형용사의 어간은 명사에서 전성된 것'이라는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靴)→신다(履), 띠(帶)→띠다, 뭇(束)→묶다'와 같은 것들이다. '신다'의 명사형은 '신음', '띠다'의 명사형은 '띰', '묶다'의 명사형은 '묶음'이라는 방식으로 제주도의 '오름'을 '오르다'의 명사형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풀 수 없는 것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신(靴)→신다(履)를 보자. 요즘은 제주도에서도 흔히 신발이라고 하지만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신이라고 했다. 왜 신발로 변했는지 모르지만 가죽신, 고무신, 짚신과 같이 땅을 딛고 서거나 걸을 때 발에 신는 물건은 신이고 그걸 착용하는 행위는 '신다'이다. 신만이 아니라 버선이나 양말을 발에 꿰는 것은 다 '신다'라고 한다. 신이라고 하는 명사에서 동사로 전성된 것이다.

띠(帶)→띠다에선 어떤가. '치마가 흘러내리지 않게 허리에 띠를 띠다'처럼 '띠나 끈 따위를 두르다'의 뜻을 나타내는 '띠다'라는 동사는 '띠'에서 나온 것이다. 뭇(束)→묶다에서도 마찬가지다. '묶다'라는 동사는 '뭇'에서 나온 것이다. '뭇'이라는 말은 '한 속. 두 속, 세 속'처럼 한자 말로 하거나, '한 묶음, 두 묶음, 세 묶음'이라고 하는 말에 밀려 생소해졌지만, 지금도 짚, 장작, 채소 따위의 작은 묶음을 셀 때, 생선을 묶어 셀 때, 특히 김을 묶어 셀 때 흔히 사용하고 있는 말이다. 이러한 '뭇'이 '뭇다'로 되고 이게 다시 'ㅁㅜㄳ'→'묶다'의 과정으로 변해 왔다.

이러한 예를 좀 더 들어보면, '누비다'는 '누빔'이 아니라 '누비(衲)', '재다'는 '잼'이 아니라 '자(尺)', '밟다'는 '밟음'이 아니라 '발(足)', '꾀다'는 '꾐'이 아니라 '꾀(謀)', '울다(泣·鳴)'는 '울음'이 아니라 '울(音)'에서 전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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