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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19)송산동 보목마을
바다와 가장 아름답게 만나는 천혜의 마을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입력 : 2022. 10.14. 00:00:00
아무리 추운가 하더라도 이 마을에 들어서면 포근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마을 중심을 S자 형태로 가르며 바다로 향하는 정술내를 따라 커다란 나무들이 늘어서 있어서 더욱 안온한 분위기에 휩싸이게 되는 곳. 어떤 완결성이 보이는 구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엄격한 선비마을 이라는 선입견이 더해져서 그럴 것이다. 600여 호 마을에서 교육자만 400명 가까이 배출했으니 '한 집 걸러 선생님 한 분이 계시다'는 보목리에 대한 인식이 과장 된 것이 아니다.

보목이라는 마을 명칭은 남사록에 등장하는 보애목포(甫涯木浦)에서 왔음이 유력하다. 병선을 댈 수 있는 곳이라는 기록으로 보더라도 중요한 포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네 개의 동네가 각 동네마다 바다로 나가는 포구를 축조해 바다와 함께 했다. 사래개, 구두미개, 큰머리개, 배개가 그 이름들이다. 그만큼 어족자원이 풍부해 작은 목선들을 수용 할 수 있는 포구 면적이 필요했던 마을. 동네마다 포구를 보유했던 섬 제주의 마을은 찾기 힘들다. 마을 명칭에서 찾게 되는 보목리의 역사적 특징은 자연환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서귀포시제 실시가 되면서 서귀동 일부와 동홍동, 토평동 일부를 합해 송산동이 만들어질 때 보목리도 여기에 포함됐다. 동쪽으로는 세경물을 경계로 하효동과 접하고, 북쪽으로는 신효동 소학남마루와 토평동 마시물, 서쪽으로는 빌로통분지와 경계를 이룬다. 남쪽 앞바다 섭섬은 면적이 약 4만여 평, 높이가 155m 되는 보목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아름다운 경치 못지않게 수산자원의 보고로 어패류들이 주변에 풍부하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자리돔. 대대로 테우들이 많아서 자리돔 어업이 왕성했던 마을이다. 매년 자리돔이 많이 잡히는 시기에 '자리돔축제'를 열 정도로 자리돔 하면 보목리를 떠올리게 된다. 수중경관이 빼어나기로 세계적인 스쿠버들이 탄성을 자아내는 곳이기도 하다. 섭섬이 간직한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아열대식물 파초일엽. 우리나라에서는 이 곳에서만 자생하는 희귀식물로 천연기념물 제1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제지기오름에 올라 마을 전체를 내려다보면 '바다의 신이 빚은 예술품'이라고 하는 어느 시인의 찬사가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 아름다운 공간에 들어와 설촌해 살기 시작한 것은 비문들을 근거로 600여 년 전, 바닷가 바위들과 암반들이 광범위하게 펼쳐져 조간대를 이루는 범위는 썰물 때에 쉽게 해산물을 잡을 수 있는 여건이 된다. 바닷가에서 제공받는 먹을거리들을 통해 풍요로운 식탁을 유지할 수 있었으리니 만족을 아는 사람들이 살기에는 부러울 것이 없었을 것이다. 너른 조간대가 지닌 생태계는 학술적 가치와 함께 체험의 장으로 발전시켜갈 필요성이 다분하다. 밀물과 썰물이 시시각각 변화시키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해안선이 아기자기하게 이어지면서 나지막한 절벽과 조화를 이루며 정겨운 명칭들이 만들어져 있다. 엉캐물, 큰개머리, 조근개, 귀영여, 방석덕, 귀영이, 소래개, 쌈싸니코지, 누알, 수루막, 구두미, 동애기 등 모두가 조상들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했던 공간이다. 모두가 아름다운 경관 자원이기도 하다.

바닷가 경관으로는 지중해 어느 관광지와 견주어도 경쟁력에 있어서 뒤지지 않을 마을. 섬 제주의 독특한 어업문화와 결합해 마을공동체 중심의 발전모델을 만들어간다면 모름지기 필적할 곳이 없을 것 같다. 이미 도농복합의 단계로 접어든 면모를 보이고 있는 마을 분위기. 그래도 마을 안길을 걸어 다니다 보면 길들이 주는 정감은 오랜 세월 간직해온 이웃과 이웃의 정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어떻게 발전할 것이냐 묻기보다 앞으로 마을공동체의 무엇으로 '내면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냐' 끊임없이 묻고 있는 듯하다. 무한 잠재력에 대한 자신감에서 내실을 쌓아가려는 묵시적 결의와도 같다. 그러한 확신이 가져올 공동체의 미래를 향해 숱한 난제들을 극복하여온 뚝심이 더욱 아름답다. 외부적 요인에 휘둘리지 않고 차곡차곡 이 보배와 같은 마을의 미래를 열어가는 생동감 넘치는 모습에서 마을공동체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게 되는 곳. 가진 것이 많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높이려는 마음가짐이 더욱 소중한 보목리다. <시각예술가>



정술내 옆으로 포구 가는 길
<수채화 79cm×35cm>


이틀을 퍼붓던 비가 방금 전 갰다. 모든 물상이 젖어 있는 상태는 물을 가지고 그리는 수채화의 입장에서 표현 욕구를 증폭하는 소재다. 아직도 하늘은 젖어 있다. 멀리 바다 수평선 쪽에는 환한 햇살이 비치는 것 같지만 비를 품은 먹구름은 아직도 마을 하늘을 모두 떠난 상황이 아니다. 하여, 아스팔트에 듬뿍 뿌려진 빗물은 멀리서 날아오는 광선을 반사하고, 젖은 돌담과 건물 벽은 오랜 세월을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확연하게 보여준다. 시월임에도 얇고 넓은 잎사귀를 가진 나무가 수분을 머금고 싱그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아열대 식물 파초일엽이 자랄 수 있는 기후 공간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포구 가는 길이라는 좁으나마 한쪽에 인도의 역할을 하기 위한 조치가 정겹다.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지붕 색들이 우연하게도 보색 대비를 이루며 화면에 탄력을 생성시킨다. 비가 개인 오후, 우산을 접고 바라보는 풍경. 그냥 무심코 지나가게 되는 우리의 일상성을 저기 급커브 지역에 서있는 반사경에 비춰본다. 그림으로 마주하는 이야기에 출연한 물상들에게 비라고 하는 날씨 변수를 부여해 더욱 찰진 이미지를 얻으려 했다. 저 집들은 모두가 누군가의 집이다. 또한 저 집들은 누군가의 마을 안에 있다. 길과 길로 이어진 어떤 결속의 공동체 공간 안에 있다는 생각을 그리는 동안에 거듭 되새김했다. 숱한 사연들로 아름답게 수놓아진 평화로운 시간, 이 소박한 공간이 입증하고자 하는 작은 노력이 아닐까?

섭섬에 대하여
<수채화 79cm×35cm>


모습 자체로 하나의 山이다. 뫼 山이라는 한문이 공간 확대돼 세상에 놓여 있다. 하늘과 바다의 여집합. 그러면서도 하늘과 바다를 포함하는 산을 바라본다. 사각이라는 화면, 그 가로 세로 비례 속에 등장하는 저 산은 오직 화면과 비례관계를 요구했다. 어디에 위치하겠다는 것 또한 스스로 결정하겠다고. 나머지는 모두 군더더기이기에 빼라는 당당한 고집까지. 심벌리즘을 구현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보목리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를 스스로 밝히겠다는 것. 해가 뜨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능선들은 명암을 잡아들여 존재감을 키운다. 바닷가 조간대에서 그렸다. 준령들이 느껴지는 곳을 찾아 될 수 있는 한 가까이에서 화면 비례에 합당하도록. 보목마을이라는 공간의 입장에서 앞산이다. 바다밭 가운데 산이 솟아 있으니 그럴 법도 하거니와 바다를 막아선 생동감만큼 마을에 안온함을 부여하는 역할모델이다. 회화적 표현의 방식은 동서양 화법이 뒤엉켜 있다. 섬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산을 그리려 했으니 불가피한 선택이려니. 그리는 과정에서 얻은 엉뚱한 발상이 있다. 섭섬의 섭은 혹시 攝(다스리다, 거느리다)이라는 글자가 아닐까? 지극히 개인적인 상상력이라고 하더라도 저 강력한 존재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뜻이 아니고서는 다른 대안이 없어 보인다. 한문을 보니 귀가 셋이나 달렸다. 듣고 또 듣고, 하염없이 들어서 그 받아들이는 포용의 자세로 다스리고 거느리는 힘. 저 옹골찬 기상이 품고 있는 구체적인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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