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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춘옥의 하루를 시작하며] ‘보수’에서 최고로 ‘진보’한 두 여인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입력 : 2022. 09.28. 00:00:00
[한라일보] 지난 추석 연휴 동안 넷플릭스의 시리즈 물 '더 크라운'을 보기 시작했던 것이 끝맺기도 전에 살아있는 역사 드라마의 주인공인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 소식을 들었다. 필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인데도 괜스레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이제 막 친하게 된 이웃이 멀리 이사를 가버리는 느낌이 꼭 그러할 것이다.

사실 꽤나 긴 드라마 '더 크라운'에서 필자가 눈독 들인 것은 화석처럼 굳어진 화려한 군주의 생애가 아니었다. 인류 역사에 수많은 명언을 남겨 대명사 급 반열에 오른 '처칠'이 궁금했고,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대처'에게 유독 관심이 쏠려 있었다. 필자의 무지한 생각으로는 이 두 명의 강력한 수상들 틈에 낀 보수적인 입헌군주의 '작은 왕권'의 형상은 그다지 존재감 있는 '왕' 아닌, 심하게 말하자면 '마리오네뜨' 정도였다. 그러나 나중에 터무니없는 오판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무척 부끄러웠다.

노자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말없이 정치 위에 군림한 보이지 않는 '용'이었다. 유달리 호전적이고 말 을 잘하는 나이 많은 처칠에게도 군주로서 따끔한 충고를 서슴지 않았고, '권위가 없는 힘은 무용지물'이라면서 대처의 의회 해산을 막아, 권력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게 해 스스로 '품위 있는 퇴진'을 하게 했다. 국민들의 희망과 이상으로만 존재하는 왕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로 국민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수상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일을 하다 생겨나는 문제들을 재빠르게 간파하고 이를 해결하게 했다. 그것은 영국 국민과 함께 사는 '이웃집 어른'의 모습이었다.

드라마 '더 크라운'에 비친 두 여인의 정치관은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제왕의 칼'을 연상케 했다. '군주의 칼은 눈에 보이지 않아 백성을 편안케 하고 제후의 칼은 힘을 사용하여 정의라는 이름으로 백성을 두렵게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보수당 출신의 대처 수상이 국민들을 억누르면서 권력을 탐했던 욕심 많은 제후의 모습을 보였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대처가 지양했던 '작은 정부',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해서, 절세하고 당면한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고자 했던 강력한 대응책이었다. 복지 정책에만 의존하려 드는 나약한 국민들 스스로 강하게 일어서게 하려는, 근면함과 성실한 노력의 가치를 중시하는 식료품 가게의 딸인 대처의 선택이었다.

여왕과 대처 수상, 두 만남과 격돌을 지켜보다 보니 둘은 참으로 다른 듯 닮은 한 쌍이었다. 정치가는 엄한 아버지의 칼이었고, 입헌군주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미소였다. 그런 부모 사이에서 자긍심 있게 자라나는 아이들은 건강한 어른이 된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부모가 둘 다 없다. 앞에서 주고 뒤에서 뺏는 복지 정책에 높은 세금과 치솟는 물가에도 정신 못 차리고 그저 실업급여라는 '공돈'을 벌기 위해 '놀일'만 일삼는 아이들이 갈수록 많다. 이래저래 큰일이다. <고춘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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