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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병의 목요담론] 백로는 백번 생각하며 걷는다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입력 : 2022. 08.18. 00:00:00
[한라일보] 연달아 좋은 일이 생기면 저절로 어깨춤을 출 정도로 기분이 좋다. 특히 시험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조선시대의 과거시험은 초장과 중장 두 단계를 거쳐야 최종 합격할 수 있었다. 유능한 인재를 선발해야 하고, 공정한 기회를 보장해야 하고, 참으로 어려운 과정이다. 지금의 대학입시, 취업시험도 마찬가지다. 필기시험을 통과하더라도 면접을 비롯한 논술, 발표, 가산점, 적성, 인성, 범죄 등등 거쳐야 할 관문이 한 둘이 아니기에 대문을 확 열어 제치는 일이 어지간히 힘들다. 오죽하면 가문의 영광이라 축복할까.

선비들이 즐기는 화조도 병풍을 보면, 옛 사람들의 염원과 재치 그리고 해학을 자연물과 조화롭게 그려 놓았다. 연꽃, 매화, 국화 등의 꽃과 새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으며, 새는 오리, 두루미, 백로 등이 등장한다. 멈춤(꽃)과 움직임(새)의 조화는 자연의 섭리를 존중하고, 짝을 이룬 암수는 행복과 장수를 상징한다. 특히 백로의 하얀 깃털색과 긴 다리에서 풍기는 고고한 자태는 선비의 앞길과 품성을 상징한다. 백로를 소재로 한 글과 그림을 보면, 연꽃이 피는 습지에 백로 한 마리가 서 있다. 일로연과(一路連科)는 한 길로 연이어 과거에 급제한다는 의미로, 한길(一路)과 백로 한 마리(一鷺) 그리고 연이은 과거 시험(連科)과 연밥(蓮果)은 발음이 같은 데서 유래됐다. 연꽃과 연밥은 동시에 피거나 맺지 않지만, 꽃과 열매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식물이다. 선비 입장에선 연이어서 합격해야 하는 과거시험에 대한 욕심을 그려놓은 것이다. 또한 연꽃은 더러운 물속에도 꿋꿋하게 자라는 청백함을 보여주기 때문에, 연못에 앉은 하얀 백로는 바로 선비의 강직하고 담대함을 표현한 것이다.

선흘곶자왈에 들어서기 전에 꼭 들러보는 곳 중에 하나가 높은물 습지이다. 북촌리 남쪽에 위치한 연못 습지로 겨울에는 수십 마리의 원앙이 매년 찾는다. 한여름에도 쇠물닭, 흰뺨검둥오리 그리고 백로류가 찾아와 피서를 즐긴다. 후덥지근한 날, 물가를 찾아 휴식과 먹을거리를 둘 다 해결하니 얼마나 지혜로운가. 때마침 연꽃 사이에 숨어 있던 중대백로와 왜가리가 날아오른다. 파란 하늘, 맑은 물, 하얀 백로, 녹색의 연잎과 자주색의 연꽃 그리고 곱게 익어가는 연밥을 보고 있노라면, 자청비의 서천꽃밭보다도 더 황홀한 모습이다. 하늘까지 담아놓을 정도로 더없이 높은 못이다.

연꽃은 인공 습지에 많다. 물이 흐르지 않은 습지의 휑함과 탁한 물의 색깔을 살짝 감춰준다. 부처님의 탁월함과 혜안을 백성들의 마음속까지 심어놓은 것이다. 누구나가 다 높은 곳으로 가려고 할 때, 백로는 더 낮은 곳으로 내려와 살핀다. 연꽃을 찾은 백로를 보면서 자연과 공존하고자 한 선인들의 선견지명에 저절로 숙연해진다. 미래 세대를 위한 백로(百路)는 막 큰 길이 아니어도 좋으니, 하나하나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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