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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주의 제주살이] (40)동초등학교 동창회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입력 : 2022. 06.28. 00:00:00
나이 지긋해진 동초등학교 동창들이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모임에 외부인으로 어떻게 끼게 되었다. 모임 끝 무렵, 그 동창 중에 가까이 지내는 지인이 있어 합류한 것인데, 마침 그 모임이 우리집 근처에서 열리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갈 작정을 할 수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매번 거의 같은 사람들이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가령 그 일원 중 한 사람이 중매해 결혼한 커플이 합석해 있는데 중매쟁이 왈, "그 중매, 잘 한 일인지" 라고 웃으면 여자 쪽에서 "너 때문에 인생 망쳤다"고 하고, 남자 쪽에선 "허허, 참" 어쩌고 하는 그런 자리이다. 그러면 옆에서 누군가 나서서 말한다. "다 인연이다게."

그러면 우둥퉁하게 살이 붙은 누군가 말을 받는다. 인연이면 뭐 해. 각방 쓴 지 15년인데. 그 말에 다른 남자가 말을 보탠다. 우리는 각방 안 써, 두 이불 펴고 한 방 쓰지. 그 말을 부인이 받아서 우스갯소리를 보탠다. 한 이불 쓰면 겨울에 자다 춥다고 이불을 자기 쪽으로 끌어가는데 아무리 잡아당겨도 꼼짝않게 무릎에 끼고 자버리니까예 할 수 없수다, 는 식이다. 또 다른 여자 동창이 말한다. 한 이불 쓰면 담배 냄새 때문에 못 잔다. 그러면 살짝 시어머니 발밑으로 내려가서 눕는 건데, 그걸 알고 자다 말고 시어머니가 "또 오냐?" 하고 말 한마디 붙이고 다시 잔다는 것이다. "이제 안 햄시녜" 그런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인지 현재 그렇다는 것인지 모르지만 모두들 알아듣는 이야기인지라 더 묻는 법도 덧붙여 말하는 법도 없이 웃고 떠들고 들썩거리며 들락거리며 밤은 깊어간다.

60년 된 친구들이 20년 전부터 매달 한 번씩 모였다 하니 예사 친구 사이가 아닌 셈이다. 일찍 자리를 뜬 사람 중에 변사(辯士)가 나왔나 싶은 사람도 있고, 싸움난 집에서 누룽지 얻어먹을 만큼이나 두룸성 있는 사람도 있으며, 시인도 있고 수필가도 있으며, "재주가 메주인 나 같은 삼류화가도 있다"고 했다. "풀밭에서 뚜렷하고 쑥밭에서 우뚝한 사람"이라는 말도 있듯이 모이다 보면 별쭝맞고 무리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있는데, 이미 모두 취해서 행동이나 말투까지 비스름해 보이면 진짜 친구들인지도 모른다. 문득, 오늘 어느 잔디밭에서 찍은 사진을 돌려보다가 한 사람이 말한다. 아니, 내 뒷모습이구나! 내 뒷모습 처음 본다! 고 소리친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거울 속 앞모습은 봐도 옷 입은 자기 뒷모습은 처음 본다는 말에 잠시 침묵이 흐르는 듯했다.

잊은 지가 언젠지 조차 모르는 자기 뒷모습. 살아도 살아도 요령부득이고 섞갈리는 세상에서 내 뒷모습은 누가 가장 잘 알고 있을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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