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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마을-참여와 자치의 기록] (4)마을운영규약
제주 시대 변화 담아 '주민 공동의 약속' 정비 움직임
일부 허술한 임원 선출 규정·주민 자격 등 갈등 낳아
제주도 '… 개선방향 안내서' 성평등·환경권도 제시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2. 06.27. 18:21:21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의 명소 중 하나인 함덕해수욕장. '함덕리향약'엔 마을 환경 보호의 의무를 두고 있다.

[한라일보] "본 향약이 정하는 바에 따라 모든 리민은 평등하게 리정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 함덕해수욕장을 명소로 둔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함덕리향약'의 일부다. '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는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며 향약 준수, 총회와 개발위원회 의결 사항 준수와 이행, 마을 환경 보호의 의무, 마을 재산 보호, 마을 공동체 유지의 의무 등을 단서 조항으로 달았다. 마을에선 1999년 3월 총회에서 의결된 향약 제정을 두고 "민주적인 리정 운영과 함덕인으로서의 긍지"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향약이 완결체는 아니다. 업무세칙을 포함 60쪽가량 묶인 '함덕리향약'은 그동안 숱하게 개정이 이뤄지며 오늘에 이르렀다. 이곳에선 현재 "주민등록상 1년 이상 계속 거주한 리민"이면 이장 임용후보자 자격이 주어진다.

향약, 정관, 새마을회 규약, 새마을회 조례, 회칙, 마을회 규약…. 오늘날 제주의 마을에는 주민들이 공동의 약속을 담아 만든 규칙들이 서로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다. '조직체 안에서 서로 지키도록 협의해 정해 놓은 규칙'을 '규약'이라고 한다면, 이를 통칭해 '마을운영규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운영규약은 그것을 부르는 말이 제각각이듯 내용도 차이를 보인다. 주민(회원)의 자격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누구에게 줄 것인가, 마을 대표는 어떤 방식으로 선출하는가, 마을 공동 자원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등 마을별로 나름의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마을운영규약이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해석이 모호해지면 갈등의 씨앗이 된다. 임원 선출 규정이 허술해 다툼이 생기고, 제주 정착민 증가 등과 맞물려 권리 행사에 따른 주민 자격을 놓고 논란이 벌어진다.

제주도에서 지난해 말 '마을운영규약 매뉴얼'을 선보인 배경엔 일부 규약의 비민주성을 개선하려는 취지가 있다. 인구와 정주 환경의 변화로 공동체를 구성했던 조건들이 바뀌고 있는데도 일부 마을에선 규약이 불변하는 탓에 오히려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어서다. 제주도는 해당 매뉴얼에서 주민의 자격 기준, 선거권과 피선거권, 주민총회와 마을 운영기구, 마을자산과 자산 청구 등으로 나눠 마을운영규약을 손볼 때 살펴봐야 되는 사항을 다뤘다. 특히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성평등, 환경권, 문화유산 보전·계승 등과 관련한 내용을 더 많은 마을들이 운영규약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알렸다. 제주도는 지난 1월부터 법률, 학계, 여성, 마을 환경, 마을활동가, 공무원 등 7명으로 '마을규약(향약) 지원 자문단'도 가동 중이다.

다만 제주도는 매뉴얼 자료집을 내놓으면서 '제주지역 마을운영규약 개선방향 안내서'란 부제를 붙였다. 운영규약이 마을의 자치성에 기반해야 되는 만큼 '표준안'처럼 그 내용을 일률적으로 다듬거나 강제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작용한 결과다. 앞서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도 2016년 '향약부속서 리장선거 표준규정'을 제공하는 과정에 "이장 선거가 깨끗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함으로써 마을의 발전과 주민자치 실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면서도 "참고"용이라는 점을 밝히고 선거인명부 작성 등 마을의 실정에 맞게 수정·보완해 사용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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