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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기 있어요] (2)'세종이'가 전하는 이야기
한 번 버려지면 끝… "우린 어디로 가야 하나요"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입력 : 2022. 06.20. 00:00:00
동물은 말이 없습니다. 사람 손에서 크다 버려진 유기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언제 어떻게 버려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짐작만 할 뿐입니다.

'우리, 여기 있어요' 두 번째 이야기는 유기견 '세종이'의 입을 빌렸습니다. 제주에서 미국까지 살 곳을 찾아 떠난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 유기견이 처한 현실이 다가옵니다. 동물이 말을 하는 설정에 자칫 '없는 얘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는 곧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짜 현실'입니다.

입양 전 유기견 세종이. 사진=제제프렌즈



제주시내 길거리 떠돌다 포획
생후 4개월쯤 보호센터에 입소


보호센터 절반 이상 6개월 이하
엄마 젖 못 뗀 어린 강아지들도


#유기견 세종이, '레오'가 된 사연

안녕하세요. 세종이입니다. 아니, 지금은 '레오'라고 불립니다. 제주에서 태어났지만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새로운 이름을 얻었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먼 곳까지 오게 됐을까요.

저는 유기견이었습니다. 제주시 이도2동 길거리를 떠돌다 발견됐지요. 누군가의 신고로 포획됐고, 제주도 동물보호센터(이하 보호센터 또는 센터, 지자체 운영)로 가게 됐습니다. 그때가 작년 8월 2일, 태어난 지 4개월쯤 됐을 때였습니다.

'세종'이라는 이름도 그때 생겼습니다. 세종대왕의 이름이 '이도'였다나요. '이도'동에서 발견된 저에게 보호센터 봉사자들은 '세종'이란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여기까지 오게 된 사연을 떠나 누군가 저를 불러준다는 사실은 꽤나 기분 좋았습니다.

센터에는 저보다 어린 개도 많았습니다. 엄마 젖을 떼지 못한 채 들어오기도 했으니까요.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보호센터에 들어온 유기견(유실견 포함) 1356마리의 41.4%(562마리)가 0~3개월로 추정됐습니다. 나머지 183마리는 4~6개월, 601마리는 7개월 이상이었습니다. 절반 이상이 태어난 지 반년도 안돼 주인을 잃거나 버려진 것이지요.

지난해 8월 제주도 동물보호센터 입소 당시 공고. 사진=제제프렌즈



원래 주인 찾는 경우 6% 남짓
열마리 중에 한두 마리만 입양
남은 유기견 절반 이상 안락사


국내에서 입양 안되면 해외로
살기 위해 제주 떠나는 유기견


저에겐 공고 번호가 붙었습니다. '제주-제주-2021-03009'. 작년 기준 3009번째로 센터에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입소 첫날부터 10일 간은 공고 기간으로 정해졌습니다. 주인을 찾기 위해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제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이 그렇다고 합니다. 지난해 센터에 입소한 유기견이 4517마리인데, 이 중 318마리(7%)만 주인에게 돌아갔습니다. 그 수치는 2019년 5.3%(7135마리 중 375마리), 2020년 6.1%(5856마리 중 356마리)로, 매년 6% 안팎에 그칩니다.

주인을 찾지 못하면 입양(분양)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센터의 입양률은 15.9%(716마리)에 그쳤습니다. 2019년(848마리, 전체의 11.9%)과 2020년(832마리, 14.2%)도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열 마리 중에 한두 마리 정도만 입양되고 있는 겁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미국 LA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케이지에 담긴 세종이. 사진=제제프렌즈



#'믹스견'에겐 더 어려운 입양

품종견이 아닌, 흔히 '잡종'이라고 불리는 저 같은 '믹스견'에겐 그 문이 더 좁습니다. 보호센터의 입양률이 낮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오동진 제주도 동물보호센터 팀장은 "제주지역 특성상 유기견 대부분이 중형견 이상에 믹스견"이라며 "엄마견과 아빠견을 정확히 알 수 없어 어느 정도까지 클지 모르기 때문에 어린 연령이어도 입양 희망자가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경우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요즘엔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사는 경우가 많아 작은 개를 선호하는 탓이지요.

낮은 입양률에는 유기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의료비 부담 등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 등이 펴낸'2021년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보고서'를 보면 유기동물 입양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사례 수 59)의 35.6%가 '질병, 행동 문제 등이 있을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향후 1년 내에 반려동물 입양 계획이 있는 응답자(사례 수 397)의 85.1%가 '유기동물 입양 계획이 있다'고 할 만큼 긍정적인 인식도 보이지만, 입양률을 높이려면 갈 길이 멀기만 합니다.

홍난영(맨 왼쪽) 대표 등 제제프랜즈가 2020년 7월 블랙이를 해외 입양 보내는 모습. 사진=제제프렌즈



입양이 안 되면 더 이상의 선택지는 없습니다. 현재 보호센터의 적정 보호 동물 수는 300~350마리 남짓. 2019년부터 3년간 한 해 평균 5800여 마리의 유기견이 들어오다 보니 떠밀리듯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습니다. 연령이나 입소 현황에 따라 몇 개월 간 입양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지만 대개 한 달이 채 안 돼 생을 마감합니다. 지난해에는 보호센터에 있던 유기견 2667마리(전체의 59%)가 안락사됐습니다.

전 어릴 때 발견된 게 그나마 다행이었을까요. 얼마 없는 입양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제주에서 유기동물 보호 활동을 하는 사단법인 제제프렌즈가 해외 입양을 도운 겁니다. 비록 태어난 제주는 아니었지만 살 곳이 생겼다는 건 '살 수 있다'는 희망이었습니다.

때마침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가진 '이동 봉사자'(해외로 입양되는 유기견의 비행 이동을 도와주는 봉사자)가 있었습니다. 지난해 8월 말 센터에서 나와 출국 예정일인 10월 말까지 서둘러 입양 준비를 했습니다. 검역 조건을 맞추기 위해 각종 접종을 하고 중성화 수술도 받았습니다. 제제프랜즈는 제 프로필을 해외 입양 단체에 보내 입양처를 물색했습니다. 그렇게 두 달을 보낸 저는 무사히 미국 LA로 향했고, 그곳에서 새 주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새 주인을 만난 블랙이. 사진=제제프렌즈



2020년 7월 제제프렌즈가 해외 입양을 보낸 '블랙이'도 저 같은 경우입니다. 덩치가 크지 않아 6개월 간 센터에서 지냈지만 제주에선 입양자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홍난영 제제프렌즈 대표는 "2018년 12월 안락사 명단에 오른 블랙이를 데려왔지만 믹스견에 까만 개이다 보니 입양이 잘 안 돼 1년 7개월간 '임보'(임시 보호의 줄인말)를 했다"며 "그러다 외국에 채널이 있는 국내 해외 입양 단체와 연결이 돼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입양 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저와 블랙이처럼 국내에서 입양이 안 돼 해외로 가는 일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닙니다. 살기 위한 여정이자 살리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지요.

지금 전,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들 잘 살아내고 있나요.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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