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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다혜의 편집국 25시] 네모에게
강다혜 기자 dhkang@ihalla.com
입력 : 2022. 06.02. 00:00:00
지난해 유행했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색깔과 기호로 수많은 상징과 철학을 함의했다. 그중 진행 요원들은 '○ △ □' 모양의 기호로 역할과 계급이 구분됐다. 동그라미는 가장 하위 계급으로 식사를 준비하는 등 잡일을 맡는다. 중간 층인 세모는 총을 들고 무장한 채 탈락자를 처리하며, 계급의 꼭대기인 네모는 룰을 설명하며 게임을 이끌어간다.

유행이 식어갈 즈음 드라마를 떠올리게 한 강렬한 '사건'이 발생했다. 한 달여 전 공천위원장의 '리스트'로 불리는 문서 한 건이 돌아다녔다. 문서 내 명단 옆엔 '○ X △' 등이 그려졌고, 문서가 담긴 대화방 내용까지 공개되며 "저는 X인데 뭐가 X 마씸?"이라는 질문부터 "손주의 실수"라는 해명까지 퍼졌다.

여론은 수그러들었지만 '리스트'는 기억에 남았다. 선거 출마자들은 주민만을 바라보겠다며 지지를 호소했지만 저들 역시 공천권을 쥔 '네모' 아래 줄을 서느라 유권자는 뒷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오징어 게임식으로 말하자면 공천위원장은 네모, 출마자는 세모와 동그라미의 중간 정도, 실무자는 동그라미쯤 되겠다. 유권자는 초록색 군단의 게임 참가자쯤 될 수도 있겠다.

꼭대기에 있는 만큼 탁월한 철학을 가져야한다고 했다. 남들의 코끝보다 멀리 보지 못한다면 높은 곳에 앉은들 무슨 소용일까. 그리고 우리 초록색들은, 열혈 지지자에게만 어필하면 당선될 것이라는 이들의 산술법이 언제든 통하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정치적 투명인간을 자청해선 안 된다. <강다혜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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