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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빅 피쉬'. 올해도 어김없이 겨울은 길었다. 한 계절이 지나가는 일이 이토록 더디게 느껴지는 건 비단 반복되는 영하의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전염병의 숫자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선거판의 그래프들에 더해 믿고 싶지 않은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소식까지 겨울의 끝을 둘러싼 세상의 숫자와 소리들은 이 계절을 더 끙끙 앓게 만들었다.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고심을 더하고 타국의 총성과 포화 속 공포에 떨고 있을 이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며 겨울밤을 나는 일은 입이 바싹 마르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멍하니 드라마를 보던 밤, 화면 속에 작약이 피고 있었다. 피어나면 겹겹의 입들이 거대한 아름다움의 원형을 만들어내는 꽃. 커다란 자두맛 사탕 같던 봉오리가 만개하던 장면을 보면서 왜 살짝 눈물이 나려고 했을까. 이 겨울에도, 이 시간들 속에서도 꽃이 핀다는 것이 강렬한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계절에 상관없이 꽃은 피고 지지만 유독 봄이라는 계절은 꽃을 기다리게 만든다. 겨우내 집 안에 들였던 절화들에 대한 고마움도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지친 몸을 일으켜 집 밖으로 나갔을 때 얼었던 땅 위로 솟아오른 꽃들의 모습은 긴긴밤을 밝히는 햇살 같기도 하고 침묵을 깨우는 한 마디 언어 같기도 하다. 꽃이란 단음절의 단어에 담긴 무수한 희망의 씨앗들은 살아있는 순간을 위한 축복의 준비였을 것이다. 언젠가는 겨울이 지나가고 꽃이 피는 때를 지나칠 수는 없으니. 영화 속에서 꽃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시각적으로 탄성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언젠가 보았던 그 꽃의 향기를 떠올리게 하고, 그 향기를 맡았던 순간을 기억하게 만드는 공감각적 순간이 된다. 무수히 많은 영화들 속에 꽃이 피고 졌지만 그래도 유독 꽃이 인상적으로 등장했던 영화들을 꼽아본다. 팀 버튼 감독의 스펙터클한 동화 '빅 피쉬' 속의 노란 수선화는 무려 1만 송이의 프로포즈다. 때론 허풍처럼 느껴지는 꿈과 거짓말처럼 믿기지 않는 진심 사이를 오가는 한 남자의 인생을 팀 버튼 특유의 환상적인 스토리와 비주얼로 선보이는 '빅 피쉬'. 이 영화 속 노란 수선화는 누군가의 인생 한복판에 피어 현실을 판타지로 바꾸어주는 마법 같은 풍경이 된다. '빅 피쉬'에서는 어쩌면 과장일지도 모를 꽃의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진짜라고 믿는 마음이 피어서 누군가의 삶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만드는 것, 꽃은 거들먹거리지 않고 그저 근사하게 거들뿐이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코코'에는 황금과 노을을 닮은 꽃 메리골드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코코'의 배경이 되는 멕시코에서는 전통적으로 장례식에서 메리골드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이는 태양빛을 닮은 꽃 메리골드의 밝은 주황색이 죽은 자들의 영혼을 가족 곁으로 안내해준다는 아즈텍 신화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 그러고 보니 꽃이 피는 곳에서 마음도 피어나는 것 같다. 수줍게 웅크렸던, 조심스레 감춰왔던 또는 오래도록 준비했던 마음의 겹들이 시간을 견디고 버티어 개화하고 만개하는 순간은 너무도 또렷해 꽃이 지고 시간이 지나도 누군가의 마음에 씨앗을 내릴 것이다. 그리고 그 씨앗이 누군가의 시린 계절을 뚫고 나올 다음 희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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