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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
[진선희의 백록담] 제주 도심에 멈춰 선 '걷는 인간'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2. 02.28. 00:00:00
“주차와 도로 문제를 자동차 중심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도시를 사람들이 걷기에 편한 환경으로 만드는 것이다.” 제주도 공공건축가 제도와 연계해 위촉됐던 김용미 총괄건축가가 지난 27일까지 제주시민회관에서 진행된 ‘제주 공공성지도 2022’ 전시에 부친 글 중 일부다. 이 글에 제주시와 서귀포시 원도심을 대상으로 1기 공공건축가들이 ‘걷고 싶은 도시 공간 만들기’ 프로젝트를 제안한 배경이 들었다.

2015년 10월 이 지면을 통해 서귀포시 원도심을 '걷고 싶은 도시, 걸을 수 있는 도시'로 가꿨으면 하는 바람을 거칠게나마 꺼내놓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근래 서귀포시가 선보인 도심 걷기 '하영올레'에 대한 도민들의 호응이 반갑지만 그것이 이벤트나 관광용 코스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생각도 그만큼 크다.

2021년 기준 제주시의 주차장 확보율은 120.3%에 이른다. 이 수치를 보면 주차장이 차고 넘치는 게 현실이지만 '도심 주차난 해소'는 여전히 행정의 단골 메뉴다. '걷는 제주시'는 그보다 뒷전이다. 제주도 주차장 설치와 관리 조례가 만들어진 시기가 2008년이었고, 제주도 보행권 확보와 보행환경 개선 조례는 약 10년이나 늦은 2017년에 제정된 것만 봐도 정책의 관심도를 알 수 있다.

그동안 제주도는 보행 기본 조례 등에 근거해 1차 보행안전과 편의증진 계획(2014~2018)을 세웠고, 현재 2차(2019~2023) 계획을 실행 중이다. 국비가 지원되는 보행환경 개선지구를 정해 교통약자를 위한 기반시설이나 보행자 안전시설 등을 갖추는 내용이 골자다. 2차 계획에는 제주시 용담로, 안덕면 화순로, 남원읍 태위로, 애월읍 곽지1길이 포함됐다.

이처럼 도내 전역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보행환경의 양과 질을 높이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으나 그것들이 얼마나 생활 공간에 스며들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관련 부서 간 협업도 과제다. 공공건축가들이 지역민 의견 수렴 등을 토대로 공공성지도에 드러낸 오늘날 원도심의 모습은 보행 친화도시와는 거리가 멀다. 제주시가 최근 ‘원도심 심쿵투어’라는 이름 아래 도심의 문화유산을 걸으며 둘러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왔지만 차량을 피해 다니는 형국은 아닌가 싶다. 보행자전용길로 지정된 제주시 연동7길 누웨마루 거리가 450m, 칠성로 상점가 관덕로11길이 350m에 그치는 점도 재고가 필요하다.

제주시 도심 삼성혈 입구 맞은편엔 ‘호모 워커스’란 제목의 커다란 조형물이 서 있다. 두 다리를 길게 뻗으며 걸어가는 사람의 형상으로 2016년 6월 이도1동이 ‘삼성혈 문화의 거리’ 상징물로 설치했다. 제주시가 ‘걷는 인간’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려면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은 것 같다.

지난 21일 안동우 제주시장이 '공공성지도' 전시장을 찾았고, 원도심권 동장들도 잇따라 방문해 제주시 지역 8개 보행환경 개선 프로젝트를 돌아봤다. 제주지역 공공건축과 공간 환경 사업 전반을 자문해온 공공건축가들의 아이디어가 앞으로 도시계획에 얼마나, 어떻게 반영될지 지켜볼 일이다. <진선희 부국장 겸 행정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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