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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택의 한라칼럼] 교육은 뿌리인데…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입력 : 2021. 11.16. 00:00:00
평소 나는 교육을 식물의 뿌리에 곧잘 비유한다. 꽃과 나무의 모체가 뿌리이듯 삶의 근원은 교육이라 여기기에 하는 말이다. 뿌리가 상하면 몸통도 잎새도 시들듯, 교육이 병들면 아이들이 아파하고 청소년이 방황한다. 교육은 더 좋은 미래를 창조하는 최선의 저축이자 과정의 예술이다. 유형무형의 문화를 가꾸는 삶의 무대를 교육이 연출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숱한 문화의 혜택도 교육의 결과이며, 대한민국이 긴장하는 부조리도 우리가 뿌려놓은 교육의 소산에 다름 아니다. 집짓기의 기본이 기초공사이듯, 나라의 기본은 교육으로 쌓아올린 문화풍토이자 정신세계이리라.

미국은 개척정신.청교도정신.실용주의을, 프랑스는 자유.평등.박애를 국민 속에 3대 정신으로 뿌리내릴 수 있었다. 그럼 우리는? 일제강점기 이후 농경사회.산업사회.정보사회를 거치면서 빨리도 달려왔다. 아이가 넘어지면 걸음마를 배울 수도 있을 텐데, 어른이 넘어지면 재수 탓하면서 달렸던 것이 우리의 지난날 자화상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지원 받던 최빈국에서 지원하는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이렇듯 오늘의 경제적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것도 국민의 교육열 덕분이라는 데 이견은 없는 듯하다. 그 와중에서 우리는 질보다 양을, 내면보다는 외향을, 목적보다는 수단을, 과정보다는 결과를, 본질보다 현상을 중요시하는 삶의 풍토를 조성하기도 했다.

교육전문가는 모름지기 정신에 관여하여, 철학적.심리학적.사회문화적 교육과정을 알고 수행하고. 또한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 도처에서 뿌려진 인성과 창의성의 씨앗이 피교육자의 품성이라는 토양에서 알차게 가꿔질 때, 우리의 삶의 질도 비로소 나이지리라.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니, 수많은 인물과 매체들이 삶의 질을 얘기한다. 하지만 학교교육이 교육의 전부인양, 국사교육이 정체성 교육의 전부인양 여기는 교육풍토에서는, 삶의 질 또한 나아질지 의문이다.

세계화 흐름 속에서도 정체성 교육은 교육의 출발이자 본질이다. 정체성 교육은 우리의 인성을 바르게 하여,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를 읽은 창의성을 발휘케 하는 힘을 지니고 있기에. 가정교육.학교교육.사회교육이 한 바퀴로 굴러가고, 가족사와 향토사 또한 역사교육으로 강조되어 질 때 인성과 창의성은 함께 꽃 피우리라. 역사의식을 지닌다는 것은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정체성을 찾으려는 아이는 자기의 앞길을 스스로 선택하여 걸으려 하듯, 정체성 속에는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인성과 창의가 숨어 있었다.

부모와 교사의 사랑은 특히, 아이들의 심전에 인성과 창의성을 파종하는 농부의 심정이다. 우리 아이들이 온실이나 정원에서 꽃피워진 연약한 화초가 아닌, 대자연에서 자양분을 스스로 빨아드리며 혼자서도 꽃 피우는 들꽃의 자생력을 배우기를 두손 모은다. 삶의 가치를 고양하는 교육의 밭을 깊은 안목과 애정을 갖고 경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문영택 사)질토래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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