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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의 눈
5.18 연극 짬뽕, 시민배우 김미경 통해 '제주형 블랙코메디' 실험
화산섬 제주의 어떤 희극인, 배우 김미경 블랙코메디로 '희극을 놀다'
이재정 시민 기자
입력 : 2020. 11.17. 11:29:53
연극 짬뽕에서 오미란 역으로 출연하는 시민배우 김미경

연극 짬뽕에서 오미란 역으로 출연하는 시민배우 김미경

인간 생활 자체가 어쩌면 희극일지 모른다는 전제를 깔면 희극인이야말로 삶의 무대 절정에서 또 다른 인간들을 웃게 만드는 주인공이다. 그렇듯 이곳 화산섬 동네에도 다수의 희극인들이 있다. 원로배우 강상훈 선생이나 중견 변종수, 개성파 배우 진두선, 고정민, 차지혜도 있지만 신선한(실험적인) 배우 오상운도 있다.


이처럼 희극인은 희극을 전문적으로 연기하는 사람을 말하고 희극은 웃음을 주조로 해 인간과 사회의 문제점을 경쾌하고 흥미 있게 다룬 연극이나 극 형식을 의미한다.


하지만 오늘은 21일 오픈하는 블랙코미디 연극 짬뽕을 눈앞에 두고 만난 신인배우이자 시민배우이기도 한 김미경(오미란 역)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연습 무대에서 만난 그녀는 희극적인 말투로 좌중을 웃음바다로 몰아넣었다. 심각한 씬을 넘기다가도 금세 표정을 희극적으로 풀어 뽀송뽀송한 웃음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소화해 나간다.


특히 오른편 어깨와 왼편 어깨의 언밸런스한 뒷모습은 상당히 희극적이라 미란이의 캐릭터에 충실한 시대아픔 같은 걸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물론 광주 5.18이 남의 웃음거리가 될 만한 일이나 사건이 아님에 틀림없다. 하지만 극적 요소를 면밀히 살펴보면 실없이 익살을 부려 관객을 웃기는 장면이 많은 연극이기도 하다. 블렉코메디라는 용어가 그 경계를 드러낸다.


이탈리아의 즉흥 희극인 코메디아 델라르테에 나오는 익살스러운 광대 아를레키노는 시골 출신의 소년 하인, 흔히 검정 가면을 쓰고 마름모꼴 얼룩무늬가 있는 타이츠를 입고 등장하는 캐릭터로 짬뽕에서 작로역과 비교되고 교활한 하녀로 애인 아를레키노의 상대역으로 등장하는 아를레키네따를 미란과 비교하면 좀 더 극적일까?


사실 광주 5.18은 비참한 것이었지만 금두환이라는 캐릭터만 놓고 보면 한편 매우 희극적인 것이기도 하다. 캐릭터상 노출된 번뜩거리는 빗금진 이마나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는 명대사는 희극적 요소로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자되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등장하는 작품 짬뽕에 ‘가면과 화장’이 배제되어 있다는 점은 큰 아쉬움이다. 학교나 직장에서, 그밖에 사적이거나 공적인 모임에서 대중은 누구나 가면을 쓴다. 심지어 부부간에서도. 본심과 감정을 감추고 내보이지 않는다.


연습 내내 내 눈에 그녀는 긍정왕이었다. 얼마 전 제주 4.3 피해자의 아내로 제주 MBC 재연 드라마에 출연했다. 짧은 시간 제주 4.3 가족의 응어리를 열연한 그녀가 이번 광주 5.18의 아픔은 또 어떻게 해석해낼지 기대가 크다. 그녀를 연습내내 지켜보고 “너구나! 짬뽕에서는 너구나!” 했다. 시민배우를 넘어서 상처 받는 자기 자존감을 억누르며 견딘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임을 증명해 내고 있다. “나 자신조차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날 사랑해 주겠어요? 라던 희극인 고 박지선의 외침과 무게가 동일하다.


“여러분도 그러셨으면 좋겠어요”라던 선배 희극인의 모습이 오버렙 된다.


하지만 블랙코메디인 짬뽕에서는 상대방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자 꾸미는 막과 막 사이의 어떤 표정이 부족하다. 대중들이 욕망하는 어떤 가면들이 결여되어 있다.


가면은 라틴어 ‘persona(페르소나, 인격)’, 영어 ‘personality(퍼스널리티)’의 어원이면서 타인에게 보이는 우리의 외적 인격이 드러나는 매력적인 통로이디. 그러니 작품 짬뽕에서 가면적 요소가 불안한 것은 배우들의 동선을 뒷받침하는 배경이 취약하다는 뜻이다. 극장, 무대미술, 음향 연출이 좀 더 뒷받침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운 대목들이다.


화장 또한 가면과 비슷한 면으로 배우(작품)가 더 아름답게 보이는 장치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화장의 첫 단계는 약점을 가리는 것인데 시민 배우들의 약점을 커버하기에 과정과 결과의 약점들은 제법 취약했다.


아쉽다.


상처받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우리가 가면을 쓰는 이유다. 실제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연극(희극)의 목적은 약점을 가리는 것, 마음이 상처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정서(fell)의 갑옷이랄까. 사람에 따라 정서의 생김 또한 제각각이듯 배우의 갑옷 역시 마찬가지이다.


“20대 여성이 화장을 못 해서 더 슬픔을 느끼기보다는 20대 개그맨이 분장을 못 해서 더 웃길 수 없다는 것에 슬픔을 느끼는 진정한 개그맨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던 고 박지선 희극인의 외침이 오버랩 된다.


이런 배우들의 결핍이 연극 짬뽕에서 앞으로 12회의 공연을 통해 치유되고 힐링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제 관객들의 몫으로 남았다.


연극 짬뽕은 민낯의 희극인들이 가지는 작은 축제이다. 코로나로 힘든 시민들에게 위안을 주고 출연하는 예술가들이 삶의 가치로 안식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 말이다.


저런 배우가 내 주변에 있다면 나 또한 덩달아 가면을 벗고 무장해제 될 것 같은, 그런 배우 오미란. 그런데다 유쾌하고 잘 웃기기까지 하는 이웃시민 김미경이 참 좋다.


멋쟁이 여배우 오미란, 덕분에 많이 웃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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