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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희의 백록담] ‘순이삼촌’ 영상 축사가 불편했던 이유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0. 11.16. 00:00:00
제주시와 제주4·3평화재단이 공동 제작을 맡은 창작오페라 '순이삼촌'이 공연된 지난 7일 제주아트센터 대극장. 관람 시 주의 사항을 안내하는 녹음 음성이 나온 뒤 얼마쯤 지났을까. 무대 양쪽에 걸린 커다란 자막 스크린에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모습이 떴다. 원 지사는 "직접 뵙고 여러분과 응원도 하고 현장의 감동도 나눠야 하는데 제주포럼 일정으로 영상으로 대신 인사 드린다"는 말을 전했다.

관람객들이 숨을 죽이고 막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그 시간에 맞닥뜨린 제주도지사의 인사말은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제주에서 만들어진 창작 작품 공연장에서 원 지사를 본 기억이 없거니와 비록 영상이라고 해도 굳이 인사말을 띄워야 했을까 싶었다. 제주도립 제주교향악단이나 제주합창단 연주회장에서 공연 시작 전 제주시장이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한다면 어떻겠는가.

이번 일로 문화예술계의 관행 하나를 떠올렸다. 종이로 인쇄되는 공연이나 전시 팸플릿에 제주도지사의 축사를 담는 거였다. 제주도가 직접 주최하지 않는 행사인데도 너도나도 인사말을 요청해 싣고 있는 걸 보게 된다. 제주에 터잡은 지 오래된 문화예술 단체일수록 그런 사례가 많다. 기실, 축사에 적힌 말들이 해당 행사에 대한 도지사의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거나 지속적인 사업 지원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주최 측 대표자의 인사말과 대동소이한 내용으로 축사를 담는 경우도 있다.

2000년대 이전 제주도가 제주도문화예술진흥위원회를 통해 직접 문예진흥기금을 심의하던 시절의 영향인지 모른다. 당시만 해도 문화예술단체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고 지원금을 받는 단체도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기금 지원을 제주도가 자신들에게 베푸는 시책쯤으로 여겼을 법하다.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을 두고 흔히 '혈세'라고 일컫는다. 공직자들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세금을 그만큼 귀중하게 다루라는 뜻이다. 이는 한편으로 정책 입안자들이 어느 곳에 그 세금을 쓸지 결정하는 과정에 일반 대중의 목소리도 반영되어야 한다는 의미겠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오페라 '순이삼촌'은 특정 기관장의 결단만으로 성사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초연되던 그날처럼 공적 자금이 투입된 관변 행사가 되기까지는 어두운 시절에 탄압을 견디며 4·3을 예술로 말해온 이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다.

지금 제주 문화예술계에 필요한 건 민선 6기부터 제주도정이 공언해온 '문화예술섬 제주'의 실질적인 실천이다.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으면서 그에 맞는 세부 전략의 수정도 필요하다. 제주문화예술재단, 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 등 출연기관들의 출연금 향방 역시 다르지 않다.

2021년 제주도 문화분야 예산안 심의가 이달 26일부터 제주도의회 문화관광체육위원회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문화 예산이 어디에, 어떻게 편성되는지 제주 문화예술계의 이목이 집중될 시기다. 이미 제주도가 감염병 위기 극복 등에 대비해 올해보다 30~40% 세출예산을 줄인다는 방침이 전해진 터여서 이번에는 심의 결과에 더 관심이 쏠려 있다. 꼭 필요한 곳에 문화예술 예산이 가길 바란다. <진선희 교육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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