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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20)탐라의 일노래 (중)
소리는 일하는 개인의 탄식이자 집단 소망의 기원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0. 07.27. 00:00:00
“소리해 보라"는 노래 불러라
소리는 처지와 애환의 이야기
재난 많은 나라의 노래 슬퍼




#일, 경제적 삶을 위해

일노래란 일+노래라는 말로 노동요(勞動謠)를 오늘날에 편의상 부르고 있는 명칭이다. 근본적으로 일할 때 부르는 노래다. 노동은 사전적인 의미로,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 행위'이며, 나아가 '사람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서 육체적이고, 혹은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를 말한다. 이런 노동이 누구나 부(富)의 원천임을 알고 있으며, 고대 묵자(墨子) 사상에서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고 하여, 생활에서 근검절약을 내세우기도 했다.

제주 일노래 공연에서 제주농요보존회원이 허벅장단을 치고 있다.

사실, 노동(labour)의 의미에는 작업과 고역(苦役)이라는 두 가지가 포함돼 있어, 일과 고생, 고통을 함축한 말이다. 이 노동은 프랑스어 'labor'와 라틴어 'laborem'과 연관이 있는데 '무거운 짐을 든 상태로 비틀거리는 모양'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노동은 서양에서는 통상적으로 '토지를 일구거나 경작한다'는 의미를 가진 것이 분명하여, 육체노동을 포함하여 힘이 들거나 노력하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노래는 일의 능률을 위해서 개인, 혹은 집단적으로 박자를 맞추고 흥을 돋우기 위한 수단이며 이런 형식들은 전 세계적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그런 노래의 공통분모는 주술적이거나 제사에 쓰여도 결국 식량 조달과 생존을 위한 것이며, 노래의 시초가 일과 함께 나온다는 것이다. 아무튼 노래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향가(鄕歌)나 별곡(別曲)에서 유래한 것이고, 향가(鄕歌)의 의미가 '시골에서 부르는 노래' 인 것이다. 별곡은 원래의 노래가 아닌 또 다른 노래를 지칭하는 것이었으나 후에 '별곡'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노래를 지칭하게 되었다. 노래의 시작은 인류 사회가 생존을 위한 것이었으나, 노래라는 의미의 또 다른 축은 근대적 의미의 '노래'가 있다. 창가, 가요라는 의미가 전통과 현대의 과도기인 구한말에 등장해서 일제 강점기의 암흑기를 거치면서 고착되었고, 현대적 의미로는 서양의 다양한 장르와 결합하여 만들어 낸 오늘날의 가요가 있다.



#일, 소리, 굿의 변증법적 발전

소리는 일반적인 우리 노래 개념이고, 창(昌)과 소리와 노래를 혼용해서 쓰기도 한다.

김영철 심방이 굿 소리를 하고 있다.

옛 소리가 문학적으로는 가사(歌辭)의 한 분야가 되겠지만, 우리는 일과 관련해서 소리가 오래된 우리의 노래 개념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소리는 일을 하면서, 지치면 지친대로, 기쁘면 기쁜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부를 수 있는 것으로, 그래서 개인에게는 자연발생적으로, 집단에게는 의도적으로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소리가 어떤 의미에서는 노래(歌) 이전의 발성(發聲)과도 연관이 있다. 잠녀들의 '숨비소리'처럼 그냥 참았던 '숨을 비우는 소리'는 일을 하는 행위 때문에 나오는 생리적인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우젯 소리'와 같은 굿노래나 '서도소리' 같은 창(昌)에서는 내용과 리듬이 다양하고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소리'를 딱히 일할 때 나오는 생리학적인 현상으로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노래로서의 '소리'가 생리학적으로 나오는 소리로부터 발전하여 자신의 처지, 넋두리, 고통, 애환의 이야기로 발전하여 하나의 스타일을 갖게 되었지만, 그것이 그래도 입에서 나오는 소리이기 때문에 그냥, '소리'라고 부르는 것일 수도 있다. 소리가 일하는 개인의 탄식과 집단의 소망의 기원에서 시작된 것을 볼 때 '~소리'는 근본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노래이며, 신분사회가 등장하게 되면서 지배체제의 대응 담론으로써 민요(民謠), 혹은 속요(俗謠)의 개념을 포괄하는 민중예술의 범주를 갖게 된 것이다.

사실상 누가 "소리해 보라"라고 할 때 그것을 그냥 '소리쳐 보라'라는 말로 듣고, "아!" 하고 소리치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아마도 요즈음 세대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를 수 있으나 기성세대들은 그것이 "노래해달라"고 하는 말로 들릴 것이다.

결국 일이 인간의 생존을 위한 경제적 행위라고 할 때, '소리' 또한 그것을 강화하는 수단이 된다. 나아가 일의 효율성과 피로, 그것의 해소, 내일의 더 나은 수확을 위해서도 소리가 필요한 것이다. 이 때 제사의 의미로서 굿이 등장하고,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인간사를 풀어주는 '소리'를 하는 것이다.

원래 본풀이는 굿에서 심방들이 배우고, 알고, 떠오른 것을 소리로 풀어주는 것이어서 일명 무가(巫歌)라고 하는데, 무가라고 하는 것은 리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굿을 문학으로 보면, 사설(辭說)이고, 서사시(敍事詩)가 되지만, 음악으로 보게 되면, 가사(歌詞)이고, 가락이다. 연극으로 보게 되면, 행위 패턴이고 드라마가 되는 것이다. 미술로 보게 되면 조형활동이고 퍼포먼스이며, 의학으로 보면 심리치료가 된다. 궁극적으로 이런 장르의 과정들은 바로 '소리'가 주축이며, 그것의 본질적 내용은 당면한 현실에서 잘 살게 해달라는 일의 문제였던 것이다. 인간에게 삶 만큼 중요한 것은 일이며, 굿 '소리'의 목표는 다름 아닌 편안한 삶을 위한 어려운 일의 정신적 위안과 기쁨을 얻는 것이다.



#'신증동국동국여지승람'에 나타난 일과 굿

탐라국이라는 이름이 역사에서 사라진 지 얼추 800여 년이 되고, 수많은 민란과 전란의 엄습으로 탐라국 자체의 문헌이 전무하여, 오늘날도 탐라국에 대한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해 안타깝다.

집줄 놓기.

음악의 눈으로 '신증동국동국여지승람'을 보게 되면 일과 굿과 '소리'의 관계를 떠올릴 수 있다. 원 지배기 농업과 목축을 보자.

곡물 : 산도(山稻;산디, 밭벼)·기장·피·조·콩·팥·메밀·보리 밀 등이다.

목축 : 원 나라 지원(至元) 시대에 탐라를 방성(房星) 분야(分野)라 하여 말 목장에 관리(官吏:萬戶)를 두었다. 기록 당시 조선시대 목장은 제주 4군데, 정의(旌義)와 대정(大靜)도 같았다. 소 검정소·누런소·얼룩소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뿔이 매우 아름다워 술잔을 만들 만하고 집집마다 목축하여 수백 마리로 떼를 이룬다.

목도(木道)질 : 탐라는 땅이 척박하고 백성이 가난하여 오직 목도질로 생활을 영위한다.

물질 : 원나라에서 탐라 구슬을 채취하지 못해 민간에 간직한 것 백여 개를 가지고 갔다

절구질 : 탐라에는 방아가 없으며, 오직 여자가 손으로 나무 절구에 찧고 등에 나무통을 짊어지고 다닌다.

가무 : 매년, 8월 15일이면 남녀가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춘다(每歲八月十五日男女共聚歌舞).

놀이 : 줄다리기, 그네뛰기, 닭 잡기, 귀신 쫓는 놀이, 김녕·애월 등지의 연등(燃燈)놀이(나무 등걸 형상이 말 머리같은 것을 구해서 채색 비단으로 꾸며 말이 뛰는 놀이).

굿 : 정월에 보름 동안 치르는 신과세제, 당굿, 걸궁, 영등굿.

가죽 : 궤자(궤子)·미록(미鹿)등 큰 사슴이 생산돼 가죽이 세밀하고 질겨 가죽신을 만들 만하다.

위와 같이 대략 '신증'의 탐라국시대 생산력, 일, 굿, 놀이를 살펴보았는데, 여기서 오늘날 전승되는 소리가 태생적으로 일에 근거하기 때문에 일노래가 압도적으로 많다. 소리의 예로는 농업이 '검질 매는 소리', '흙 벙뎅이 부수는 소리', 목축은 '밭 가는 소리', '밭 발리는 소리', '모쉬마는 소리', '망건 는 소리', 목도질은 '낭 그치는 소리', '낭 깨는 소리', 잠녀는 '노 젓는 소리', '잠녀질 소리', 굿 소리는 '새도림', '초감제', '살려옵써', '용천검', 어업과 관련해서는 '궤기 나끄는 소리', '멜 후리는 소리', 건축일에 대해서는 '집줄 놓는 소리', '흙질 하는 소리', '흙 는 소리' 등이 있다. 또 '절구질 하는 소리'보다 늦게 나온 '방애소리'는 유교의 확산 이후 제사를 지내면서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사(人間事) 만사(萬事)가 잘 되면 '소리'는 즐겁고, 안 되면 '소리'가 서러운 법이다. 소리는 역사적인 상황과 개인적인 감정에 의해 표현되는데, 재난이 많은 나라와 즐거운 지역의 소리가 다르듯 역사의 희비(喜悲)가 그 소리에 나타나는 것이다. 소리로서의 '노래'도 오늘날 가요, 가곡, 판소리,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로 전개된다.

<김유정 미술평론가(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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