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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人터뷰] 오늘 64회 현충일 / 6·25 참전용사 홍성표옹
"전장 찾아 함께했던 전우들 기리고 싶어"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입력 : 2019. 06.06. 00:00:00

6·25 참전용사인 홍성표옹.

1949년 열아홉살때 입대
전쟁중 포로 위기 겪기도
1951년 수류탄에 큰 부상

"통일이 된다면 차를 끌고 제가 근무했던 부대들을 둘러보고 싶습니다."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서귀포시 서홍동에 거주하고 있는 6·25 참전용사 홍성표(88)옹을 만났다. 19살의 어린 나이에 군에 입대한지 벌써 70년이 흘렀지만 그는 당시 부대 이름, 장소 등 모두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1930년 9월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홍성표옹은 강릉에서 매형이 운영하는 자동차정비공장에 취업해 정비기술과 운전을 배우던 꿈 많은 청년이었다. 그러다 열아홉살이 된 1949년 2월 19일 강릉에 위치한 제10연대 제3대대로 입대해 연대장 운전병을 맡게 됐다.

우리나라의 비극적인 역사가 일어난 1950년 6월 1일 그는 이등중사로 승진했다. 그리고 얼마 안가 한반도를 반으로 나누게 된 아픈 전쟁이 시작됐다.

"잠결에 들린 '쿵! 쾅!' 소리에 깼는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정보대원이 달려오더니 정동진에 적이 상륙하고 있는데 그 수가 여단병력이 넘는 것 같다는 보고를 듣고서는 바로 중대를 이끌고 정동진으로 달렸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6·25전쟁. 맹렬한 전투로 후퇴와 북진을 반복했지만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1950년 겨울에는 중공군이 그가 속한 부대 진지를 습격해 포로로 잡힐 위기에서 간신히 탈출에 성공하는 위기 상황도 있었다.

1951년 6월 일등중사로 승진한 그는 소대를 이끌고 전장을 뛰어다니다 적의 수류탄 공격에 큰 부상을 입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눈이 안보이고 귀도 안들리고 발뒤꿈치가 다쳐 걸을 수도 없었습니다. 근처에 있던 전우에게 업혀 대대의무실에 도착했습니다."

그의 부상 상태는 너무 심각해 사단의무대대, 원주야전병원을 거쳐 울산 육군병원에 도착해 치료를 받았지만 그의 부상 보다는 잘 못먹어서 생긴 내장이 문제였다.

"전시 상황에서 밥을 잘 챙겨먹을 수가 없으니 군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그리곤 병원에서 치료를 위해 의병제대를 하게 됐지요." 그는 1952년 7월 5일 일등중사로 제대를 하게 됐다.

제대를 한 그는 몸을 치료하고 지내다 아는 천주교 지인의 일을 도와달라는 부탁으로 1959년부터 제주로 내려와 정착하게 됐다.

그는 1950년 화랑무공훈장을 수여 받았지만 정작 그는 이 사실을 몰랐다. 보훈청은 그의 훈장 수여 사실을 확인하고 2019년 2월 무공수훈자 등록을 마쳤다.

현재 서귀포시청 공공근로자로 일하고 있는 그는 "제가 기력이 있을때 통일이 돼서 제가 근무했던 부대와 전투를 벌였던 장소 등을 직접 차로 가보는게 소원입니다. 그때의 기억을 하나 하나 되 밟아 가며 함께 했던 전우들을 기리고 싶습니다"는 말과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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