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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
[진선희의 백록담]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존재 이유를 묻다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9. 05.13. 00:00:00
민선 6기 제주도정이 절반의 레이스를 막 통과하던 2016년 8월,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동아지중해 문화예술의 섬' 비전을 들고 제주도청 기자실을 찾았다. 그 때 언론 보도를 뒤져보면 원 지사는 "제주는 중국대륙과 한반도, 일본열도로 둘러싸인 동아시아의 지중해나 다름없다. 이 같은 지정학적 여건을 활용해 제주의 문화예술 브랜드를 세계화하겠다"며 제주세계섬문화축제 부활 추진 등 6대 정책 사업을 밝혔다. 제주도지사로 취임할 무렵 '자연, 문화, 사람'을 기치로 내세웠던 만큼 '동아지중해 문화예술의 섬'은 그 발언을 구체화하는 일로 여겨졌다. 6대 사업 중 일부는 없었던 일이 되었고 더러는 문화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지적이 있었지만 서툴더라도 제주도 문화정책의 방향을 궁리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나왔다.

돌아보면 그 시절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당시 발표가 제주 문화예술기관·단체장 등 4명이 동석한 '이벤트'에 불과했다고 깎아내릴 수 있지만 거버넌스 방식으로 지역 예술가들이 제주 문화정책 발굴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기실, 제주 문화정책의 밑그림을 그려야 하는 곳은 따로 있다. 스무살 청년기 진입을 앞둔 제주문화예술재단이다. 문예재단의 역량이 곧 제주도 문화정책의 '수준'일 수 있다. 하지만 도내에서 문화전문 인력들이 모여있는 거의 유일한 기관인 문예재단이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2001년 4월 25일 개원해 9대 이사장까지 맞이한 문예재단이 현재 목표로 잡은 사명은 '문화로 풍요롭고 예술로 행복한 제주 만들기'다. 최근 공개된 문예재단의 2018년 연차보고서에는 이같은 미션 아래 생애주기별 맞춤형 지원, 생활예술활동 기회 확대, 지역 특화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문화재 활용 문화콘텐츠 개발 등을 진행했다고 알렸다.

90쪽 분량의 보고서에 지난해 성과를 차곡차곡 담았지만 대부분 국비와 매칭한 전국 공통 정부 사업이거나 공기관 대행 사업이었다. 광역문화재단들이 유사한 고민을 안고 있다고 하더라도 제주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각해보인다.

현행 문예재단 조직도가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비정규직을 포함해 업무 현황에 나와있는 59명 중에서 정책 개발, 사업 발굴 등을 담당하는 직원은 없다. 대개 외부 논단으로 채워지는 정기발간물인 '제주문화예술정책연구'마저 2016년 15집 이후 소식이 끊겼다. 정부나 지자체 사업만으로 힘에 부친다는 방증이겠지만 이대로라면 문예재단의 존재 이유를 물어야 할지 모른다.

정책연구 기능을 두고 지역의 다양한 문화주체들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오는 일에서 변화가 시작돼야 한다. 문예재단 사업 분석·개발과 연계해 정기적인 포럼 운영으로 의제를 논의하고 의견을 모아내는 일이다. 지역 문화계 네트워크가 탄탄해야 문예재단도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다.

제주문예재단 설립·육성 조례에 나타난 수행 사업의 첫째는 문화예술정책 개발이다. 그 바탕 위에 가능한 문화예술의 창작보급과 예술활동 지원, 문화유산의 발굴과 보존, 문화예술 정보 교류 등이 뒤를 이었고 행정기관의 위임과 위탁사업 집행은 한참 밀려나있다.

<진선희 교육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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