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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언에 나선 정순희 할머니. "꽃을 사들고 아버지가 모셔진 4·3평화공원에 갔는데 위패가 난데없이 사라졌습니다. 너무 억울해서 3일을 계속 울었어요." 올해 나이 일흔 아홉의 김낭규 할머니는 70년 전 아버지를 잃었다. 제주 신촌국민학교 선생이었던 아버지가 4·3의 광풍을 피해 산으로 도피했다는 이유로 총살을 당한 것이다. 김 할머니의 아버지는 4·3희생자로 인정돼 평화공원에 모셔졌지만 이후 극우단체에 의해 위패가 내려지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김 할머니가 수 십년 동안 숨죽여 감춰왔던 얘기를 어렵게 꺼냈다. 제주4·3연구소 주최로 열린 '4·3증언본풀이 마당'을 통해서다. '그늘 속의 4·3, 그 후 10년'이라는 주제로 29일 제주도문예회관 소극장에 열린 이번 행사는 희생자로 불인정되거나 희생자로 인정됐지만, 후유장애인으로는 인정되지 않은 4·3 경험자들이 증언자로 나섰다. 김낭규 할머니를 시작으로 4·3 당시 돌아오지 않는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나섰다 바위에 깔려 평생 허리가 굽은 채로 살아야 했던 강양자(77) 할머니, 13살 어린 나이에 물고문도 모자라 전기고문까지 당해 현재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정순희(84) 할머니가 차례로 증언에 나섰다. ![]() 증언에 나선 김낭규 할머니. ![]() 증언에 나선 강양자 할머니. 이후 평생 허리가 굽은 채로 삶을 이어가면서 4·3후유장애인 신청을 했지만 번번히 거절을 당했다. 강 할머니의 호적 상 나이가 다르고, 겪고 있는 장애가 4·3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강 할머니는 "왜 구차하게 거짓으로 후유장애인을 신청하겠나"라면서 "4·3 때문에 한 여자가 날개 한 번 제대로 피지 못하고 인생이 망가졌는데, 오히려 국가는 나를 의심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증언에 나선 정순희 할머니. 정 할머니는 "나는 죽겠는데 진단서만 갖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병원 갔더니 사지가 절단 되거나 총에 맞은 상처 등 눈에 보이는 상처가 없어서 진단서를 끊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며 "4·3이 모두 해결된 것처럼 나오는 뉴스를 보면 신경질이 난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번 본풀이 마당을 주최한 이규배 제주4·3연구소 이사장은 "이들의 증언이 슬픔으로 그치는 자리여선 안된다"며 "용기와 희망의 자리, 당당하게 희생자의 이름에 올릴 수 있어야 한다. 4·3연구소도 이들의 이름이 희생자 명단에 오를 때까지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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