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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수형인 70년 만에 씌워진 '죄' 들었다
29일 제주지법 '4·3 군법회의' 재심 첫 공판 진행
검찰 개략적인 공소사실 밝힌 뒤 피고인 심문 요청
변호인측 "입증은 검찰 몫… 피고인 책임 전가 안돼"
재판부 "신속히 심문 진행… 연내 선고되도록 노력"
송은범 기자 seb1119@ihalla.com
입력 : 2018. 10.29. 18:21:10

29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4·3 군법회의 재심' 첫 공판에 4·3수형 생존인들이 휠체어를 타거나 가족에게 의지해 출석하고 있다. 강희만기자

"피고인은 1948년 4월부터 11월 사이 제주도 일원에서 불상자들과 함께 정부 전복 등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 내란죄로 1948년 재판을 받은 10명.

"피고인은 1948년 4월부터 1949년 6월 사이 직·간접적으로 무기나 물자 등으로 적을 구원하거나, 대한민국 군대 주둔지 내에서 간첩으로 활동했다."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1949년 재판을 받은 8명.

 제주4·3 당시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하게 옥살이한 피해자들이 70년 만에 자신들에게 씌워진 혐의를 검사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제갈창 부장판사)는 29일 201호 법정에서 18명의 4·3수형 생존인에 대한 '4·3 군법회의 재심' 첫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법정에는 재심을 청구한 고령의 피해자 16명과 피해자 가족, 4·3 관련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로 가득 차 이번 재판에 쏠린 관심의 무게를 알려줬다. 나머지 수형 생존인 2명은 건강 상의 이유로 이번 재판에 참석하지 못했다.

 재판부는 이날 공판에서 재심이 개시된 만큼 수형 생존인들이 어떤 행위를 저질러 처벌을 받았다는 '공소사실' 특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검찰에게 공소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노력해 달라고 검찰을 압박했다. 또한 수형 생존인들에게는 본안 재판이 시작됐기 때문에 '재심 청구인'이 아닌 '피고인'으로 신분이 전환됐다고 통보했다.

 검찰은 그동안 수형 생존인들의 법정 진술 등을 토대로 개략적인 공소사실을 밝힌 뒤 "70년 만에 열리는 역사적 재판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면서도 "현재 공소사실에는 범행 일시와 장소, 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고, 그 기록 또한 찾을 수가 없기 때문에 피고인에 대한 진술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재판부를 향해 '심문기일'을 잡아달라고 요청했다.

 반면 변호인측은 "이미 재심 개시 절차를 통해 증거를 제출했고, 피고인들 역시 법정에서 증언을 마친 바 있다"며 "공소장과 판결문 등 재판기록의 생성·관리·보전 책임은 국가에 있는 점을 고려하면 재판기록 부존재로 인한 불이익이 피고인들에게 돌아가면 안된다"고 맞섰다.

 

29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4·3 군법회의 재심' 첫 공판에 4·3수형 생존인들이 휠체어를 타거나 가족에게 의지해 출석하고 있다. 강희만기자

제갈창 부장판사는 "이번 재판 기록이 또 다른 재판의 자료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검찰의 피고인 심문이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피고인들이 대부분 고령인 점을 감안해 최대한 신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 선고도 올해 12월이나 늦어도 내년 1월까지는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오는 11월 26일과 27일 양일간 피고인에 대한 심문 절차를 진행하고, 12월 17일에는 검찰의 구형과 피고인 최후 진술을 듣는 결심기일, 12월에서 내년 1월 사이에는 선고기일을 예고했다.

 

재판에 앞서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와 수형 생존인들은 제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형 생존인 대부분이 구순을 넘겼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급한 상황"이라며 재판부에 조속한 판결을 부탁했다. 강희만기자

한편 이날 재판에 앞서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와 수형 생존인들은 제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형 생존인 대부분이 구순을 넘겼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급한 상황"이라며 재판부에 조속한 판결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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