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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영의 제주마을 탐방] (1)제주시 삼도2동
선사시대 거쳐 탐라국 시대 고성(古城) 있던 '무근성'
조상윤 기자 sycho@ihalla.com
입력 : 2018. 04.30. 20:00:00
최초 여학교·천주교당·오일장터 등 모든 문물 유입 정착
제주여인 홍윤애·귀양 온 조정철의 애틋한 사연도 흘러
원도심 한계 극복… 과거-현대 만남 조화롭게 추진 고민


이 곳에선 최초라는 단어가 흔한 수식어가 된다. 최초의 학교터, 최초의 천주교당 터, 성내교회 터, 오일장 터 등 모든 문물이 유입돼 정착된 곳이다. 선사시대를 거쳐 탐라국 시대의 고성이 있던 까닭에 '무근성'이라 불리기도 한다. 삼성설화의 부을나가 도읍지로 정한 삼도리는 그렇게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

삼도리는 1955년 시제 실시와 함께 삼도 1, 2동으로 나뉜다. 이후 개편을 거듭해 1983년 현재의 삼도2동이 됐다. 서쪽으로 병문천을 기준해 용담동과 나뉘며 동쪽으로는 남문로터리에서 한짓골을 따라 칠성로 입구의 일도2동과 경계를 이룬다. 또한 북쪽으로 탑동을 아우르며 남쪽으로 전농로를 기준으로 서사로와 중앙로의 사이에 위치한다. 즉, 묵은성, 탑동, 새성안과 남성마을 등 유서 깊은 마을들이 모두 삼도2동에 속한다.

오랜 세월 정치 경제의 중심지 닮게 역사 유적이 많다. 조선시대 제주지방을 관할하던 제주목 관아와 보물 제322호인 관덕정 그리고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6호인 향사당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제주성 서문이 있었던 자리인 진서루터, 왕명을 받들어오는 관리들이 머물던 영주관터 등이 인근에 자리한다.







무근성 표시석.

이 곳이 탐라국 시대의 도읍이었다는 증거도 여럿 있다. 탐라지 등의 옛 기록에 '주성 서북쪽에 옛 성터가 남아있다'는 이야기로 보아 오래 전부터 이곳에 성을 쌓고 도읍지로 삼았던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칠성단의 월대 터도 관덕정 인근에 위치했었다. 나라의 경조사와 제의를 위한 성스러운 장소로 7세기 경 축조한 것으로 본다. 그 외에도 지금의 우체국 자리에 탐라의 성주가 머물던 성주청 터가 있다.

이처럼 천년이라는 시간을 켜켜이 쌓아온 탓에 골목어귀마다 이야기가 숨어있다. 이 중 애달픈 사연도 있다. 칼호텔 사거리에서 전농로로 향하다 보면 홍윤애의 무덤터가 있다. 제주여인 홍윤애는 서울서 귀양 온 조정철을 사랑한다. 둘 사이에 아이도 낳았다. 하지만 정파싸움에 연루된 조정철을 살리기 위해 장형을 받다가 죽는다. 이후 관직에 복귀된 조정철이 제주목사에 부임해 온 후 연인 홍윤애를 위해 무덤을 단장하고 시비를 세운다.

근대교육의 효시도 삼도동 곳곳에서 볼 수 있다. 1907년 제주공립보통학교가 창설된다. 이는 제주북초등학교의 전신으로 제주 최초의 근대교육기관이다. 최초의 여학교인 신성여학교 터도 중앙성당 인근에 있다. 1909년 라크루 신부에 의해 설립돼 김 아나다시아 수녀가 초대 교장으로 취임하며 여학생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학생들이 독립운동으로 투옥되는 등 부침을 겪으며 7년 뒤 폐쇄됐다가 해방 후 1946년 다시 개설돼 지금의 신성여중교로 발전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관덕정과 무근성 전경.

근대화 과정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다. 남성로 길을 따라 걷다보면 제주 최초의 극장이었던 구 제주극장을 볼 수 있다. 한때 현대극장이라는 상호로 성업하다 1980년대 폐업 후 물류창고로 활용됐었다. 1920년 일본인들에 의해 지어진 제주도립병원 역시 과거의 유산이다. 지금은 몇 번의 리모델링을 거쳐 문화 거점지로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제주의 첫 민간방송국인 남양방송국 역시 삼도2동에 자리했다. 80년대 제주MBC로 개편된 후 신제주로 이동했다.

묵은성 골목길을 걷다 마주하는 풍경은 아주 이채롭다.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시간이 멈춘 듯 다소곳이 자리한 오래된 초가와 일본식 가옥들이 과거와의 만남을 주선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었는지 엿보게 한다. 나지막한 지붕에 야무지게 돌담을 둘러친 외관에서 비바람을 견뎌온 세월들이 느껴진다.

탑동에 다다르니 바닷바람이 콧등을 친다. 넓은 매립지에 호텔과 마트 등이 즐비하다. 전형적인 상업지구로 변해버린 곳이지만 과거에는 몽돌이 가득한 바닷가였다. 들고나는 바닷물에 '자그락자그락' 소리를 내며 내리쬐는 햇빛에 반들반들 빛나던 바닷가를 상상해 보라! 자연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잃어버리고서야 알게 한다. 아쉬운 대로 지금은 매립지를 정비해 시민공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래도 여름이면 최고의 산책코스가 된다.

삼도 2동은 아직도 개발과 보존 사이에 갈등중이다. 구도심 공동화로 점차 인구가 줄며 과거의 영광은 사라진지 오래다. 개발의 유혹이 달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상의 가치가 점차 변하고 있다. 골목길, 초가, 성터 등 과거의 유산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시간으로 빚어낸 가치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음을 알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과거와 현대의 만남을 어떻게 조화롭게 이뤄낼지 고민 중이다.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원도심의 한계를 극복 할 수 있길 바란다.

고신관 삼도2동 주민자치위원장은 "삼도 2동은 역사적으로 아주 유서 깊은 곳이다. 과거에는 인구가 1만7000여명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엔 인구가 8700여명으로 줄었다. 제주최초의 학교인 북초등학교의 학생수가 190여명으로 감소했다. 그만큼 젊은 사람들이 이곳에 살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안타까워했다. 뿐만 아니라 "은행이나 우체국 등의 업무가 종료되는 시간이 되면 그나마 다니던 사람들마저 뚝 끊긴다. 북한의 평양거리처럼 썰렁해진다. 당연히 장사도 되지 않아 2층 이상은 대부분 빈 건물이다. 골목길은 오래되다 보니 좁고 주차공간도 턱없이 모자라다. 여러모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고 현 실상을 전했다.

고 위원장은 "그래도 요즘은 조금 변화가 있다. 개발도 못하고 견디다 보니 옛것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니 원도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마을 밖에 없는 것들이 많다. 과거의 골칫거리가 보물이 된 것"이라면서 "제주목관아에는 주말마다 축제나 이벤트 등이 많다. 이제는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참여 할 예정이다. 마을홍보도 하고 지역에 입주한 예술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건도 만들고자 한다"고 변화의 움직임을 소개했다.

제주 목관아.

고 위원장은 "원도심 살리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아직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본다. 현실에 맞는 정책이 뒷받침돼 잘 진행될 수 있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홍경찬 삼도2동 동장은 "행정의 지원으로 입주작가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처음엔 지역민들과의 교류가 원활치 않아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이제는 축제에 같이 참여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극복하고 있다. 6월부터 8월까지 진행되는 삼도락장에서 어머니회와 함께 입주작가들이 참여해 마을벼룩시장을 운영할 예정"이라는 계획을 밝히면서 "행정은 지속적으로 사업들을 발굴해 지역민들의 삶의 질 변화에 이바지 할 것이다. 원도심이 낙후된 곳이 아닌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인식이 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행작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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