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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4·3 도민연대 엮은 '늑인'
"무슨 죄가 있어 그 일을 당해야 했나"
수형생존자 7명 이야기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8. 04.12. 19:00:00

지난해 4월 불법군사재판에 대한 재심청구에 나선 4·3수형생존자들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유도 모른 채 갇힌 몸, 더 늦기전 굴레 벗어야


"4·3 얘기만 하면 머리가 핑 돌아요. 나는 형무소에 갇혀있고, 제주에 있는 식구들은 셋째동생 죽어서 시체가 썩는 줄도 모르고, 찾으러 갈 수도 없었던 그 상황이 뭐냔 말이오. 우리가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런 일을 당했느냐 말이지."

1948년 봄, 그들은 꽃다운 청춘이었다. 그 사건이 그들을 끝간 데 없는 고통 속으로 밀어넣을 줄 아무도 몰랐다.

김영주 옹도 그랬다. 선흘리 목장에서 소와 말을 돌보던 그는 1949년 5월 함덕에 가면 집에 보내준다는 말을 믿었다가 트럭에 실려 끌려갔다. 그 길로 동척회사 주정공장 수용소에 가둬졌다. 그는 "무슨 이유로 지금까지 산에 있었느냐"며 취조를 당했다. 짐승들을 굶길 수 없어 목장에 있었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스물여덟이던 그해 대구형무소에 수감됐고 부산형무소를 거쳐 마산형무소까지 8년간 갇힌 몸이었다.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오니 그의 나이 서른여섯. 그 사이에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가 세상을 등졌다. 거문오름도, 나무도, 풀도, 햇빛도, 바람도 그대로였지만 목장은 텅비어 있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했던 그는 동생이 챙겨준 여비 500원을 들고 제주를 떠났다.

문소연씨가 글을 쓰고 4·3도민연대가 엮은 '늑인(勒印)'은 그를 포함 4·3수형생존자 7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도장을 새긴다는 의미의 '늑인'처럼 그들에게 여전히 깊은 상처로 각인된 4·3의 현실을 전한다.

7명의 생존자들은 자신들의 무엇이 수형 생활을 해야 할 만큼 범죄가 되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들은 그 해 가을과 겨울에 겪은 일을 꺼내놓는 게 여전히 공포스럽다. 도망다니다 붙잡혀 끌려간 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제주를 떠나는 배에 태워졌다. 그들은 오직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으로 수감생활을 견뎌냈다.

4·3수형인들은 2007년 4·3특별법이 개정되면서 비로소 희생자로 신고할 수 있었다. 2014년까지 희생자로 신고된 4·3수형인 수는 302명이다. 4·3도민연대가 실태조사를 통해 확인한 4·3수형 생존자는 2016년 기준 36명에 이른다. 이 중에서 18명이 지난해 4월 제주지방법원에 4·3재심청구를 했다.

'늑인'에 소개된 생존자와의 만남은 2010년 여름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 김영주 옹은 2014년 별세했다. '살아있는 역사'인 4·3수형생존자들의 나이가 어느덧 구십을 바라보거나 이미 넘겼다. 더 늦기 전에 그들의 가슴에 늑인된 굴레를 벗겨줘야 한다. 도서출판각. 1만50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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