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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훈 한라시론] 광화문광장, 동백꽃 피다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입력 : 2018. 04.12. 00:00:00
동백꽃이 제주4·3의 상징화가 되었다. 올 봄 4월이 되면서 광화문광장에는 동백꽃이 여기저기 피어나기 시작했다. 북위 36도에 위치한 충남 서천군 마량포에 있는 동백나무숲이 한반도의 내륙 동백꽃의 최북단 자생지다. 올 봄 제주 동백꽃은 북방한계선을 넘어 광화문광장까지 밀고 올라 온 것이다. 70년 전 제주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속절없이 목이 잘려 통꽃으로 툭툭 떨어지는 동백꽃이었다. 제주의 화가는 푸른 가지에 아름답게 피어난 동백꽃을 차마 그리지 못하고 차가운 땅에 몸을 누인 피 붉은 낙화를 그려야 했다. 피맺힌 4·3의 동백꽃 사연들은 하나같이 마음 떨리고 가슴 에이지 않은 것이 없다.

4월은 부활의 계절이기도 하다. 처참하고 슬프기만 했던 제주의 동백꽃이 대한민국의 심장이며 촛불의 성지인 광화문광장에 피어난 것이다. 제주 동백꽃이 시위와 전시 그리고 문화공연으로 광화문광장에 이처럼 피어난 일은 이제껏 대한민국역사에 없었다. 제주4·3항쟁이 이제야 비로소 대한민국의 역사가 된 것이다. 죽음에서 일어난 4·3동백꽃 부활은 70년이 걸렸다. 길고 긴 세월이었다.

지난 달 광화문광장, 3·1절 100주년 기념식에 제주4·3유족회가 펼친 '4·3특별법 개정하라'는 플래카드 귀퉁이에는 제주4·3 70주년을 상징하는 동백꽃이 그려져 있었다. 3월 27일 저녁,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제주4·3특별전을 기념하는 공연장 입구에서는 입장객들에게 동백꽃 배지를 나누어 주었다. 3월 30일부터 시작한 '제주4·3특별전'은 6월 10일까지 '제주4·3 이젠, 우리의 역사'라는 타이틀로 계속된다. 4월 3일에는 광화문 분향소 추모제가, 4월 7일에는 광화문 국민문화제가 하루 종일 열렸다. 그러나 국민문화제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에는 3월 1일과 마찬가지로 4·3행사에 맞불을 놓듯 태극기부대가 위협시위를 하였다.

광화문광장에 부활한 동백꽃 주변을 맴도는 태극기부대의 출몰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70년 전 태극기를 강매하며 제주도민을 괴롭히던 서북청년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회 여기저기에 뿌린 내린 그들은 '동백꽃 부활'에 놀라 숨죽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악의 세력은 쉽게 사라지는 종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어둠 속에 정체를 숨긴 채 양의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들 세력에 맞서 동백꽃 부활을 지켜내려면 대통령이 건넨 따듯한 위로의 추념사에 쉽게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엄혹한 침묵의 시간 속에서 4·3의 금기(禁忌)를 깨고 그 날의 진실과 기억을 위해 싸운 언론 활동과 학문적 연구도 있었지만, 시와 소설 그리고 대중음악과 그림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올해 제주4·3항쟁 70주년 행사에서도 문화예술의 힘을 보았다. 동백꽃 부활을 국민 속에 더 널리 더 깊이 새기려면 무엇보다 다양한 문화예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제주4·3에 대해 생소한 신세대에게는 그들에게 친숙한 미디어와 장르를 통해 더 많은 진실의 정보를 제공하였고, 단편적이고 왜곡된 지식을 기억하고 있는 기성세대에게는 4·3 전후의 올바른 진상을 제대로 알려주었다.

4·3동백꽃은 한풀이를 넘어 해마다 새롭게 피어나야 한다. 잿밥에만 눈이 어두운 사람들의 잔치가 돼서도 안 된다. 다음부터는 부활의 기쁨도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제주4·3의 영령을 위로하고 부활을 알리는 '제주 동백꽃을 위한 교향곡'이 관덕정광장과 광화문광장에 울려 퍼지는 날을 상상해본다. 서곡은 슬프게, 마지막 악장은 장엄하게! <김양훈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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