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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
[진선희의 백록담] 폭설 '공짜 버스'보다 급한 일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8. 01.22. 00:00:00
정류장에 있는 두 명의 여성은 신이난 모습이었다. 스마트폰으로 눈쌓인 풍경을 찍으며 들뜬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관광객인 듯 제주도 서부 어느 항구 마을에서 보낼 여정을 짜고 있었다. 모처럼 설국이 된 제주에서 더 많은 추억을 쌓고 싶어하는 그들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날 제주도민의 한 사람으로 기나긴 하루를 보냈다. 하이얀 눈 세상에 즐거워하고, 여유있게 버스를 기다릴 수 있는 관광객의 처지가 아니었다.

지난 11일 출근길, 마을 안길을 오가는 버스는 온다간다 소식이 없었다. 정류소에 버스도착 정보단말기(BIT)마저 없는 터라 더욱 깜깜이었고 휴대전화로 검색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마을에서 걸어나와 일주도로에서 제주시내로 향하는 시외버스를 기다렸다. 도로가 얼어 너나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는 바람에 버스는 예상대로 만원이었다. 15분마다 온다는 버스는 예고된 시간을 한참 넘겼고 가까스로 얼굴을 내민 버스는 승객이 꽉 찼다는 이유로 두 대나 정류장에 세우지 않고 지나갔다.

전날은 어땠나. 집으로 가는 길, 일찌감치 버스를 타기로 결정하고 퇴근 후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평화로의 사정은 험악해졌다. 눈길에 미끄러진 차량이 엉킨 탓인지 도로 위 차들이 한동안 꿈쩍도 안했다. 버스는 할수 없이 정해진 길을 벗어나 우회했다.

예정된 시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으리란 기대는 애저녁에 접었지만 버스는 몇번이고 가다서기를 반복했다. 꽉 막힌 도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2시간 넘게 걸려 마을 입구에 도착해 간선 버스 정류소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앞서 정류소에 있던 승객은 3시간 넘게 버스가 오지 않고 있다며 전화기만 만지작거렸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마을 안길을 30분쯤 걸어 집에 다다랐다.

폭설로 제주도내 대중교통 시스템에 이상 신호가 온 건 지난 10일부터다. 제주도가 그걸 알아채고 11일 아침엔 버스 이용에 큰 불편이 없도록 손을 써주길 바랐지만 허사였다.

지난해 8월 제주도는 대중교통 체계 개편에 나섰다. 제주도는 600억원이 투입된 대중교통 체계 개편에 제주도민의 기대만큼 우려가 크다는 점을 의식했던 탓인지 시행 5일만에 교통카드 이용객이 늘고 버스 내부와 정류소 무료 와이파이 만족도가 높다는 자료를 서둘러 내놓았다.

출근길 시외버스에 오른 제주도민을 속절없이 공항으로 내몰던 일부 노선을 조정하고 시외버스 요금을 종전보다 절반 이하로 내리는 등 그간 제주도민들의 대중교통 접근성을 높이려는 제주도의 노력이 있었다는 걸 안다. 주변 어르신들이 제주교통복지카드 덕에 공짜 버스를 탄다며 좋아하는 장면도 봤다. 하지만 이번 폭설에서 드러난 제주도의 대중교통 정책은 실망스러웠다. 일이 터지고 난 뒤 수습하기에 바빴다.

이런 가운데 제주도가 지난 주말 제주도에 폭설이 내리면 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했다. 폭설때 공짜로 버스를 운행하면 무리한 승용차 이용을 줄여서 교통사고를 예방할 수 있고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사례도 감소할 것이라고 추진 배경을 달았다. 시행 기준, 예산 등을 점검해 최종 확정지을 계획이라지만 이미 시내버스 수준으로 이용 요금을 낮춘 터에 공짜 버스 정책이 그리 급한가 싶다. 폭설에 대중교통이 예정대로 가동될 수 있는 여건을 살피고 촘촘한 매뉴얼을 마련하는 일이 더 절실해보인다. 제주에 일터를 잡고 살아가는 제주사람들이 언제든 편안하고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말이다.

<진선희 교육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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