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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시론]비자림의 보물가치 수용력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입력 : 2017. 09.21. 00:00:00
제주도의 비자림은 생태가치가 우수하여 예전부터 특별히 관리되어온 곳이다. 천년의 숲으로 이름을 지은 것처럼 울창한 밀림과 오래된 비자나무, 곰솔, 팽나무, 후박나무, 올벚나무, 상산 등 다양한 식물과 동물들이 공존하고 있다. 숲이 평지에 조성되어 있고 비자나무 단일림으로 조성된 세계최대 군락지로 그 경관이 뛰어나 남녀노소 모두가 사랑하는 곳이다. 그런데 최근에 비자림을 찾아갈 때마다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비자나무는 특별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에 해마다 비자열매와 나무를 조정에 바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섬사람에게는 공물로 바치기 위하여 특별히 관리해야 하는 애환 나무라고 하겠다. 예종 1년(1468년) 고택이라는 사람이 상소문에서 "한라산의 소산물(所産物)은 안식향(安息香)·이년목(二年木)·비자(榧子)·산유자(山柚子) 등과 같은 나무와 선재(船材)들인데, 이 모두가 국용(國用)에 절실한 것들입니다."라고 하면서 벌채를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국대전의 기록에서도 "제주 삼읍의 비자나무, 녹나무, 조록나무, 산유자 등은 부근 주민을 지정해 관리시키고 해마다 그 수를 조사해서 보고하라."는 내용도 있다.

나라에서 직접 관리한 이유는 나무를 보호하거나 백성들을 위함이 아니었다. 해마다 비자나무와 열매를 조정에 바쳤기 때문에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제주 섬사람들의 삶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나무였다. 그리고 비자나무는 제주도 전역에 걸쳐서 상당히 많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해마다 공물로 바치기 위해 수백 년 동안 벌채를 하면서 개체수가 감소되었다.

최근 비자림은 경관적 가치가 알려지면서 한 해 수십만 명이 찾고 있는 관광지가 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비자림에 가면 호젓한 분위기에서 함께 한 여행자들에게 나무와 생명에 대하여 해설하고 같이 명상도 하면서 숲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곤 했다.

비자림에서는 여행자들에게 나무와 대화를 해보라고 한다. 침묵하면서 나무가 건네는 소리를 들어보라고 한다. 조용히 숨을 죽이고 명상을 하면서 숲속 정령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껴보라고 한다. 그리고 이름만큼 다양한 나무들의 특성을 헤아려 본다. 나무를 찬찬히 바라보게 되면 인류보다 더 오래 지구상에 존재해온 생존전략이 느껴지고 이내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신성한 경험들이 과거 추억 속에만 남겨지게 되었다.

비자림 숲으로 밀려오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흙먼지가 나뭇잎과 풀잎을 뒤덮은 것을 보고 있노라면 미안한 마음이 저절로 든다. 사람들은 초록생명체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 그 숲이 얼마나 피해를 보고 있는지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숲이 아름다운 것은 다양한 생명들과 어울림 속에 공존하기 때문이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분이라 비자림에 가면 그 숲에 알맞게 어울려야 한다. 이제라도 비자림의 수용력을 파악하여 지속가능한 활용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예전처럼 봄에는 비자 꽃씨들의 화려한 비상을 감상하면서 왕성한 생명력으로 나무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기도 하고, 여름에는 녹색으로 익어가는 비자 열매의 향기로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느낌을 제대로 느끼게 해야 한다. 그리고 가을부터 겨울에 묵언 수행을 하는 숲에서 세상을 보는 지혜를 얻어 갈 수 있어야 한다. 제주도의 보물이 진정 보물로서의 가치를 지닐 수 있기를 바란다.

<윤순희 (주)제주생태관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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