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한라人터뷰
[한라人터뷰]김태희 강원도 삼척시 갈남리해녀회장
"해녀 뱃노래로 수십년 고단한 삶 다독여"
고대로 기자 bigroad@ihalla.com
입력 : 2017. 09.14. 00:00:00

김태희 갈남리해녀회장은 스무살에 고향을 떠나 강원도 갈남마을에서 물질을 이어왔다. 그 시절에 불렀던 '해녀 뱃노래'에는 고된 출향 해녀들의 삶이 담겨 있다. 강경민기자

스무살에 강원도 갈남리로 물질 왔다 결혼후 정착… 수십년 바다 일터 삼아
물질하며 불렀던 '해녀 뱃노래'에는 그 시절 출향 해녀 삶 고스란히 담겨
1995년 강원어촌지역민속지에 수록돼 노동요 드문 지역에 귀한 어업 자료로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갈남리 앞바다는 암반지역으로 미역 등 해조류가 성장하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갈남마을 주민들은 1960년대부터 미역 수요가 크게 늘어나자 미역을 채취하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가 해녀들을 모집해 왔다.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출신인 김태희 갈남리 해녀회장(69)은 스무살에 이곳으로 출향 물질을 왔다가 주변 사람의 소개로 당시 동네 총각이었던 김기복씨를 만나 1974년에 결혼했다. 이후 갈남마을에서 40여 년 동안 바다를 일터 삼아 1남 2녀의 자녀들을 키워냈다.

김 회장은 "처음 이곳에 와서 7~8년 동안은 노 젓는 배를 타고 물질을 했다"며 "당시에는 미역과 전복, 성게, 해삼 등은 어디서나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점심 도시락을 싸고 노를 저어 임원 앞바다까지 가서 물질을 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그녀가 이곳에 와서 물질하면서 불렀던 '해녀 뱃노래'에는 스무 살의 꽃다운 나이에 제주를 떠나 육지로 나와 고된 물질을 하는 출향 해녀들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이어도사/ 우리 배는 참나무로 지은 배라/ 참매 새끼 나는 듯이 잘 도망가네/ 이어사 이어사 이어사나. 우리 부모 날 날 적에/ 어떤 날에 나를 낳고 남들 난 날에 나도 낳건만은/ 어떤 사람 팔자가 좋아 이 고생을 왜 하는고/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제주도 여락선 떠난데는 굴파도만 남아 있고/ 우리야 고향은 언제 나며 가리 칠팔월 나여는/고향 찾아 가리라/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 생략-'

김 회장이 부른 '해녀 뱃노래'는 1995년 4월에 '강원어촌지역전설민속지'에 수록됐다. 논이 없어 노동요가 거의 전승되지 않는 이곳에 귀한 어업 관련 자료가 되고 있다.

갈남리 마을의 제주 해녀 모집은 1980년대 초까지 이어져 오다가 80년대 중반 양식 미역이 유통되면서 자연산 미역의 수요가 줄어들게 됐고 백화 현상으로 미역 생산량이 감소하자 더 이상 제주 해녀를 데려 오지 않았다. 김 회장은 "한때 갈남리 주민들은 4~6월 돌미역 채취 수익으로 1년을 풍족하게 생활을 했다"고 떠올렸다.

김 회장은 "8월에 성게와 홍합 채취가 끝나면 해삼도 바위 밑으로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9월부터는 거의 물질을 하지 않고 쉬다가 11월에 해삼 작업을 시작한다"며 "하지만 해삼 가격이 맞지 않으면 물질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도 제주의 여느 해녀들과 마찬가지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물질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드니까 생각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고 젊었을 때와는 달리 몸이 마음을 따르려 하지 않음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제주 출향 해녀들에 대한 기록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들이 갈남리 지역에 뿌리 내린 고유한 공동체 문화를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보존·전승하기 위한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