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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人터뷰]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해녀회 영어조합법인 김계자 회장
"제주, 출향 해녀 삶에 관심 가져야"
고대로 기자 bigroad@ihalla.com
입력 : 2017. 08.31. 00:00:00

김계자 회장은 "제주에서 객지에 나가 있는 해녀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 준다면 이곳에서도 우리를 홀대하지 않을 것"이라며 출향 해녀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강경민기자

지난 60년 동안 낯선 바다에서 물질을 했다. 내 바다가 아닌 다른 사람(선주)이 돈을 주고 산 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그 대가를 받으면서 자식들을 키워냈다. 손주들의 재롱을 보면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도 좋을 80세 나이에도 평생 해 온 물질에 길들여진 몸은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바다로 향한다.

1950년대말 제주도에서 보리밥 한 끼 제대로 먹기가 힘든 시절,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 19세 나이에 고향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를 떠나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에 물질을 왔다가 정착하게 된 소원면 해녀회 영어조합법인 김계자(80·사진) 회장의 이야기다.

김 회장은 이곳에서 일정한 값을 지급하며 남의 토지를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나 다름 없는 인생을 살아왔다. 지금은 자식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워냈고 경제적으로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제주 출향해녀로 살아온 지난 세월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시간이었다.

"1950년대 먹고 살기 위해 고향 떠나 사람 취급 못 받던 시절… 설움 삼켜
의항리 어장 작업권 다시 되찾는 데 제주 출신 고인규 전 해경청장 도움 커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로 인해 어장 황폐화… 다시 힘든 시절 견뎌"


"제주해녀들이 여기에 처음 와서 얼마나 설움을 받았는지 아느냐. 제주도 해녀들은 사람으로 보지도 않았다. 사고가 나서 병원에 가도 사람 취급을 안했다. 이전에는 모항항 근처에서도 물질을 했는데 지금도 들어가면 군인들이 보트를 타고 와서 상스러운 욕설을 하고 나가라고 한다"며 현재 100㏊가 넘는 의항리 마을어장의 작업권을 되찾게 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16년 전쯤에 우리와 의항어촌계가 마을어장 행사(작업권)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우리를 무시하고 다른지역 해녀들에게 작업권을 줘 버렸다. 이후 의항리 마을어장의 작업권을 되찾기 위해 계약서를 들고 도청과 군청, 해양경찰청을 수십번 찾아갔지만 앞에서만 알겠다고 답변하고 우리를 무시했다. 여러가지 방안을 찾던 중 마침 사돈인 제주 성산포 오조리 출신 고인규 당시 동해지방해양경찰청장이 생각나서 고 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충청남도를 한번 방문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여기에 온 고 청장은 우리의 사연을 들어보고 계약서를 보고 난 후 이곳 해경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왜 해녀들의 말을 안들어 주고 조사도 안해 주느냐'고 했더니 다음날 형사들이 직접 찾아와서 조사를 해 주었고 이후 의항리 바다 작업권을 되찾게 됐다"고 김 회장이 말했다. 그러면서 "고 청장이 찾아와 이 같은 일을 해결해 주고 난 후 수십년동안 제주해녀들을 문전박대했던 이곳 군청 공무원들의 태도가 달라졌고 제주해녀들을 바라도는 보는 시각과 인식도 많이 개선됐다"고 덧붙였다.

지난 2007년도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고는 마을어장의 황폐화를 가속화시켰고 해녀들은 다시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당시 보상금 2100만원과 방재작업을 하면서 번 돈을 가지고 1년 정도 생활을 하다가 더 이상 놀 수만은 없어 기름피해가 없는 안면도 바다 공유수면을 찾아 물질을 갔는데 안면도 사람들이 물질을 하지 못하게 했고 물질을 못하면 우리는 굶어 죽는다고 사정 사정을 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제주 출신 선주가 안면도 어장을 샀고 우리는 어장에서 물질을 하고 선주와 반반 나누어 먹고 살았다."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고는 자연산 전복의 산란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한다. 자연상태의 전복은 매년 6월에 알을 낳고 이 어린전복이 성장을 해서 다시 산란을 하는 것이 반복돼야 하는데 이런 일련의 과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 회장은 "기름유출 사고 이전에는 전복을 하루에 10~15kg씩 잡았는데 지금은 2~4kg 정도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라며 "태안군에서 지원해 주는 전복 종패를 뿌려도 5년 정도 지나야 잡을 수 있고 전복종패 10개를 뿌리면 그중 3개 정도만 생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회장은 "20년 동안 군청에다 고무옷을 갈아 입을 수 있고 음식을 먹으며 쉴 수 있는 해녀휴게실을 지어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여태껏 안 들어 주다가 올해야 기름 유출 후 나온 마을발전기금으로 모항항내 해녀휴게실을 만들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여든 나이에도 달리는 배에서 바다로 뛰어 내려 물질할 정도로 건강한 김 회장은 "제주에서 객지에 나가 있는 우리 해녀들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지원해 준다면 이곳에서도 우리를 천대하고 홀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출향 해녀들에 대해 제주의 관심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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