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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으로 읽는 제주예술사](4) 관덕정과 다방에 제주미술의 '최초’
김인지 이끈 제주도미술협회 창립전에 구름 인파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7. 06.06. 00:00:00

전시장이 생기기전 학교나 공공장소는 주요한 전시공간이었다. 1966년 한라문화제 전시 장면. 사진=제주예총 제공

1955년 2월 결성뒤 5월 연 미술전람회에 수천 관람객 몰려
학교·공공장소 중심의 전시문화 60~70년대 다방서 꽃피워
고교생 강태석 전시 등 제주미술사 주요 인물들 다방전 거쳐

1955년은 제주미술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그해 2월 24일, 한국미술협회제주도지회의 전신으로 여기는 제주도미술협회가 출범한 해다.

그날 오후 2시 제주도 중심지 제주읍 관덕정에 자리잡았던 미국공보원에 제주지역 미술인들이 모여든다. 규모는 단출했다. 당시 '제주신보'의 기사를 보면 행사장에 참석한 인원은 10여명 정도다.

▶관덕정에 있던 미국공보원이 전시장=제주도미술협회 결성은 오래전부터 지역 미술인들에 의해 추진돼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제주지역 미술문화의 질적 향상을 기하기 위한다는 원론적인 목표를 표방했지만 토박이 미술인을 주축으로 꾸려진 미술단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48세이던 김인지가 회장을 맡았고 홍정표·홍완표가 부회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조영호 박태준 장희옥 등은 상임위원으로 참여했다.

같은 해 5월 20일부터 미국공보원에서 펼친 제주도미술협회 주최 미술전람회는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시기 신문 기사엔 '제주에서 처음 열린 종합 미전'으로 개최 3일만에 약 4000명의 관객이 몰렸다고 했다. 전시장 크기 등을 짐작해보면 엄청난 숫자다. '구름 인파'에 제주도미술협회는 5월 22일까지 예정됐던 전시를 이틀 더 늘려 24일까지 이어갔다.

1967년 한라문화제(지금의 탐라문화제) 다방 전시. 의자에 붙은 무지개란 이름으로 볼때 당시 무지개다방에서 열렸던 중앙초대전으로 추정된다.

출품작은 100여점이었다. 초대 회장이던 김인지의 작품이 도드라졌던 것 같다. 김인지는 신문 기사 인터뷰에서 "이번 전시는 결코 내 작품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본도 미술의 향상을 열망하고 또한 미술계 진흥의 계기를 만들어주려고 젊은 사람들과 더불어 동심으로 돌아가 전시를 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미술전람회에 세 차례 입선한 적이 있는 김인지는 이때 1935년 제14회 대회 입선작인 '애(崖)'와 1938년 제17회 대회 입선작인 '해녀' 등을 내놓았다. 지금의 서귀포시 하예동 출신인 김인지는 제주미술사의 첫머리에 놓이는 인물이다. 제주4·3발발 직전이던 1948년 2월 제주북교에서 양화개인전을 열었다.

그와 함께 제주도미술협회 창립에 관여했던 홍정표는 제주 민속을 기록한 사진가로 알려져있다. 장희옥은 동경제국미술학교를 거쳤던 화가다. 박태준은 서예가 이전에 화가로 활동했다. 일본에 유학했던 조영호는 1948년 10월 박태준과 2인 유화전을 열었고 제주도미술협회 창립 이전인 1954년 9월엔 오아시스다방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관덕정과 그 주변은 예나 지금이나 예술인들의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제주민예총이 지난 4월 관덕정 마당에서 4·3문화예술축전을 펼치고 있다. 사진=한라일보 DB

▶소라다방 기억 안고 젊은 전시공간으로=제주미술 태동기의 전시 공간은 제주읍 일대에 있는 학교나 공공장소였다. 제주북교, 관덕정이 대표적이다. 화가인 고영만 선생의 기억에 따르면 제주도미술협회의 출발을 지켜봤고 창립전 등을 치렀던 미국공보원은 관덕정 마루 한쪽을 벽처럼 둘러막아 만들어졌다. 미국공보원은 사업을 확장하며 1956년 관덕정에 도서실, 전시장 등을 갖춘 상설문화관을 설치한다.

다방 문화가 열리면서 전시장은 차츰 그곳으로 옮겨간다. 제주도가 펴낸 '제주문화예술 60년사'(2008년) 전시 부문 연보를 보면 1988년 8월 제주도문예회관 전시실이 문을 연 이후에도 다방(다실)전이 있었다.

50년대 하나둘 늘기 시작한 다방 전시는 60~70년대 전성기를 맞는다. 대부분의 미술 전시가 다방에서 이루어진다. 초창기 한라문화제 전시 분야 행사장도 다방이었다. 작고작가, 중진작가 등 제주 미술인들은 한번쯤 다방을 거쳐갔다. 날짜 순서대로 꼽아봐도 고영만 김택화 김원민 강영호 한명섭 양인옥 양창보 현중화 등이 60년대 다방 전시의 주인공들이다.

이보다 앞서 1955년 7월 남궁다방에서 열린 '고교생' 강태석의 전시도 화제를 뿌렸다. 서울예술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던 강태석은 방학 기간을 이용해 양화 15점을 들고 다방전을 가졌다. 신문엔 "양질감 있는 강군의 솜씨가 놀라움을 샀다"는 기사가 실렸다. 서른여덟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실험적 화풍을 펼쳐보인 화가 강태석의 가능성을 발견한 곳이 다방이었다.

제주미술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다방의 흔적은 이제 거의 사라지고 없다. 50년대부터 80년대말까지 30년간 제주지역 전시공간 역할을 했던 위상에 비하면 기록이 빈약하다.

추억 속 다방 이름만 희미하게 전해지지만 옛 기억을 품은 젊은 전시공간이 있다. 제주 예술가들의 창작물을 담아내고 있는 이디아트 갤러리로 1970년대 초반 김택화 유화전, 양창보 한국화전, 강용택 동양화전, 강광 습작전 등을 풀어냈던 중앙로 소라다방 자리에 들어섰다. 진선희기자




제주미술사 연구 더딘 편

도립미술관 적극 나서야



서양화가 김인지의 1935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 '애(崖)'. 제주도립미술관 소장 작품.

그동안 제주미술계에서는 제주미술사를 정리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벌여왔다. 자연환경과 문화가 다른 지역미술의 특수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따른 결과다.

지난 세기말인 1999년 한국미술협회도지회에서 '제주미협 40년사'를 냈다. 1955년 제주도미술협회 창립전에서 출발해 1998년 자료까지 담았다. 제주미협의 연혁, 분과(장르)별 활동과 전망, 제주미술 전시 일지 등을 소개했다. 신문 기사, 미협 전시 팸플릿, 개인 소장 자료, 증언 등을 토대로 제주 미술인들이 직접 집필했다.

제주도립미술관은 작고작가를 중심으로 '제주미술인 조사자료집'을 발간했다. 2012년에 나온 '제주미술인 조사 자료집'은 2008년 한국미술협회제주도지회가 열었던 제주 작고작가 미술제, 2009년 도립미술관 개관 기념전 '제주미술의 어제와 오늘전'이 바탕이 됐다.

이 자료집에는 서예가 현중화, 서양화가 김인지 송영옥 양인옥 한명섭 강태석 김택화, 한국화가 양창보 등 23명의 삶과 작품 세계를 수록했다. 인물을 통해 제주미술사를 고찰한 자료로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제주 미술인들의 면면을 만날 수 있다.

민간단체가 주축이 돼 제주미술사 연구의 물꼬를 텄지만 후속 작업이 더디다. 이제는 제주 대표 미술관인 도립미술관이 그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도립미술관에서 '제주미술인 조사자료집'을 묶어냈다고 하지만 종전 작고작가 자료를 정리했던 평론가가 도맡아 처리했기 때문이다.

도립미술관은 제주미술사 정립을 중점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얼마전 탐라미술인협회와 공동 기획한 4·3미술 아카이브전을 여는 등 드물게 성과물을 내보여 왔지만 도립미술관의 역할을 더 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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