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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책은 필수품, 서점은 유망사업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입력 : 2017. 03.28. 00:00:00
"서점은 사양산업이 아니다. 해보니 가능성이 보인다." 지어낸 말이 아니다. 서귀포 중앙로터리에서 참고서 없는 서점, '북타임'을 운영하는 책방 사장님에게 직접 들은 말이다. 녹음할 거라고, 사실만 말해주셔야 한다고 추궁했다. 정확히 두 번 말씀하셨고, 분명히 두 번 들은 말이다. "서점은 기획만 좋다면 가능성으로 충만하다." 근래 내 뚫린 귀로 들은, 인간의 입에서 나온 말 중 가장 희망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이었다.

지역의 가게를 리서치하는 잡지 '브로드컬리' 2호의 주제는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부제는 "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이었다. 새로 생긴 작은 서점들의 애환이 생생하게 실려있는 잡지다. 인터뷰에 참여한 7곳의 서점 중 벌써 2곳이 2016년 말에 문을 닫았다. 그나마 가장자리를 잘 잡은 서점에 속하는 다시서점 김경현 책방지기의 인터뷰를 일부 옮겨본다. "시집 한 권 정가가 8000원 정도 되니까 80% 공급률을 기준으로 한 권 팔 때 1600원 남는다. 10% 할인을 적용하면 800원이 남는다. 5% 적립까지 하고 나면 한 권에 400원 남는다. 카드 수수료는 별도다. 장사하면 안되는 구조다." 그 인터뷰의 마지막 문장 두 줄. "어느 날 서점이 문을 닫는다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닐 것이다. 당신들이 책을 사지 않은 탓이다(웃음)." '괄호 열고 웃음 괄호 닫고'를 한참 들여다봤다.

단군 이래 불황이 아닌 적이 없다는 출판시장을 생각하면, 왜 굳이 아까운 나무 베어가며 책을 내야 하는지 의문이 들 법도 하다. 자본주의 논리가 완전히 집어삼킨 지구별에서 여전히 그 논리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 출판계, 더 넓게는 문화예술계에 퍼져있는 것은 알겠다. 책을 만들거나 팔거나 유통하는 일련의 과정에 손 하나를 보태는 모든 이들은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언제나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들 모두에게 끊임없이 지지말고 함께 가자고 독려하는 것도 결국 동병상련의 업계 동료들인 모양이다. 서점에서 가능성을 찾아 희망을 전해주는 것도, 서점이 문을 닫지 말라고 책 한 권이라도 사주는 이도 결국은 끝이 안 보이는 힘듦을 함께하는 친구들이다. 만약 동료의 범주에 날 끼워준다면, 나 역시 지치지 말고 끝까지 희망을 말해야겠다.

다쿠치 미키토가 쓴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동네서점'이라는 책의 첫 문장은 이렇다. "책은 기호품이 아니라 필수품이었다." 서점의 아들로 태어나 서점 직원으로 일하며 서점과 평생을 해온 저자는 책이 기호품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며 생각은 바뀐다. 강도 9.0의 대지진이 덮친 도호쿠 지역의 서점을 재해 발생 일주일 만에 열었을 때, 동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책을 사 갔다. "어떤 책이든 좋으니 아무튼 책을 좀…."이라고 말하며 앞다퉈 책을 구해간 탓에 서가는 금세 텅 비었다. 집이 무너진 상황에서도 갈구하게 되던 어떤 것, 재난의 순간에도 간절히 원하던 것. 티브이도 전화도 인터넷도 먹통인 최악의 순간, 불현듯 떠오른 오래된 장난감이자 되찾고 싶은 일상의 위안. 그랬다. 책은 인류의 오래된 필수품이었다. 책과 동네서점이 없는 미래는 대지진보다 더 큰 재난상황일지도 모르겠다. 재난대비책을 강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나연 퀠파트프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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