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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93) 서귀포시 대정읍 신평리
옹기 굽던 가마터 곳곳… 이젠 곶자왈공원 가치 높일 꿈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입력 : 2016. 07.19. 00:00:00

한라산 방향으로 바라보면 평탄 지형에 전형적인 농촌 모습이다(위). 신평곶자왈 전망대에 오르면 숲 위에 솟아난 듯 산방산과 단산이 보인다(아래).

도립곶자왈공원 조성에 마을소유 14만평 선뜻 임대
지역경제 활성화 연계 예산 등 행정적 뒷받침 부족
주민 24명 해설사 교육… "마중물 없이 펌프질 되나"



참으로 독특한 마을 구조다. 곶자왈과 밭으로 빚어진 마을. 군데군데 농업용수로 쓰일 것 같은 큰 연못들이 있어 벼농사까지 가능하다. 오래 전부터 옹기 굽는 가마가 많아 이에 필요한 흙을 오랜 세월동안 파내다보니 거기에 물이 고여 연못이 된 것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지명들 중에 도요지 명칭들이 수두룩하다. 앞동산 도요지, 종가샘이도요지, 큰밭논도요지, 굴동산도요지, 초낭밭노랑굴, 알보도요지, 서녘물앞도요지, 개미굴도요지, 간데기굴, 기와굴터, 웃보기와굴, 종개샘이 기와굴 등. 항아리를 만들다보면 자연스럽게 거대한 연못항아리도 만들게 되는가보다. 16만 평에 달하는 곶자왈이 품고 있는 맑은 물은 신평리의 가장 중요한 자산 중 하나다. '웃날외' 또는 '웃날래'라고 부르던 마을이었다. 옹기를 굽거나 숯막을 지어서 생활하던 사람들은 있었으나 대규모 마을의 형태로 등장한 것은 조선 말엽. 역사 기록에는 철종 13년(1862) 보성리 서쪽 지역에 새롭게 약 20가구가 이주하여 촌락을 형성하니 그 것이 지금 신평리 상동 지역이다. 그 후에 고종 원년(1864) 보성리 일부와 일과리 일부를 각각 분리 통합해 신평리라 부르게 되었다.

조상들이 옹기 만들기에 필요한 흙을 오랜 세월 파내다보니 '웃보'와 같은 연못이 수없이 많다.

지세가 평지라는 뜻에서 한자 표기도 신평리(新坪里)다. 이영조(74) 노인회장은 "4·3 이전까지 번창하였던 마을입니다. 마을을 모두 불태워버리자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져 바닷가 마을로 내려가서 살았지요. 거기에서 터를 박고 살아버린 사람들이 많아요. 돌아와서 불타버린 마을을 다시 재건하고 어렵게 다시 일어선 사람들이 지금 마을 주민들입니다. 이념과 사상이 뭔지도 모르고 당한 수많은 아픔들이 없었다면 신평리는 지금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지 모릅니다"고 설명했다. 산악지대는 아니지만 엄청난 곶자왈을 보유하고 있는 마을이라 군경과 무장대 사이에 충돌이 예상 될 수 있었기에 환경적인 요인이 마을이 불타는 서러움을 맛보게 된 것이라고 회상하고 있었다. 요즘은 신평리 하면 곶자왈을 떠올리게 되는 분위기. 도립곶자왈공원을 만드는 일에 마을 소유 곶자왈 14만평을 임대해준 마을회의 결정은 놀랍도록 미래지향적이라 할 수 있다. 곶자왈이 지니는 가치와 시너지효과를 알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도립곶자왈 공원이 개장 1년이 다 되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역경이 있었다. 후손 대대로 물려줄 저 보물과도 같은 자원을 가지고 도립공원을 만든다는 것은 마을 발전에 어떤 새로운 전기가 되리라는 판단에서 나서게 되었지만 행정에서의 관심은 곶자왈공원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관심 뿐이다. 어떤 운영체계를 가지고 지역주민들이 농외소득에 준하는 이익을 줄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그저 신평리 주민들이 알아서 할 일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송홍관 이장.

송홍관(46) 이장이 밝히는 신평리의 당면 과제 속에 곶자왈공원과 관련한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도립곶자왈공원의 관리를 저희 마을에서 하고 있습니다. 곶자왈 지역을 행정에 임대해주고 운영을 주민이 하는 형태가 된 것입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태산입니다. 곶자왈을 공원화했으면 탐방객에 대한 서비스 기능과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운영예산이 장기적으로 뒷받침 돼야 곶자왈을 공원으로 만든 목적이 달성되는 것 아닙니까? 마을회에서 운영을 하게 되면서 우선 중점적으로 학습장 기능을 갖게 하기 위해 옛 학교 부지에 '신평리곶자왈생태학교'를 만드는 과정도 여러 가지 행정적 장애요인을 해결하는 데 힘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마을 발전 방향도 곶자왈공원 활용 방안과 연관지어 생태관광 중심으로 갈 것입니다. 곶자왈 공원의 다양한 활용 방안들을 찾아 나설 수 있도록 진취적인 자세를 가지고 차곡차곡 과제들을 실천해 나갈 것입니다." 행정의 관심이 환경보전이었다면 공원을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도립곶자왈공원'을 만들었다는 것은 지역주민들에게 곶자왈 보전이 탐방객을 유입하여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활용에 관심을 가진 일. 그렇다면 신평리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해설사 교육만 24명이 받고 직접 곶자왈 해설에 나서는 자발성에 응답해야 한다. 곶자왈 밖 마을에서 느낄 수 있는 곶자왈 프로그램들을 경험하고 곶자왈에 들어가게 하는 일 말이다. 힐링의 숲 탐방이라면 눈으로 바라보는 관광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마을에서 알아서 하라'고 떠밀고 뒷짐을 지기엔 이미 명칭이 도립곶자왈공원이 아닌가.

신평리는 역사와 농경지, 곶자왈이 으뜸화음처럼 울려퍼지는 마을이다.

김정식(45) 청년회장은 "곶자왈을 활용한 프로그램 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어렵게 구축한 신평리곶자왈생태학교가 많은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다녀갈 수 있도록 운영예산을 지원해줘야 합니다. 마중물도 없이 펌프질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시설만 있으면 모두 알아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엄청난 상업행위를 목적으로 수익을 내는 일이 아니라 곶자왈의 공익적 가치를 심어주는 일이니만큼 행정기관을 대신하여 주민들이 애향심을 가지고 나선 것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신평리가 곶자왈생태학교를 열게 된 이유는 인식이 달라져야 휴양관광도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장기적으로 신평리에서 숙박을 하면서 곶자왈을 향유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꾸다보면 젊은이들의 일자리도 많이 늘어날 것입니다." 당찬 포부였다. 지구력이 필요한 일임을 절감하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옛 학교부지에 체험학습 공간으로 조성한 신평리곶자왈생태학교.

김해선(48) 부녀회장에게 '하늘에서 100억이 떨어지면 신평리를 위해 어떻게 쓰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대답이 명쾌했다. "우리 마을에 시집오고 싶도록 모두를 신평리 며느리들에게 투자하겠습니다. 그런 돈은 사람에게 투자해야 마을의 돈이 되는 것 아닙니까?" 시설이 아니라 사람. 농촌 여성의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나온 것이다. 신평리의 30년 뒤 모습을 주민들은 영어교육도시와 연계해 전원형 도시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이뤄낼 것이다, 저 단합된 자발성이면.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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