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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91)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
푸른 바다 배경 풀뜯는 말이 노니는 당당한 '내끼'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입력 : 2016. 06.21. 00:00:00

주민들은 아직도 미완성이라고 하는 신천 2종항(위)과 마을회관 옥상에서 바다 방향으로 바라본 마을 풍경(아래).

바람코지아트빌리지 사업으로 곳곳에 이색 벽화
마을 서쪽 천미천서 끊어지는 해안도로 보강해야
동애등에 애벌레 이용한 닭사육 공익가치에 주목







성산읍에서 가장 서쪽 '사계절 꽃피는 마을'이다. 표선면 하천리와 천미천을 사이에 두고 나눠져 있다. 비교적 작은 마을에 2종항이 있어서 주민들이 바다와 관련된 일을 많이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직도 어딘가 모르게 제주의 옛 향취가 그대로 남아서 마을 주민들도 이웃공동체를 이루고 형제들처럼 살아가는 마을.

옛 정의현 시절에 부르던 이름은 '내끼'다. 신풍리, 하천리와 과거에는 한 마을이었다.

마을의 규모가 커지면서 웃내끼를 신풍리, 알내끼로 분리 하였다. 그러다가 알내끼가 하천을 분기점으로 샛내끼를 잘라내어 새로운 마을을 형성한 것이 신천리라고 한다. 마을 어르신들이 전하는 설촌의 역사는 광해군 원년(1609년)에 당시 샛내끼 한복판에 있던 천미연대에 근무하던 사람들과 신풍리 하천리 주민 중에 어로활동을 생활의 근간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검은 용암지대가 방대하게 펼쳐진 바닷가에서 바릇잡이를 하고 있다.

풍성한 해산물과 새롭게 개척한 농경지를 바탕으로 번창해왔다. 1915년에 정의현에 속하였고, 후에 정의면 신천리라고 불렀다가 1946년부터 행정구역이 성산읍 신천리로 바뀌면서 오늘에 이른다. 생활 터전의 모습은 그 마을 사람들의 정신문화적 울타리가 된다.

고산동산을 조산(祖山)으로 하여 '백웅왓', '탈왓'의 평야를 끼고 신천리 마을이 형성되었다. 고산동산을 등에 지고 천미연대가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연대가 신천리 설촌의 효시가 된다. 남쪽 바다로 들어오는 왜적을 막아야 될 요충이므로 연대를 쌓았고, 연대에서 왜구를 살피려 하니 자연적으로 연대 가까이에 사람들이 살아야 살피기가 편했다. 처음에는 연대를 지키는 병사들이 가고 오는 불편을 덜기 위하여 살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다른 마을과 달리 본향당이 바닷가에 있는 것을 보면 예로부터 바다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옛날엔 해산물 값이 별로 높지 않고 또 값을 주고 사는 사람들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해산물로 풍요를 누리지는 못하였다.



마을 구석구석 다양한 주제의 벽화가 그려져 방문객들의 눈길을 끈다.

마을 안을 살펴보면 남산의 남쪽 '송줄기', '도꼬마리'의 임야는 우마를 방목하거나 청초 밭이었다고 한다. 일주도로 남쪽 바닷가와 잇닿은 목장이 신풍목장과 경계를 이루며 경이로울 정도로 이색적인 풍광을 보여준다. 바다를 배경으로 풀을 뜯고 있는 말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아이러니는 묘한 감흥을 자아낸다.

마을 구석구석 벽면만 있으면 벽화를 그려 넣은 것 같이 보인다. '바람코지아트빌리지(1차)사업'으로 이룩한 성과다.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벽화에서부터 일러스트디자인 감각이 도드라진 익살스런 모습과 낭만적인 서정성을 공명시키는 담장과 벽을 바라보며 마을 곳곳을 돌아다녀보면 마을 이미지가 벽화에 의해 얼마나 풍성해지는 지 느낄 수 있다.



현석준 이장

현석준(58) 이장이 설명하는 당면과제와 숙원사업은 이렇다. "해안도로가 있지만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합니다. 2종항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수산업과 관련된 주민들이 많은 현실에서 관광산업과 연계하여 발전적인 미래를 열어나가야 하지만 마을 서쪽 끝 천미천과 만나는 지점에서 끊어져 버렸습니다. 속히 다리를 건설해줘야 합니다. 관광객들이 차를 몰고 가다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막힌 곳에서 차를 돌릴 때,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현실적으로도 표선에 들른 관광객들이 저희 마을에 바다풍경을 즐기며 들어올 수 있는 여건 마련이 마을 발전에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행정적으로 표선면과 성산읍의 경계지역이다보니 서로가 떠넘기다 세월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오해였으면 좋겠다.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급기관들의 역할은 실로 중대하다. 연결되지 않는 해안도로를 예산 범주에 맞춰서 시행해버린 결과가 이런 난감한 현실을 만든 것이다. 신공항 건설과 같은 거대한 국책사업에 신경을 쓰는 도정이 이런 사안에 눈길이라도 가겠냐는 한탄의 소리를 마을 주민들로부터 귀따갑게 들었다. 아픈 현실을 외면하는 행정은 그 기능에 의구심을 가지게 되는 것.

최창배(55) 개발위원장은 "마을 규모에 비해 해안가의 길이가 긴 편이라 포구의 규모로 볼 때 2종항입니다. 10년 전에 완공되었다고 하지만 어민들이 볼 때 미완성 상태로 보입니다. 항만 내부 준설작업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암반지대를 그대로 두고 있어서 효용성도 떨어지는 현실입니다. 제대로 기능을 발휘 할 수 있도록 사용자가 흡족한 항만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했다. 설계 단계에서 지역주민과 어민들을 상대로 진지한 토론의 장이 없었다는 반증으로 들렸다. 모든 불만은 계획단계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명확한 사례로 들렸다.



표선면 하천리로 이어져야 할 해안도로가 다리가 없어 끊어져 있다.

독특한 마을사업이 있다. '동애등에 애벌레를 이용한 닭 사육 사업'이다. 음식물쓰레기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곤충애벌레를 닭 모이와 함께 먹여서 육질이 더욱 담백하고 품질 좋은 닭을 키우는 방식이다. 주민 일자리 창출과 판매에 따른 마을회 수익 향상을 목표로 하는 사업. 공익적 가치가 엄청난 마을사업임에도 행정지원은 차별성을 인정받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균등배분의 정당성도 있지만 선택과 집중을 통한 강점 부각 또한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에 마을 사업을 바라보는 관점의 일대 변화를 요구하는 사안이라 해야겠다. 이러한 양질의 닭을 가지고 중국관광객들에게 삼계탕을 판매하는 대형식당을 꿈꾸는 주민들. 소박하지만 당당한 꿈에 행정적 지원이 절실했다. 30년 뒤, 신천리의 모습을 김남균(42) 청년회장은 이렇게 그리고 있었다. "주민들이 마을공동체에서 운영하는 마을기업의 주주로 배당을 받으며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신천리는 가능할 것이다. 도전과 변화의 바람이 수많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을 공동체의 기백이 있었다. 덩치와 면적으로 승부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당당한 자신감.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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