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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78)서귀포시 효돈동 하효마을
속 들여다 보면 깊고 정겨운 맛이 느껴지는 마을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입력 : 2016. 03.01. 00:00:00

마을회관 옥상에서 북쪽 방향으로 바라본 마을 전경(위), 남쪽 바다로 뻗어내린 마을 전경(아래).

400년전 설촌 역사… 숲과 인근지역 개간해 살기 시작
1960~70년대 마을 땅에 심은 편백나무 숲 자원으로 변모
주민 "쇠소깍으로 관광객 유입되지만 마을 발전엔 미약
편백나무 숲 활용한 수익사업 발굴엔 행정적 지원 절실"



매력적인 효돈동 남쪽 마을. 명품감귤로 고소득을 올리는 마을이라는 선입견과 쇠소깍에 대한 인상이 너무 강렬하여 다른 관심이 생기지 않을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참으로 깊고 정겨운 맛이 느껴진다. 섬 제주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던 시기에 수렵과 채집을 하면서 떠돌던 사람들이 가장 정착하여 살고 싶은 곳이 있었다면 이곳 하효 지역이었을 것이다. 한라산 남쪽 아열대 습윤 기후에 가까운 따뜻한 지역. 숲이 우거진 냇가는 바다와 닿아 있으며 굵은 검은 모래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해산물들이 있어 생존 공간으로 더없이 좋았을 것이다. 지석묘와 같은 유적이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는 것으로 보아 신석기시대에서 금석병용기시대로 들어갈 무렵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 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탐라시대 전기에 해당한다. 하효마을은 고려시대 탐라 16개 속현 중 하나인 호아현을 기반으로 성장한 역사를 가진다. 마을 원로이신 김양현(83) 어르신이 들려주는 설촌의 역사는 이렇다. "효돈은 쉐둔, 쇠둔이라고 부르던 지역입니다. 소들을 키우던 곳이 있었지요. 저희 마을은 400년 전 고막곶이라고 하는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숲과 인근 지역을 개간하여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마을입니다. 효돈천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온 가장 사람 살기 좋고 유서 깊은 마을입니다." 밭 이름들을 보면 큰 집단을 이루는 마을이 형성되었던 흔적이 나타난다. '당두왓' '절왓' '대선뱅듸' '옥터' '전세포' 등의 지명을 듣다가 '옥터'라고 하는 곳은 범죄자를 가둘 수 있는 공권력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40년전 심은 편백나무가 지금은 울창한 숲으로 변해있다.

하효 쇠소깍으로 대표되는 지질학적 특징이 자연자원의 가치를 심층적으로 느끼게 한다. 해안은 분화활동으로 형성된 전형적인 화산지역이다. 개우코지에서 하효항으로 이어지는 해안에는 표고 10~15m의 절벽 지형이 발달해 있으며, 파식대 일대에 침식되지 않고 남아 있는 파식잔구가 출현하여 규모가 큰 것은 높이가 6m에 달한다. 쇠소깍 우안에는 길이 340m 정도의 사빈이 있는데, 모래사장의 폭은 20~30m이며 비교적 굵은 검은 모래로 이뤄지고 둥글납작한 돌들이 널려져 있다. 비교적 긴 하천이라고 할 수 있는 길이 13㎞ 효돈천은 산벌른내와 돈내코 계곡을 아우르며 흘러와 쇠소깍해변에서 바다와 만난다. 수 십 만년 바위가 자갈이 되고 자갈이 모래가 되어 바닷가에 쌓여 파도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쇠소깍 해변을 생성시킨 세월을 느끼는 것은 화산섬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묘미이기도 하다. 테우를 타고 쇠소깍을 즐기는 모습은 관광객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쇠소깍에서 테우 타는 체험을 하고 있는 관광객들.

마을 사람들의 진취적인 모습은 여러 가지 사례에서 드러나지만 감동적인 사실이 있었다. 1932년 돈내코에 있는 좋은 물을 수도관을 통하여 하효, 신효, 상효, 토평 마을이 협력하여 끓어다가 공동수도 시설을 만들어 생활용수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보통 다른 지역에서는 엄두도 못내는 일을 해낸 사람들이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1960~1970년대에 있었던 마을공동체 소유 땅을 20만 평 넘게 마을 자체 자금으로 매입하여 거기에다 편백나무를 심었는데 세월이 지난 지금은 울창한 숲 자원으로 변모해 있다는 것이다. 하효리에서 멀리 떨어진 돈내코 인근 지역에 힐링 휴양림으로 각광을 받는 편백나무 숲은 방대하게 보유하였다는 것은 지금 노인회 회원들이 청년시절 이룩한 신화적인 집념이었던 것이다. 거시적 안목이 후손 대대로 혜택을 누리며 살아갈 자산을 물려주게 되었으니, 마을공동체의 역량이 집중력을 발휘하면 이런 긍정적인 활로를 열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이기도 하다.

허기영 마을회장

허기영(53) 마을회장이 밝히는 당면과제와 발전 전략을 응축하면 이렇다. "쇠소깍으로 관광객이 유입되고 있지만 마을 발전과 직접적으로 연결 지어지는 부분이 미약합니다. 마을공동체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수익모델을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또한 편백나무 숲을 활용하여 마을 수익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이 절실한 실정입니다. 우리 마을이 이룩한 숲 자원을 가지고 제주의 소중한 휴양자원으로 발전시킨다면 도민적 이익이 될 것 아닙니까?" 1300가구 3600명에 달하는 주민이 비교적 협소한 마을 면적에 살면서 근면과 성실로 이룩한 발전상에 만족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1980년대에 5000명이 넘던 인구가 크게 줄었다는 현실 인식의 이면에 짙은 애향심이 흐르고 있었다. 학생수 감소에 대한 대책을 마을공동체 사업을 통하여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높다. 김미형(49) 부녀회장은 "교육여건 개선을 위해서라면 마을회 차원에서 무슨 일이든 해야 합니다. 결국 마을 밖으로 빠져나가는 인구가 교육과 관련된 이유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교육시설 못지않게 훌륭한 교육인력의 초빙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학생수 감소를 바라보는 현실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들어있었다.

옛 향사터를 하효리 부녀회원들이 정감 넘치는 떡집으로 활용하고 있다.

허성식(40) 청년회장에게 30년 뒤, 하효리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했다. "조상 대대로 경조사를 돌아보며 살아온 토박이들이 출향하여 사는 경우가 가장 작은 마을이 될 것입니다. 오히려 고향으로 돌아와서 살고자 하는 주민들이 늘어날 정도로 일자리가 항시 풍년인 마을이 하효리라고 세상이 인식하게 만들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미래의 꿈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농어촌 경제활동 여건에 대한 극복 방안을 관광산업에서 쉽게 찾을 수 있겠지만 자연스러운 융합체계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이론에 불과한 것. 세대를 이어온 마을공동체 역량과 성공적 토대를 시대정신에 맞게 부각시킨다면 불가능은 없다. 마을 가운데 구룡못이 있었다. 큰 인물 아홉이 이 마을에서 태어난다는 소망이 깔린 전설이다. 꿈을 현실이 되게 하는 주민 모두가 그 구룡이다. 큰 인물이 따로 있으랴.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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