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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75)서귀포시 대천동 도순리
빼어난 녹차밭 풍광·농업경관 관광자원 가치 충분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입력 : 2016. 02.02. 00:00:00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는 녹차밭과 농로길(위), 마을회관 옥상에서 바라본 마을 모습.

1402년 마을 형성… '석송리'서 일제강점기 '도순리'로
국내 유일의 천연기념물 '녹나무 자생지' 마을의 자랑
도순리 부녀회 수제 돈가스 생산해 맛 경쟁력 인정받아
서창영 마을회장



비라도 크게 오는 날이면 냇가에 물소리가 가득한 마을이다. 영실기암에서 발원하는 도순천이 법정이오름 동쪽을 돌아 내려와서 강정천과 만나고 다시 흐르다가 강정천 동쪽에서 흘러 내려온 궁산천과 만난다. 이렇게 세 곳에서 합쳐진 물이니 수량이 풍부하여 강정천 하류에 정수장을 만들어 서귀포 시민들의 식수원이 되고 있다. 도순리는 강정마을 북쪽에서 시작하여 영실기암까지 이르는 길고 긴 모양을 지녔다. 동서 1km, 남북이 15km 1477.2ha에 달한다. 서남쪽에 넓은 농경지가 있고, 북쪽으로 2km 지점에 30만 평에 달하는 마을회 소유 목장이 있다. 도순리는 1402년 경 이씨, 서씨 등에 의하여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조선 태종16년 제주섬에 삼현이 설치되면서 대정현에 속하는 석송리라 이름을 올린다. 마을 이름은 석송리라고 한 것은 촌락 인근에 돌더미와 소나무가 울창했기 때문이라는 설과 석송이라는 이름의 토호가 살았다는 설에서부터 실로 다양하다. 이후 1896년 군제가 시행될 당시에는 좌면 돌송리(일면 독송리)라고 불러오던 중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어 도순리로 굳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인근 마을 어른들은 '돌생이'라고 하는 지명을 대면 도순리로 알고 있었다. 이에 얽힌 전설이 있다. 옛날 이 곳에는 키 크고 힘이 무척 센 장수가 살고 있었는데 마을을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놓고 큰 돌을 들고 힘겹게 고생하며 지나가야 통과시켜 줬다는 이야기다.

겨울에도 짙은 녹색을 유지하는 도순천 녹나무자생지.

강경호(77) 노인회장이 전하는 일제 강점기 도순리의 모습은 중문과 쌍벽을 이루는 번창한 마을이었다는 것이다. "저희 마을에 당시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전기 모터로 가동되는 정미소가 있었습니다. 산남 지역에서 공출한 양곡들은 도순 지역에 대규모 집하장을 만들어서 군량미 등으로 가져갔어요. 초등학교도 중문과 도순 2곳이 먼저 생겼습니다. 인구나 위상, 경제규모가 대등했었습니다." 다른 마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풍요를 누렸던 시기를 회상하는 모습에서 강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대표적인 마을의 자랑은 천연기념물 제162호 녹나무자생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제주에서만 자생하고 있으며 특히 도순동 도순천변에 관목이 많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것. 주위에는 녹나무 외에도 팽나무, 구실잣밤나무, 산유자나무, 상산나무 등 온대성 수목이 혼성림을 이루고 있다. 기록을 보면 고려 때, 원나라에서 이 녹나무를 가져갔다고 하며 제주도민들 사이에서는 예로부터 녹나무를 집에 심으면 귀신이 범접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이 나무의 가지와 잎을 중병환자의 자리 밑에 깔고 눕혀서 뜸질을 하는 예도 있었다.

소나무의 굵기가 역사와 전통을 말해주는 도순초등학교 교정.

이 녹나무가 제주의 상징 도목으로 지정된 것은 이런 여러 가지 도민들의 신성시 해온 문화적 배경도 포함하여 정해졌을 터. 수 천 년을 한라산에서 세 줄기 냇가를 통하여 굴러온 아름드리 둥근 돌들이 하천바닥에 묘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쌓여 있다. 그 돌들이 조각한 하천 바닥의 오묘함은 녹나무의 신비와 조화를 이룬다. 한마디로 절경이다.

서창영 마을회장

서창영(55) 마을회장이 밝히는 도순리의 과제는 많다. "먼저 마을 안길 확포장 문제입니다. 행정과 주민이 합심하여 풀어가야 할 일이지만 서로 어긋나는 대목이 많아 진척이 더딘 편입니다. 다음은 저희 마을이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건축이나 개발행위에 있어서 엄청난 재산상의 피해를 보고 있지만 이에 상응하는 보상차원의 지원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도순초등학교 학생 수가 56명으로 감소한 현실에서 젊은이들의 생활터전으로 변모해야 마을 발전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강정 정수장의 최고품질 수자원은 윗마을 도순리 주민들의 재산상의 피해와 서러운 응어리를 담고 있다. 불이익에는 균형 잡힌 보상이 따라야 분노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의 오래된 생각에 일리가 있었다. 이러한 불이익에 상응하는 행정적 배려로 마을목장 30만평을 태양광발전과 같은 친환경적 활용 방안을 추진해준다면 재도약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

마을공동체정신의 표상이며 자긍심.

도순리에는 수제 돈가스를 만들어 품질 경쟁력을 인정받은 부녀회가 있다. 김명자(41) 부녀회장이 바라보는 현실과 미래는 이 한 마디로 연동되어 있었다. "저 사름이 우리 마을 산댕은 허는디 어디 살암신고?" 이런 물음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인간미 넘치는 제주마을 공동체의 유지와 계승 발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형성될 수 있는 서먹서먹한 모습을 신속하게 풀어갈 소통은 마을 주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고민이었다. 안타까움이 있었다. 녹차밭 풍광이 엄청난 농업경관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그냥 농산물 생산을 위한 경작지 정도로 남의 일처럼 바라보고 있는 현실. 제주의 중산간 지역이지만 온난한 기후를 강점으로 하여 녹차 농장이 들어선 한남, 서광, 도순 세 지역 중에 도순 녹차 농장이 먼저 시작되었다. 녹차밭과 농로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경치와 녹차밭에서 풍기는 야릇한 기분을 관광자원으로 개발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시설이 들어서야 개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지만 녹나무와 녹차 두 개의 초록을 투트렉으로 이미지 메이킹 시키고자 하는 일부 주민들의 주장에 행정이 귀 기울인다면 자연스럽게 마을회가 소유한 30만평 마을 목장에 대한 활용방안도 드러나게 될 것이다. 서귀포 신시가지와 인접하고 있지만 마을 안길 취락 구조는 변화가 모자란 현실에서 상수원보호구역의 굴레를 쓰고 악조건을 이겨내려는 도순리의 의지와 열정이 감동적인 미래를 열 것이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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