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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한라문예 詩 당선작] 팥죽
이은주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입력 : 2016. 01.04. 00:00:00
 매월 달의 소유 기간은 멀면서 가깝다

 쟁반에 빚어놓은 옹심이

 달이 되려면 뜨거운 솥 안에서 익어야 한다

 반은 떠있고 반은 잠긴 달들

 팥물을 빨아들여서 잔뜩 부풀어 있다

 오늘 뜬 달엔 팥죽이 묻어 있다

 붉은 저녁이 걸쭉하게 담긴 그릇마다

 몇 개의 잘 익은 달이 떠있다

 그릇마다 달빛이 새어 나온다

 그릇 하나를 밝히는 달빛,

 하마터면 달빛을 엎지를 뻔 했다

 

 예전에는 어머니의 죽 그릇에 달이 많이 떴었다

 죽보다 달을 먼저 뜨셨다

 만월이 씹히지도 않고 몰락한다

 달이 하나 씩 줄어 들 때 마다 어두워졌지만

 오늘은 어머니의 죽 그릇에 달이 그대로 떠있다

 어디로 가는 길을 비추려고

 죽 그릇에 달 하나를 남겨 두었을까

 달 하나를 남기는 식량

 누군가에게는 달이 되고 부적이 되는 애기동지

 보름으로 갈수록 살이 오른다

 

 동짓날 밤 수십 년째 비어있는 어머니의 밤을 열어 보면

 그릇하나를 밝히는 얼음으로 빚은 달이 무수히 떠있다

 해마다 오는 긴 밤을 비춰줄 달을 꺼내 놓으시는 걸까

 그런 밤이어서 달이 익어 가는 걸까

 저 달이 잘 익으면 드시기 좋겠다

 청상은 불구의 밤을 부적으로 쓰는 달

 저 달들을 골목마다 내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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