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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63)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농촌’과 ‘예술’ 접목시킨 전국 최고 ‘문화마을’ 꿈꾸는 곳
편집부 기자 sjpyo@ihalla.com
입력 : 2015. 11.03. 00:00:00

저지오름의 초록이 넝쿨식물처럼 뻗어 마을전체를 덮고 있다(위). 마을 안길의 밭에서 바라본 전경(아래).

400여년 설촌 역사 지닌 제주섬 전형적 중산간 농촌마을
마을발전 10개 사업 추진… 주민 공동체의식·자긍심 높여
뛰어난 경관·문화요소 흡수…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
주민들 "제주의 대표적 휴양마을 만들어 갈 것" 한목소리



참으로 큰 마을이다. 면적보다 큰 마을. 멀리 내다보는 안목이 있어 꿈이 크다. 저지리의 꿈은 차곡차곡 현실이 되었다. 마을만들기 사업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저지리 마을회관 앞에 부착된 인증판들을 보면 기가 죽는다고 한다. 무려 10개의 사업을 추진하여 이룩한 명성과 자긍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저지예술 정보화마을' '저지리 녹색농촌체험마을' '생명의 숲 사업'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정부시범지역' '팜스테이마을' '농어촌체험휴양마을' '한국에서 가장아름다운 마을 제4호 지정' 등 486가구 1200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만들어낸 성과다. 마을공동체의 성장이 곧 자신의 발전으로 생각하지 않고서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마을회관 건물에 부착된 10개의 인증판이 저지리의 명성과 저력을 보여준다.

전형적인 중산간 농촌마을이다. 한경면에 위치한 마을 중에 가장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서귀포시 안덕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주변에 금악리, 조수리, 낙천리, 청수리, 월림리가 동서남북으로 펼쳐져 있다. 고성하(82) 전 노인회장이 설명하는 설촌 400여년의 역사는 이렇다. 조선 숙종 28년 1702년에 제작된 탐라순력도에 표기된 이름은 당지(堂旨:당루)이다. 그러다가 탐라지도병서, 해동지도 중 제주삼현도에는 모두 저지촌(楮旨村:당을)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같은 역사를 가진 다섯 개의 자연마을이 뭉쳐서 저지리를 이루고 있다. 저지오름에 올라 바라보면 수동, 중동, 남동, 명이동, 성전동이 넓게 펼쳐진 모습이 보인다. 높은 지대에 살았기 때문에 수도가 보급되기 전에는 물이 귀한 마을이었다. 생존에 필요한 물을 얻기 위하여 힘겹게 못을 파서 식수로 활용하던 조상들의 개척정신이 후예들에게도 그대로 전승된 곳이다. 물 이름들이 정겹다. 새굿물통, 거슨물, 앞새물, 보난물, 되빌레물, 얼챙이물, 안소랭이, 밧소랭이, 중굿물, 덩애물, 어두운물, 용선달이못, 쟁개빌레물 등 많은 물들이 귀하게 저지리 조상들의 생존 공간을 지켜주었다. 물을 얻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통하여 흘렸던 땀방울의 양이 그대로 식수가 되어 돌아왔을 것이다. 옛 식수터를 돌아보며 숙연해지는 것은 중산간 마을의 식수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었는지 전해 들었기 때문.

현무암으로 독특한 건축미를 추구한 제주현대미술관.

마을의 지형은 산상분화구를 가진 저지오름에서 뻗어나간 느낌이다. 어느 쪽 사면이나 경사와 거리가 비슷한 둥근 산체를 이루고 있으며, 둘레가 약 900m, 깊이가 약 62m 정도 되는 매우 가파른 깔대기형 분화구를 지녔다. 2012년 8월 사단법인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연합이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4호'로 지정된 것은 저지오름이 가진 생태자원이 놀랍도록 다양하다는 것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한다. 물론 곶자왈의 요소와 감귤과 약초를 재배하는 생활양식, 허리굿당과 할망당 등 전통문화와 전통음식, 저지예술인 마을과의 융화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 세대 전까지만 하여도 평범한 중산간 마을에서 주목받는 마을로 변화를 이룩한 것은 긴 안목을 가지고 끊임없이 발전의지를 폭발시킨 공동체의 동력장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농사만 가지고선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의식이 점차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문화예술과 관련된 요소들을 흡수하기 시작하였다. 농촌과 예술의 접목은 처음부터 그렇게 순조로운 일은 아니었지만 주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의식개혁을 통하여 지금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양원보 이장.

양원보(51) 이장이 전하는 발전의지는 놀랍다. "주민 소득이 미국 뉴<저지>주 보다 높아야 합니다. 의식 수준도 그렇고. 그래서 아직도 발전에 목마릅니다. 마을 안에 문화지구로 묶여 있는 땅을 문화광장으로 조성하여 실질적인 제주문화예술의 메카를 만들 것입니다. 오래 전에 제주특별자치도에 사업신청이 들어가 있지만 신속한 해법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답답한 현실입니다." 제주섬 외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인들, 그 중에서도 아이들을 키우는 예술인들이 많이 들어와서 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다면 학생 수 때문에 고민하는 일은 없으리라는 절박한 기대가 깔려 있었다. 김철완(46) 청년회장은 "생태관광사업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실천적 노력에 온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탐방객이 다녀가지만 '스치는 인연'에 불과하여 실질적인 농외 소득으로 연결되지 못하기 때문에 숙박을 하면서 자연을 향유하는 고객(?)들을 맞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겠다는 현실 인식이었다. 자연에서 즐기는 여러 요소들을 개발하지 않은 한 지금의 마을만들기 형태로는 부족하다는 지적. 문화자(53) 부녀회장은 "학교를 꾸준하게 발전시켜야 마을공동체가 활력을 얻습니다. 젊은이들이 들어와 살 수 있는 소득원이 필요합니다. 농산물 가공시설이나 관광과 관련된 다양한 사업장이 저지리에 늘어나야 한다"고 바람을 피력했다. 정책기관의 입맛에 합당한 준비는 충분히 했지만 주민들의 실질 소득을 올릴 수 있는 형태의 사업을 추구하는 것이다.

김진봉(56) 개발위원장이 86세가 되는 2045년에 저지리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 것인가? "제주의 대표적인 휴양마을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인구도 엄청나게 늘어나 있을 것이고. 가장 중요한 발전은 물질적, 시각적 변화가 아니라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를 복원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분명 이런 마을이 될 것입니다. 옆집에 할망이 문 밖에 보이지 않으면 찾아가 '어디 아픈 디 이수광' 하고 문안 여쭙는 마을. "이웃과 정을 나누는 삶이 부러워야 사람들이 정신적 휴양지로 거듭 날 것 아닙니까?" 주민들의 마을 발전 방향은 확고했다. '관광지 모습으로 아무리 치장을 해도 주민 소득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니 휴양객들이 머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저지리를 더 업그레이드시키자.' 시급한 것은 8000평 넘게 문화지구로 묶은 땅을 문화광장으로 조성하는 작업에 행정이 신속하게 움직여야 할 상황이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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