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섬을 배경으로 너울파도가 가장 아름다운 해변(위)과 마을회관에서 바라본 남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마을 전경(아래). 법환포구 목호 정벌위해 최영장군이 군영 설치한 곳 해산물 풍부해 대대로 물질 활발… 현재 해녀 75명 지난 5월 해녀학교 개설해 ‘해녀문화 지킴이’ 역할 주민 감소 마을 위기… 마을회 중심 관광자원 발굴 목호들이 최영장군의 군대에 쫓겨서 사생결단을 낼 장소로 범섬을 선택한 것은 절벽이 마치 철옹성처럼 오르기 힘들 것이라 여겼을 법 하다. 법환포구에 남아있는 '막숙'이라는 지명은 최영의 군대가 천막을 치고 군영을 형성했던 곳. 그 치열했던 싸움을 법환리는 지명으로 기록해두고 있는 것이다. 목호의 난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학자들의 몫이라 치더라도 최영이라고 하는 맹장이 법환리 지경에서 범섬에 있던 목호들과 싸웠던 사실은 이 마을을 더욱 유서 깊게 한다. 세추맥이, 빽빽동산, 써을, 고래왓, 두루머니물, 너벅빌레, 망다리, 칭계왓, 도리술, 왕개니안통, 공물깍먼여 등 제주어 감각을 통하지 아니하고선 뉘앙스도 전달되지 않는 마을 지명들. 소리 내어 부르노라면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사람들이 이룩한 반농반어촌의 참 맛을 맞이하게 된다. 큰 마을이었다. 불과 110년 전에 인구 상황을 조사한 삼군호구가간총책이라는 자료를 보면 317호에 1332명이 살았다고 한다. 마을 면적으로 볼 때 밀집된 형태의 취락이 형성된 곳이었다는 것. 지금은 1066세대 2430명. 견해의 차이는 있겠지만 서귀포시 중심가를 옆에 두고 있는 상황으로 판단해서 발전이 더딘 모습이다. 현민철(57) 마을회장이 밝히는 숙원사업들을 듣노라면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28년 전에 도시계획도로가 그어졌지만 대부분 그대로입니다. 재산권을 행사 할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놓고 예산타령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마을 발전이 요원한 상태지요. 해안도로 사업도 전 도정에서 추진하다가 지금 도정이 들어서면서 예산관계로 멈춰선 현실입니다." 서귀포시 인근이라 초등학생수가 많을 것 같았지만 300명이 넘던 학생수가 81명. 젊은이들이 많이 떠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대 상황에 맞게 주거지역이나 상업지역으로 토지 용도가 바뀌지 않아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러 가지 행정적 판단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만 주민들의 암담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법환마을 안에 웅장한 시설들이 있으면 뭐하나? 주민들 스스로가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 느껴져야 하는 것을. 문화관광부가 지정한 좀녀마을임을 상징하는 해녀상. 올레7코스의 평화로운 바닷가 풍경. 최영 장군이 범섬에 있는 목호를 공격할 준비를 하던 포구. 농민과 어민이 7:3 비율이라는 법환마을. 마을회를 중심으로 이러한 여건을 기반으로 한 관광자원 발굴에 땀 흘리고 있었다. 환경적 요인을 브랜드가치로 한 FTA(자유무역협정) 무풍지대를 꿈꾸며.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