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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37)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마을공동체 '심돌정신’으로 나만의 제주관광 꿈꾸다
입력 : 2015. 04.21. 00:00:00

두산봉 가는 농로길(위)과 시흥초등학교 인근에서 바라본 마을전경(아래).

두산봉 정상에서 보는 올레1코스…영주십경보다 못지 않은 절경 보유
마을주민 전통적 가치 극대화로 경제적 수익구조 만들기에 총력
공유수면 친환경적 관광 개발 등…행정, 누적된 숙원사업 관심 필요
철새도래지~섭지코지 관광벨트 중심지로 다시한번 '기지개'



제주가 시작되는 곳이다. 시흥(始興), 문자 그대로 '비로소 흥성하는 마을'. 옛 이름은 심돌개에서 온 심돌 혹은 심똘이다. 한자를 차용하여 역석포(力石浦), 역돌포(力乭浦) 등으로 표기하여 오다가 1905년부터 시흥리로 바뀌었다.

현무행(78) 노인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유난히 큰 돌이 박힌 곳이 많아 그 것들을 뽑아내며 삶의 터전을 일구다보니 자연스럽게 힘이 세고 정신력이 강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이 대대로 단결력이 좋고 마을공동체의 위력이 막강한 것은 '심돌(力乭)정신'이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기장 같은 것이 흐르고 있기 때문.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삶의 정신은 어떠한 마을 규약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주민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농로, 그 자체가 아름다운 관광자원인 올레1코스.

마을 전설에 유난히 용력을 보여주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많은 것으로 보아 장사들을 선망하는 의식이 자리잡은 마을임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마을 풍토가 삼군신(三軍神)의 한 분으로 추앙 받는 백마고지 전투의 영웅 강승우 소위 같은 분을 배출하게 된 것은 아닐까.

대부분 평탄한 지역이지만 마을 서북쪽 종달리와 경계에 두산봉이 위치한다. 되(斗)에 곡식을 수북하게 쌓은 모습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두산봉. 올라가 아래를 바라보면 올레 1코스의 명성이 그냥 붙여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주십경을 도두 쓸어 모아도 이길 수 없는 절경을 보유하였다. 이를 관광객들이 쉽게 향유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접근 방법이 마련된다면 시흥리 경제는 상전벽해와 같은 발전을 이룩하게 되리라는 점을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강조하고 있었다. 원래 시흥리는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 일주도로 인근 늦게동네까지 배가 들어왔던 마을이다. 일제강점기, 지금 바닷가 모래사장부근 양어장을 막아서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여 땅을 얻고 가옥을 짓기 시작하여 마을이 더욱 번창 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옛날 바닷물이 들어오던 지역은 해수면보다 아래에 위치한 곳이 많다. 그런 연유로 해서 폭우가 오면 마을 가옥의 대부분이 침수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수 십 년을 행정에 건의 하였지만 '기다리라'는 통보만 받다가 민선 6기에 들어와서 수로 정비사업 설계용역에 착수하였다고 한다.

두산봉 부근에서 바닷가까지 수로를 만들어 침수 걱정 없이 살게 되는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중간에 저류시설을 만들어서 용천수와 함께 활용하면 미나리 밭을 조성하여 농업소득에 큰 기여를 하게 되리라는 기대와 함께.

김희선 이장

김희선(61) 이장의 염원은 마을공동체가 전통적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경제적 수익구조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마을 소유 재산이 부족한 관계로 바닷가 해안도로가 개설되면서 안쪽에 만들어져버린 공유수면을 활용하여 관광자원화 하는 방안을 행정 당국에 줄기차게 제시하고 있지만 절대보전지구라는 대답만 듣고 있는 현실. 절대보전이 필요한 곳에 해안도로는 지나가면서 그 안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공유수면은 개발 할 수 없다는 논리가 납득이 가지 않아 보였다. 행정용어라 하더라도 절대보전지역이면 길도 낼 수 없어야 '절대보전'이 실천되는 것. 행정에서 하는 일은 되고, 마을에서 하고자 하는 일은 되지 않는 일이 억울한 것이다. 5000평에 달하는 시흥리 바닷가 공유수면을 친환경적으로 체험관광에 필요한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바닷가에 펼쳐진 다양한 관광자원을 마을주민 스스로가 의지를 가지고 중장기적인 전략을 짜고자 하더라도 저 공유수면을 활용하지 못하며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기는 영등하르방.

독특한 가치를 지닌 문화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마을이다. 영등하르방 상이다. 유래는 이러하다. 약 150년 전, 마을 내에 도깨비불이 자주 보이고 원인 모를 화재가 자주 발생하자 주민들이 모여서 논의를 한 결과 속칭 송케(송나라 때 싸움터 였다는 곳)에 영등하르방 신을 모셔서 영혼을 위로 하자는 것. 영등하르방을 조각하여 세우자 그 후로는 도깨비불도 화재도 발생하지 않아서 마을의 수호신으로 받들어 오게 되었다. 웃동네, 동동네, 늦게동네, 알동네, 송동네 모든 주민들이 평안을 가져오는 영등하르방은 시흥해녀의 집 식당 앞에 소박한 자태로 바다를 바라보며 서있다. 조상들의 신비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조각상이 마을공동체를 견고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경우다.

현경수(48) 새마을 지도자가약속하는 30년 뒤 시흥리의 모습은 담대하다. 우선은 두산봉을 돌아내려오는 관광용 작은 철도가 놓여져 있을 것이며, 마을회관 북쪽 도로변 갈대밭이 개발되어 있을 것이라고 했다. 1Km의 바닷가 모래밭이 금싸라기보다 더 한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주변에 마을에서 운영하는 숙박시설과 농수축산품을 가공하여 판매하는 매장이 즐비할 것. 거기에서 발생한 수익으로 노인복지와 초등학생들을 지원하고, 장학사업을 펼치는 꿈. 뒤이어 뼈 있는 일갈을 내놨다.

활용방안을 집중적으로 찾고 있는 해안도로 안쪽 공유수면.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하면 농업이든, 관광이든 수익이 나지 않는다." 벤치마킹이라며 따라쟁이(?)를 조장하는 컨설팅족들에 대한 질타였다. 세상에 없던 방식이라야 이긴다. 시흥리는 하도리 철새도래지에서부터 섭지코지에 이르는 관광 벨트의 중심에 있다. 두산봉의 정기가 불굴의 의지를 만들어내는 마을. 필자가 발견한 가장 위대한 자원은 불굴의 의지를 자긍심으로 여기는 '심돌정신'이었다. 정신무장보다 더 큰 자원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마을에 힘이 있었다. 미래를 개척하는 힘. 30년 뒤, 현무행 노인회장이 108세가 되는 해에 함께 만나서 시흥리 바닷가에서 미래를 설계하던 오늘을 회상하자고 했다. 내일처럼 빨리 다가올 것이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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