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팟캐스트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31)제주시 한경면 고산1리
입력 : 2015. 03.10. 00:00:00

수월봉 정상에서 바라본 차귀도와 당산봉(위), 당산봉에서 바라본 마을과 농경지(아래).

1만년전 인류·자연이 살아 숨쉬는 곳… 시간여행 떠나다
제주 서쪽 끝… 차귀도·수월봉 천혜의 자연환경 간직한 곳
한반도 최고(最古) 고산 선사유적지·수월봉 세계지질공원
역사자원·자연자원 갖고 있어도 변변한 박물관 하나 없어
마을 토지 40% 외지인 소유·40만평 문화재 지역으로 묶여
주민 스스로 해결책 모색 노력… 서부권 중심축 변모 확신



제주에 살면 제주인이라고 했을 경우에 이 곳 보다 먼저 제주인들이 살았던 곳은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선사유적을 기준으로 그렇다. 기원전 1만년~6000년으로 파악하고 있는 고산리 선사유적지(국가문화제 제 412호)가 가지는 의미는 학술적인 관점은 물론 관광자원으로써의 가치도 높다. 유물의 분포 범위가 무려 15만㎡. 출토된 유물은 석기가 9만9000여점, 토기가 1000여 점이다. 고산리 선사유적은 시베리아, 연해주, 만주, 일본, 한반도 일대를 포함하는 동북아의 신석기 초기 문화연구에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제공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박물관이 없다. 부끄러운 일이다. 선진지 견학이랍시고 밖에 있는 것을 모방하러 다니기 바빠서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보물에는 관심이 없는 것일까? 학술적 명칭 하나가 얼마나 혹독한 검증을 통해서 획득되는 것인가. '고산리식 토기' 마을명칭이 들어간 이름이다. 원시형 적갈색 섬유질토기편은 한반도에서 유일한 토기형식이다. '유일한 것에 대한 자긍심 빈곤'에서 빨리 벗어나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지역주민들은 묻고 있었다.

화산학의 교과서라 불리는 수월봉 해안절벽.

고산리 유지인 진재언(74) 어르신이 설명하는 고산리 마을 명칭의 유래는 호종단의 전설에서부터 시작된다. 혈맥을 끊으러 온 호종단의 배를 막았다는 데서 '차귀(遮歸)'라고 불렀으나 조선시대 차귀진을 설치한 이후 두모리에서 한 가닥이 갈려나와 신두모리라 부르다가 1861년 당산봉 밑에 있다고 하여 당산리, 1892년에 영산(靈山) 수월봉의 옛 지명 고산(高山)에서 연유하여 고산리가 되었다고 한다. 제주의 서쪽 끝, 한라산 정상에서 가장 멀리 있는 오름 수월봉에 올라 서쪽 바다에 신비하게 떠있는 차귀도(천연기념물 제422호), 와도, 죽도에서부터 당산봉, 멀리 대정지역까지 넓게 펼쳐진 농경지를 바라보면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을 받는다. 고산기상대와 정자의 묘한 만남. 참으로 많은 절경을 욕심스럽게(?) 보유한 마을이다. 옛 선인들이 '차귀10경'이라 지정한 모두가 주민들에게는 공동의 자산이다. 월사야종(月寺夜鍾), 각정만경(角亭滿景), 광포채복(廣浦採鰒), 용암폭포(龍岩瀑布), 병풍기암(屛風奇岩), 저생기문(這生奇門), 장군대암(將軍大岩), 지실조어(蜘室釣魚), 죽포귀범(竹浦歸帆), 월봉낙조(月峰落照). 단순한 풍광만이 아니라 인생을 관조하는 시적인 서정성까지 버무려져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수월봉은 더 큰 주목을 받고 있으며 탐방코스로 개발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차곡차곡 성과를 내고 있다.

김수선 이장

아이러니다. 이러한 절경의 자연자원과 선사유적을 비롯한 역사자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민 소득은 관광산업과의 결합이 미미하다고 하니. 김수선(58) 이장의 진단은 이렇다. "마을 토지의 40%가 외지인 소유이고, 40만평 정도가 문화재 지역으로 묶여 있어서 발목이 잡혀 있다"는 것이다. 제주 최고의 자연전망대라고 하는 수월봉을 마을 수익사업 차원에서 편의시설 추진을 하고자 해도 사유지들이 많아 매입을 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지금은 자구내 어촌에서 근해어업을 기반으로 한 어촌체험마을로 선정되어 있고, 비옥하고 너른 농토에서 10 여 개의 품종이 4계절 출하가 가능할 정도로 복합영농을 하고 있다. 하지만 FTA 여파를 고려하여 관광산업과 연계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위기의식이 개발에 대한 절박함을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마을 경제의 중심에 농업이 있어서 올해 상반기 시험 가동을 목표로 제주 최초로 농업용수 광역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높은 곳에 물탱크를 만들어서 급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 곳에 다량의 농업용수를 확보하여 기계로 밀어주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가뭄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전망이라고 한다.

농업 소득과 관련하여 이관정(45) 청년회장은 "집하장이 절실하다. 주민들이 다양한 품종을 재배하다보니 농산물 가격에 대한 시장불안 요인이 항상 뒤따르는 현실에서 유통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된다면 안심하고 농사일에 전념 할 수 있겠다." 꿈이라고 말하기에는 현실과 너무 가까운 일이기에 정책 당국의 행정지원을 요구하는 것이리라.

수월봉 정상에 있는 고산기상대와 정자.

신석기 유적인 고산리 선사유적지는 지금도 발굴 중이다.

고산1리 주민들이 미래에 대한 기대와 자신감은 대단하다. 수월봉과 차귀도, 당산봉을 벨트화 하는 행정적 노력이 완성된다면 서부권의 중심축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 좌주연 마을회 사무장은 "그런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지역주민들이 땅을 팔지 말아야 한다. 마을 발전을 위한 사업을 시행하고자 해도 토지 매입문제에 막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다." 외지인 소유 토지가 많아서 난관에 봉착하는 경우가 많음을 드러낸 것이다. 양은심(45) 부녀회원에게 75세가 되는 30년 뒤 고산1리를 그려달라고 했다. "제주에서 가장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작은 도심을 가진 농어촌 관광마을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초대형 나이트클럽도 있는 관광지로 변모해 있을 것입니다."

30년 전에 선사유적지가 발굴되기 시작하자 주민들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고 한다. 관광개발이 다른 마을에 비해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판단했으니까. 한 세대가 흐르는 동안 그냥 그 자리에 맴돌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차츰 분개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원인을 찾았다. 정치와 행정에 의존해서 기다리는 일. 지금부터는 아니라고 했다. 주민 스스로 나서서 능동적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밖에서 보기에는 부러울 정도로 화려한 관광자원을 가진 고산1리가 안을 들여다보면 민관이 함께 풀어할 숙제가 수두룩하다. 국가가 묶어 놓은 고산1리의 가치가 있다면 활로를 열어줘야 할 책임도 있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