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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의 나눔정신 아시아를 품다](중)김만덕 해외봉사단의 여정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하영 하영' 나누게 마씀"
김명선 기자 nonamewind@ihalla.com
입력 : 2014. 03.17. 00:00:00

▲김만덕 해외봉사단은 단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로살리·이화진씨 등의 고향 마을에서 긴급 복구·구호활동을 벌이면서 구슬땀을 흘렸다. 김명선기자 nonamewind@ihalla.com

발전기 이용해 마을 전기 복구하고
태풍에 날아간 도서관은 제자리로
쌀 나눠줄 땐 주민들 기쁨의 눈물

제주에서 필리핀 레이테 섬으로 향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은 김만덕 해외봉사단(이하 만덕봉사단).

인천국제공항에서 약 5시간의 비행 끝에 필리핀의 대표적인 휴양도시인 세부에 도착, 숙소에 첫날 여정을 풀었다. 다음날 세부에서 구입한 구호약품과 발전기 등을 더해 만덕봉사단은 1톤 화물차 1대 분량의 짐을 여객선에 옮겨 싣고 3시간10분 동안 동쪽으로 항해해 레이테 섬 울목항에서 도착했다. 울목항에서 첫번째 봉사지역인 하신다마리아 산이시도르로 이동하는데도 차량으로 2시간이 더 걸렸다.

하신다마리아 마을은 17년전 제주에 정착한 마리사 카사스 코오티스(41)씨의 고향이다.

마을주민 상당수가 늦은 저녁시간까지 봉사단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이 만덕봉사단을 손꼽아 기다린 이유는 태어나서 한국인을 처음 만난다는 설렘과 봉사단이 들고 간 발전기 때문이다.

태풍 '하이옌'이 레이테 섬을 휩쓸고 지나간 지 100일이 훨씬 넘었지만, 아직도 파괴된 전기 시설을 복구할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 이 때문에 만덕봉사단이 하신다마리아 마을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봉사활동은 발전기를 이용, 전구에 불이 들어오게 하는 것이었다.

이어 태풍피해를 심각하게 입은 빈민가정의 집을 지어주는 봉사활동을 펼쳤다. 농장에서 하루에 한국 돈 약 2500원 일당을 받아 6명 가족이 근근이 생활하고 있는 이 가족에게 태풍 하이옌은 집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대나무와 야자수 잎으로 지어진 집은 태풍을 견디지 못해 결국 부서졌고, 정부에서는 할머니 혼자 생활하는 3.3㎡ 넓이의 집만 양철 지붕에 합판을 붙여 비바람만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복구해줬다.

아들 부부와 3명의 손자가 사는 약 6.6㎡ 집은 태풍에 지붕이 날아가 비가 새고 있는 상황에서 토지임대료는 감당 못해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만덕봉사단은 이 가정에 집이 들어설 기초공사와 건축자재를 지원했다.

두번째 만덕봉사단이 찾은 곳은 10년전 정착한 필리핀 출신 이화진(36)씨의 고향인 알랑알랑이었다.

봉사단은 이곳에서 마을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 복구 작업을 벌였다. 태풍으로 지붕이 송두리째 날아가 벌인 도서관의 지붕을 마을주민과 함께 보수했고, 아이들과 마을주민의 모습을 담은 사진 전시회를 개최해 새롭게 단장한 도서관을 선보였다.

세번째는 지역은 5년전 제주에 정착한 로살리(24)씨의 고향 바밧트넝 마을이다.

만덕봉사단은 이곳에 도착하기에 앞서 한 시장에서 쌀을 구입했다. 1년에 3모작까지 가능한 필리핀은 쌀 수출국이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태국과 베트남 등지에서 매년 쌀을 사들이는 세계 최대의 쌀 수입국으로 변했다. 이는 쌀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고, 태풍피해를 입은 레이테 섬의 쌀 가격은 이전보다 더 치솟았다.

한국으로 시집간 로살리씨가 많지는 않지만 태풍피해를 당한 자신들을 찾아 직접 쌀과 구호품을 나눠줄 당시 고마움에 눈물을 흘리는 80대 할머니도 있었다.

강상철 만덕봉사단장은 "만덕봉사단은 결혼이민자의 고향에서 지역주민을 초대해 필리핀과 한국의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다. 태풍으로 인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사돈의 나라에서 당신들을 돕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며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함께한 결혼이민자도 도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또 앞으로도 레이테 섬이 완전히 복구될 때까지 지속적인 교류를 펼쳐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명선기자·마리사 카사스 이주여성(필리핀) 시민기자

[활동 수기]로살리 김만덕 해외봉사단원 "아픔 없는 곳에서 행복하게 살아…"

슈퍼태풍이 필리핀을 강타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고향의 가족에게 수십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아 걱정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저 태풍 때문에 전기와 통신이 끊겨서 연락이 안되는 것이야라는 생각도 잠시 마음속에 근심과 걱정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잠을 이룰 수조차 없는 상황이 되자 친구에게 친정집을 직접 방문해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친구에게서 전해들은 가족의 소식은 나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과 슬픔을 줬다. 태풍이 몰아칠 당시 할머니가 언니 걱정에 일하는 곳을 찾아 함께 잠을 자다가 불어난 바닷물에 목숨을 잃었다는 것.

당장 필리핀으로 달려가 장례식을 치르는 모습이라도 보고 싶었지만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아 그러지 못했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슬픔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견디던 당시 김만덕 해외봉사단이 필리핀 레이테섬으로 봉사활동을 간다는 사실을 알고 참가 신청서를 접수했다.

직접 확인한 고향의 모습 처참했다. 이곳에서 만덕봉사단이 어려움에 처한 고향 사람들을 돕는 모습에 무한한 감동을 받았다.

무엇보다 할머니와 언니가 목숨을 잃은 곳을 찾아 "아픔이 없는 곳에서 행복하게 살아달라"고 작별인사를 할 수가 있었다.

봉사단원들이 그곳에 함께해줘서 큰 위안이 되었는데 "고맙다"는 인사를 이 자리를 빌어서 전하고 싶다.

[활동 수기]이화진 김만덕 해외봉사단원 "결코 잊지 못할 놀라운 경험이었다"

"김만덕 해외봉단에서의 나눔활동은 남은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켤코 잊지 못할 놀라운 경험이었다."

고향의 가족을 만난다는 설렘도 잠시 태풍피해를 당한 이들을 생각하면 '슬픔'을 이겨내야 한다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필리핀으로 향했다.

고향집으로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태풍 피해는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쓰러진 코코넛 나무, 부서진 건물과 집, 신발조차 신지 않은 소년의 모습 등 고향으로 향하는 길위에 펼쳐진 모습을 켤코 믿기 힘든 상황이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만덕봉사단의 일원이 되어 나눔활동을 벌였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고향사람들에게 쌀을 나눠주고, 따뜻한 저녁 한 끼를 대접할 수가 있었다.

이러한 나눔활동을 펼치는 봉사단원들의 마음은 다들 하나같이 "힘을 내세요", "슬픔을 함께해요", "이겨낼 수 있어요" 등이다.

작은 나눔이 어려운 이웃에게 얼마나 큰 감동의 선물과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용기를 줄 수 있는지 몸소 체험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번 나눔활동을 하는 내내 한국이라는 나라와 두 번째 고향인 제주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했다. 앞으로 한국어 능력을 더욱 향상시켜 이러한 나눔문화를 확산시키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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