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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빠지다
[제주愛 빠지다]텃밭을 가꾸는 남자 이도훈씨
"추운 겨울 따뜻이 맞아준 제주는 내 운명"
오은지 기자 ejoh@ihalla.com
입력 : 2013. 11.15. 00:00:00

▲서울이 고향인 이도훈씨는 자신을 따뜻이 맞아준 것도, 제주여자를 아내로 맞은 것도 모두 운명 같다고 한다. 강경민기자

30년째 생활… 아내도 제주인
제주어 활용저조 위기 아쉬워

1983년 1월20일. 서울에 있었으면 살을 에는 추위에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었을텐데 태어나 처음 발을 디딘 제주에서는 저절로 몸이 펴졌다. 너무 따뜻해서.

이도훈(제주시 해안동 거주·52)씨에게 제주의 첫 인상은 그렇게 '따뜻한 곳'이었다. 그리고 마치 '운명'처럼 30년째 제주에 살고 있다.

서울이 고향인 이씨는 물흐르듯 자연스레 제주에 정착하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운명' 같단다. 자신을 반겨줬던 따스함도, 제주 여자를 아내로 맞은 것도 모두 '운명'이라고 했다.

이씨는 "아내 고향이 서귀포인데 서귀포 여자를 만날려고 했는지 이상하게 서귀포에만 가고 싶고 서귀포 여자가 예뻐보이더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1983년 도내 빌딩관리업체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고 제주에 내려온 이씨는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그리고 1986년 자신의 회사를 차리면서 자연스레 제주에 정착하게 됐다.

탄탄대로를 걷던 회사를 접은 것은 2001년. 사업투자 실패로 수억원의 재산을 잃은 이씨는 술과 담배로 1년여의 시간을 허송세월했다. 대인기피증도 생겼다. 그때 힘을 준 것은 제주였다.

이씨는 "예전에 존경하는 한 선배님이 같이 길을 가다보면 주위의 돌담을 보고 예쁘지 않느냐고 하는 등 항상 뭘 보면 예쁘다, 아름답다 하시더라고요. 그땐 몰랐는데 안 좋은 일을 겪고나니 맨날 보던 한라산이 유난히 예뻐보이더라"고 했다. 그렇게 이씨는 망가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 1년을 한라산을 다녔다.

이후 이씨는 사람 상대말고 자연을 상대하는 일을 하게 됐다.

현재 이씨는 지난해 터를 잡은 제주시 해안동 '주르레 마을'에서 텃밭을 가꾸며 살고 있다. 투자 실패로 현금을 날렸지만 다행히 모아뒀던 부동산이 있어 덕분에 여유로운 전원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30년을 제주에 살다보니 이씨의 말처럼 이만하면 외지인이라기보다는 제주사람에 가깝다. 빌딩관리업을 하다보니 제주(건축)발전 변천사를 함께 한 산증인 중 한명이기도 하고 특히 요즘 젊은 세대보다 제주어를 훨씬 더 많이 알 것이라는 자부심이 컸다.

이씨는 "처음 제주에 와서 하숙한 곳이 50대 아주머니 집이었는데 당시에는 사투리가 정말 심해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며 "한 1년 정도 같이 생활하다보니 자연스레 사투리가 익혀졌다"고 했다. 그러고는 기자에게 "대비 하나 심어오라"는 뜻을 알겠느냐고 물었다. 선뜻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양말 하나 가져오라는 뜻인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잘 안써서 모른다"며 "(제주어가)참 재미있는 말인데 안쓰니까 사라지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낚시를 좋아한다는 이씨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단다. 텃밭을 가꾸며 자연을 즐기고 있는 그는 요즘은 소나무 고사목 제거 현장에서 제주자연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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