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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빠지다
[제주愛 빠지다]수맥파 기운 다스리는 오세민씨
"제주섬 곳곳 '아픈 역사' 치유하고파"
김명선 기자 nonamewind@ihalla.com
입력 : 2013. 07.12. 00:00:00

▲섯알오름 학살터 등 역사적 아픔이 있는 곳에 수맥이 흐르면서 죽어서도 고통을 받고 있는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수맥파 다스리기에 나선 오세민씨. 김명선기자

육지의 추운 겨울 피해 무작정 제주 정착
죽어서도 고통 받는 영혼 달래주는 활동

"육지의 추운 겨울을 피해 제주 정착을 결정했습니다."

제주에 정착하게된 계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오세민(58)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충북 음성이 고향인 오씨는 청년운동을 하다가 1990~1993년까지 월간 말지의 대전·충북·제주본부장을 역임하면서 제주와의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다. 이어 오씨는 1995년부터 2002년까지 바른언론을위한대전시민연합 집행위원장을 맡아 참언론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오씨는 "당시 참언론을 만들기 위한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명함에 '언론의 오만과 방자함을 응징하겠노라'고 적어놓고, 공정보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삶을 살았다"며 "이 기간에 회사 또는 자신의 이익과 결탁해 공정한 보도를 하지 않은 대전·충청남북도 소재 언론사 기자 50~60명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기도 했다. 1997년 6·27 지방선거에서 자민련과 대전매일(현 충청투데이)이 결탁한 '고의적 오보'의 결과로 인해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는데, 이후 정정보도를 이끌어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참언론투쟁을 하면서 치열한 삶을 살아왔던 오씨는 불현듯 2002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전북 무주군 소재 덕유산으로 입산한다. 상수도는 물론 전기까지 들어오지 않는 산속 허름한 움막집에서 생활하면서 오씨는 많은 눈물을 흘렸단다.

오씨는 "어느 날 내 자신에게 '나는 누구인가'라고 화두를 던졌는데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대답대신 눈물만 흘러나왔는데, 내 자신만 잘났다는 생각으로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생각 때문이었다"며 "10년동안의 덕유산 생활은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이전에는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데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쏟아부어 왔었는데, 이런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겨울 덕유산의 추위를 피해 서귀포시 위미리에 정착했다. 제주에 정착한 오씨의 바지 주머니에는 엘로드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그에게는 수맥파를 차단시킬 수 있는 능력이 생겼고, 제주지역을 찾았을때 육지부와 비교해 대부분의 땅에서 수맥이 흐르고 있어 이를 차단시켜주는 일을 하고 있단다.

특히 오씨는 최근 4·3평화공원, 섯알오름 학살터 등 역사적 아픔이 있는 곳에 수맥이 흐르면서 죽어서도 고통을 받고 있는 영혼을 달래주기 위한 활동에 들어갔다.

오씨는 "제주는 축복받은 땅이다. 이 땅에서 아픈 역사속에 목숨을 잃은 이들을 어떻게든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과학적으로 수맥파를 차단하는 기술이 개발되지는 않았는데, 천국의 세계를 연상하면서 '이 땅에 평화와 사랑이 가득찬 땅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기원하면 수맥파가 차단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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