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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바다와 문학] (17)양중해의 시 '파도 소리'
"오오, 세찬 숨결과 삶의 맥박 뛴다"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9. 08.16. 00:00:00

파도치는 바다. 양중해 시인은 고요한 수평선 안의 파도를 제주도 사람들의 기쁨과 눈물, 삶의 맥박이 쉬임없이 고동치는 모습으로 읽었다. /사진=한라일보DB

59년 등단해 시집 세 권 남겨
수평선 안에 사는 섬의 숙명
바닷가에 나부끼는 청춘으로

시인은 고향 제주도 사람들을 두고 '수평선 안에서 산다'고 노래했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한라산의 발치라면 어디에라도 터를 잡고/ 수평선을 등지면 한라산/ 한라산을 등지면 수평선'인 이 섬에서 길거나 짧은 한 평생을 살다 간다.

제주바다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은 아름답고 고요해 보이지만 거센 파도가 꿈틀대고 있다. 시인은 그 파도를 제주도 사람들의 기쁨과 눈물, 삶의 맥박이 쉬임없이 고동치는 모습으로 읽었다.

1955년 제주에 머무는 동안 고인과 인연을 맺었을 박목월이 '유자에는 그분의 향취가 난다'고 했던 양중해 시인(1927~2007). 오늘날 애창되는 가곡으로 손꼽히는 '떠나가는 배'의 노랫말을 썼던 그의 시에는 일찍이 파도가 쳤다.

1959년 '사상계'에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발디딘 그는 세 권의 시집을 남겼는데 두 번째 '한라별곡'(1992)은 첫 시집 수록작 상당수를 다시 묶었다. 시를 활자화시키는 일이 부담스럽다고 했던 과작(寡作)의 시인이지만 시편 곳곳에 섬의 무늬가 그려졌고 그는 때때로 그걸 '숙명'이라 불렀다.

첫 시집 '파도'(1963)는 그 시작을 보여준다. 훗날 '수평선'(2004)에서 바다를 끼고 사는 이 땅을 두고 '선택이 주어지지 않는/ 한정된 우주이다'라고 읊었던 바, 그 전조가 읽히는 시집 맨 앞장의 서시(序詩) '파도소리'는 당시 30대였던 시인의 제주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다.

'어지러운 저잣가 이 한 밤을 마지막으로 날아보는 한낱 티끌처럼 덧없는 있음들의 슬픈 대열(隊列) 속에 스스로의 간여린 목숨을 휘어잡고 불안스리 설레는 한바닷가에 때 묻은 옷자락과 그늘 비낀 청춘을 나부끼고 서면 오오, 오오, 무수한 혈연(血緣)들의 세찬 숨결과 맥박의 진동!'

제주에 사는 청춘은 흔들리고 있다. 바닷가에 나부끼는 청춘에선 고뇌하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의 시에서 자연은 그저 묘사의 대상이 아니라 '매개물로 존재'하며 '외적인 의미를 형성'(김병택)한다.

파도 소리는 '잠잠히, 찰삭 찰삭, 낭랑히, 쏴아쏴아, 쾅쾅, 간지러운 소리, 미끄러지는 소리, 밀려드는 소리, 허물어지는 소리'처럼 여러 개의 표정을 지녔다. 그것은 깊은 밤의 자장가, 저녁길의 만가, 식민지의 민요, 노들강변 버들 아래 젊음이 우는 소리, 수없는 영혼의 얼굴들에서 피어난 진한 애환의 목소리로 들려온다. 그 숱한 소리들엔 '신도 사람도 버린/ 황폐한 지역'('폐고'(廢故))이 되어버린 제주4·3의 '악몽'도 스며있다. 이 섬을 벗어나고 싶은 이들은 수평선을 넘기 위해 이어도를 찾아 배를 띄우지만 수평선은 다시 밖으로 물러서('수평선')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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