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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해녀를 말하다 2부] (2)거제시 하청면 '비수기 해녀'
1970년대 고향 제주떠나 40~50년 물질 인생
이태윤 기자 lty9456@ihalla.com
입력 : 2018. 08.29. 20:00:00

현복래(68·종달리·가운데)해녀와 이옥심(59·비양도·오른쪽) 해녀가 물질에 나서기 전 취재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해녀 등록수 200여명… 물질 나서는 해녀 100여명선
어촌계와 마을어장 2~3년에 한번 계약 후 물질 사업
비수기 7월 하루 20~30㎏돌조개 잡으며 생계 이어가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으로 알려진 거제도는 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매년 관광객과 탐방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거제도 바다에서도 해녀의 숨비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거제도 바다에서 울려 퍼지는 숨비소리는 해녀의 고령화 등으로 인해 매년 사라져가는 실정이다.

거제도의 해녀 역사는 1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00년대 초 제주 해녀들이 원정 물질에 나서며 한 두명 거제도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곳에서는 500여명에 육박했을 정도로 많은 해녀가 물질에 나서 생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고령화로 인해 지속적으로 인원수가 줄어 현재는 200명만 남았고 이마저 실제로 물질에 나설 수 있는 해녀만 따지면 100명에 불과하다.

하청면 해녀들이 칠천도 인근 해상에서 물질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월 28일 오전 10시쯤 거제시 하청면 하천리 포구를 찾았다. 포구 인근에 마련된 탈의장에 들어서자 해녀들이 물질에 나서기 전 테왁과 망사리 등 물질에 사용되는 장비 점검에 한창이었다. 취재팀은 해녀와 차를 마시며 얘기를 이어갔다.

이곳 하청리의 해녀팀은 현재 거제시에서 한라잠수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이순덕(60·강정출신) 회장을 포함해 6명으로 구성됐다. 또한 6명 중 최근 막내로 합류한 부산과 전주 출신 해녀 2명만 제외하고는 모두 제주출신으로 1970년대에 제주를 떠나 타지에서 물질에 나서 경력이 대략 40~50년이다.

이들에 따르면 이곳 해녀팀의 물질 작업은 거제시 하청면 인근 지역인 칠천도의 마을어장과, 멀게는 마산 실리도 등지에서 이뤄지며 칠천도 마을어장의 경우에는 어촌계와 2~3년에 한 번씩 경쟁입찰을 통해 계약하고 있다. 또한 물때가 11~14물이면 해녀들은 휴식기를 가진다.

취채팀이 찾은 7월은 해삼 금어기이기 때문에 해녀들의 비수기다. 이에 해녀들은 해삼보다 돈이 안되는 돌조개와 가리비 등을 잡으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곳 해녀들이 해삼을 잡을 수 있는 기간은 12월부터 6월까지이다. 이후에는 돌조개와 가리비, 말똥성게 등을 1년 내내 채취하고 있다.

오전 11시쯤 물때 시간이 되자 해녀들은 장비 점검을 중단하고 잠수복으로 갈아입은 뒤 포구에 정박된 복천호(7t·연안복합)에 탑승했다. 취재팀도 서둘러 수중 촬영장비와 산소통을 배에 실었고 이후 복천호는 힘찬 엔진 소리를 내며 이날의 출항을 알렸다.

물질 작업을 마친 뒤 해녀들이 탈의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하청포구에서 20여분간 배를 타고 칠천도의 인근 해상에서 돌조개와 가리비를 채취하는 일정이다. 해녀들은 배에 올라타자마자 쑥잎에 치약을 묻혀 수경 안쪽을 닫아냈다. 바닷속에 들어가 물질하는 동안 수경에 습기가 발생되지 않게 하는 해녀들의 노하우다. 칠천도 인근 해상에서 배가 멈추자 바다로 들어갈 채비를 마친 해녀들은 여지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취재팀도 스쿠버 장비를 착용한 뒤 바다로 들어가 해녀들의 뒤를 따랐다. 해녀들은 조개와 가리비 등을 채취하기 위해 2m 정도의 낮은 수심에서 물질을 이어갔다. 바닷속 시야는 매우 탁했고, 해녀들이 돌 사이 구석구석 숨은 돌조개를 채취하기 위해 곡괭이로 돌과 모래를 들쑤시면 시야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해녀들은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줄곧 주먹만 한 조개들을 수면 위로 가지고 올라와 망사리에 넣었다.

그렇게 1시간가량 해녀들과 물질에 동행한 취재팀은 해녀들 보다 먼저 인근 해상에 정박 중인 복천호로 복귀했다. 취재팀은 해녀들의 물질 작업이 끝나기 이전까지 복천호의 선장 유덕출(64)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순덕 해녀의 남편이기도 한 유 선장은 2001년부터 아내와 함께 어촌계를 통해 일정 기간 동안 마을어장을 계약하고 선박을 이용해 해녀들과 함께 물질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유 선장은 "과거해 비해 해삼의 개체수가 줄고 있고, 가격도 절반가량 줄었다"면서 "반면 과거 1000여만원이면 계약할 수 있었던 마을어장이 최근에는 사업자간 경쟁이 높아지면서 3000만~4000만원까지 가격이 늘어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유씨는 "높은 마을어장 계약비이지만 제주출신 해녀들이 잠수 능력이 좋고 또 해산물들을 많이 잡으면서 겨우 사업을 유지하는 상황"이라며 "언제까지 이 사업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내와 함께한 해녀들이 있어 당분간은 사업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거제시 한라잠수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이순덕 회장.

오후 3시쯤 되자 바다에서 물질하던 해녀들이 선장에게 신호를 보내왔다. 이에 유 선장은 황급히 해녀가 있는 장소로 배를 돌렸다. 해녀들은 작업을 마치고 조개가 가득 담긴 망사리를 어선에 설치된 크레인을 이용해 배에 실었다. 그렇게 올라온 돌조개 망사리는 선장이 저울에 올려 무게를 측정하고 기록한 뒤 그 자리에서 비닐포장이 이뤄졌다. 해녀들은 이후 선수에 위치한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는 공간(해녀집)'으로 들어갔다. 배가 하청포구로 복귀하기까지 이곳에서 해녀들은 옷을 갈아입고 간단한 화장을 맞쳤다.

이날 해녀들은 1인당 평균 30㎏의 돌조개를 채취했다. 이 지역의 돌조개는 ㎏당 7000원~8000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30㎏의 돌조개를 잡았을 경우 해녀에게 1인당 돌아가는 수입은 10여만원 선이다.

물질에 나선 해녀는 "성수기일 때 돌조개의 경우에는 많게는 50~60㎏정도 잡아 올리지만 최근에는 비수기이고 물질에 나서도 많은 수입을 올릴 수는 없다. 하지만 선장이 어촌계와 마을어장을 계약해 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수입과 상관없이 물질에 나서고 있다"며 "8월 이전까지는 해삼을 잡을 수 없는 금어기이지만, 이후부터는 해삼으로 보다 나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복천호가 하청포구에 정박되자 유 선장은 포구에서 대기하던 차량에 비닐포장된 돌조개를 모두 옮겨 싣는다. 이날 잡은 돌조개는 거제시를 비롯해 부산 등지에 소매로 판매가 이뤄진다.

해녀들은 하청포구 탈의장에서 잠수복과 망사리 등을 세척한 뒤 탈의장 한편에 널어두었고 한두명씩 짝을지어 집으로 귀가했다.

현재 거제시는 해녀잠수복 구매(20만원)를 지원하고 있지만, 이러한 지원은 해녀로 활동할 때일 뿐 물질을 그만둔 후 노후를 준비해야하는 해녀에게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순덕 한라잠수연합회장은 "1970년대 돈을 벌기 위해 제주에서 육지로 올라와 물질을 시작했고 당시 물질을 통해 번 돈은 대부분 제주에 있는 가족에게 보냈다"면서 "제주도에서는 현재 해녀들에게 잠수복 등을 전액으로 지원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과거 형편이 어려워 타지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출항해녀와 관련해서 행정차원에서라도 조금이나마 지원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고대로 정치부장·이태윤·채해원 기자

자문위원=양희범 전 제주자치도해양수산연구원장, 좌혜경 제주학연구센터 전임연구원, 조성환 연안생태기술연구소장, 김준택 제주도의회 농수축경제위원회 정책자문위원, 조성익·오하준 수중촬영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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