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n라이프
아기장수 기리는 빗돌, 신이 깃든 공간
제주 신화·전설지 모은 '제주의 이야기 유산'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8. 06.22. 00:00:00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해안가 '베드린개'에 가면 빗돌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통정대부 만호(萬戶) 부시흥(夫時興)의 망사비(望思碑)다. 부시흥은 인조 4년(1626)에 날개달린 채로 태어났다고 한다. 무과에 급제해 숙종 4년(1678)에 겸사복 벼슬에 올랐고 훗날 조정에서는 통정대부 만호를 제수했다.

부시흥은 제주로 귀임하던 중 수십명을 태운 배가 기울자 자신이라도 배에서 내리면 살 수 있을 거라고 여겨 바다에 뛰어든다. 그 뒤로 그의 행방은 묘연했고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다. 지역주민들은 그 애석한 사연과 덕을 기려 망사비를 세웠다.

제주에 전해지는 날개달린 아기장수 전설 중 하나다. 제주섬 아기장수 전설은 죽음을 당해 몰락하거나 좌절하는 육지부와 달리 대개 날개만 달린 채 영웅이 되기를 기대하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야기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엔 전승민들의 세계관, 자연관, 인간관이 배어있다. 제주전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중앙에 대한 갈망과 무형의 의식이 표현되고 화해의 결말 구조로 된 경우가 많다.

이처럼 제주섬에 흩어진 전설과 신화가 깃든 장소를 한데 모은 책이 나왔다. 제주학연구센터가 펴낸 '제주의 이야기 유산'이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제주의 전설과 신화가 살아있는 현장을 찾았고 그 가운데 지속적인 보전 가치가 있는 장소를 골라내 묶었다.

인물 전설은 문화·교육 콘텐츠로 활용 가치가 높다. 아기장수, 효자, 열녀, 충신, 입도조, 문사, 명사, 천의, 역사 인물 등을 자료와 사진을 곁들여 담았다. 무심코 지나쳤던 검은 빗돌에 새겨진 이름들이 얼마나 많은 사연을 안고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이들 인물은 역사적인 기사나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마을 정체성 확립 등을 위한 근거로 삼을 수 있다.

풍수 전설은 호종단과 안덕면 창천의 병악이 대표적이다. 역행을 배제하고 순리에 따른 덕을 베풀어 남을 이롭게 하면 하늘이 도와 명당을 내린다는 인식이 엿보인다. 자연물에 대한 경외감이 낳은 자연 전설로는 설문대할망, 한라산에 얽힌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제주의 신화지로는 보존 관리가 필요한 신당을 소개했다. 조천읍 신흥본향당과 와산불돗당, 서귀본향당, 성산읍 신천현씨일월당, 구좌읍 동복본향당과 김녕궤눼깃당 등으로 선과 악이 공존하고,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으로 돌아온다는 순환적 질서가 제시되는 제주신화를 품은 공간이다. 서른세번째 제주학총서로 비매품으로 제작됐다.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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