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학생이 자사고 폐지에 대해 말하다
2017-10-25 21:25
이승연 (Homepage : http://)
지난 10월, 우리 학교의 신입학전형 면접이 시행되었다. 올해 우리 학교에 지원한 중3 학생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면접을 보고, 노력 끝에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던 1년 전 나의 모습을 떠올리니, 재학생으로서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 올해 우리 학교의 경쟁률은 작년에 비해 눈에 띄게 낮아졌다. 크게 줄어든 경쟁률의 원인 중 하나로 학령인구의 감소를 들 수도 있을 테지만, 최근 정부의 자사고 폐지 움직임도 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특목고,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 주요 교육정책으로 떠올랐고, 논란이 불거진 지난 여름 이후 지금 현재까지도 큰 이슈이다. 얼마 전 정부는, 일반고 전환을 결정한 자사고와 외고에 최대 6억원의 재정지원책을 실시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 논란의 중심에 선 자사고의 한 재학생으로서, 조심스러우나 이에 대해 개인적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현재 자사고 폐지를 주장하는 측은 고등학교의 서열화에 주목하며 이것이 공정하지 못한 제도임을 말하고 있다. 아마 이 ‘불공정함’이라 함은,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데 있어서의 유연함을 가리키는 듯하다. 실제로 우리 학교1학년의 국어, 영어, 수학의 총 단위수 는 전체 단위수의 약 55%로, 절반을 조금 넘는다. 이는 국어, 영어, 수학이 대입에 중요한 과목이므로 입시에 유리해지기 위해서이다. 어느 학교건, 보다 많은 본교 학생들을 보다 좋은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당연하며, 학벌주의가 만연한 한국의 무한경쟁 사회에서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입시에 매달리는 것 또한 매우 당연하다. 지금 당장 대한민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학생들의 소질과 적성을 살리는 교육’보다는, 우리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과 학벌주의 타파이다. 대학교의 서열화로 인해 사회생활에 있어 차별을 받으며, 과정보다는 결과 중심으로 평가되는 사회구조 안에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자사고에 대한 비판은, 불합리한 교육제도 그 자체에 대한 책임을 자사고에게로 떠넘기는 것이다.

또 한가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사람들은 자사고가 입시준비 기관이라고 비판 하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자사고는 무조건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교내 프로그램과 기회들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우리 학교만 해도, 다양한 특별강의와 행사, 선택과목과 심화과목 수업 등,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하여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자사고가 학생들의 명문대 진학에만 집중하고 있기보다는, 학생들의 지식수준과 교양, 기본적 역량, 그리고 미래 인재로서의 자질 그 자체를 향상시켜주는 데에 목표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입시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능력을 강화시켜주는 내실 있는 체계를 통해, 애초에 그 시행 목적이었던 ‘다양성 있는 교육’을 충분히 잘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자사고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불합리한 제도’는, 자율성을 인정받은 학 교의 권한이자, “사립” 학교의 특성일 뿐이다. 또 많은 일반고들도 대입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고 학생들의 경험을 쌓아주고자, 특목고나 자사고 못지 않게 내실 있는 프로그램 들을 이미 갖추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사고 교육을 불공정한 제도라고 깎아 내리는 것은, 좋은 교육환경을 갖추지 못한 일부 공립학교들의 황폐화를 자사고 탓으로 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지막으로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사교육에 관한 논란이다. 통계에 따르면 특화 된 교육과정 편성에도 불구하고, 외고 학생들이 일반고 학생들보다 20% 사교육비를 더 쓴다고 한다. 이처럼 특목·자사고 학생들과 특목·자사고 입시를 준비하는 중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사교육에 들이는 비용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사실로부터 ‘특목·자사고 시행이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의문이다. 이미 대한민국에서 사교육 시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대로 커진 상태이다. 더 양질의 교육을 위해 서슴없이 사교육에 돈을 들이고 있는 사회적 흐름을 고려할 때, 자사고와 외고가 일반고로 모두 전환된다면, 상위권 학생들은 학교 수업보다 높은 수준의 수업을, 하위권 학생들은 더 낮은 수준의 강의를 원하기 때문에 지금보다 오히려 더 사교육이 성행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목·자사고 진학을 희망, 또는 희망하지 않는 개개인의 선택이 존중되고, 재학생에 한 해 각 학교의 특색을 살린 다양한 기회가 제공된다는 점에서, 이 시스템 자체의 시행 목적이었던 ‘개인의 능력과 요구에 맞추어진 다양성’은 그런대로 잘 이루어지고 있는 듯 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재 추진되고 있는 자사고 폐지가 정말 당장 필요한 움직임인지 의문이 든다.

그러나 자사고 폐지나 전환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이 정당하게 경쟁하고, 모든 학생의 노력이 존중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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