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준 그림의 끈… 병고에도 붓을 든 '노 화가'

마을이 준 그림의 끈… 병고에도 붓을 든 '노 화가'
하도 면수동마을회관서 10년째 그림 그리는 강창열 화백
파킨스병 투병에도 작업 이어가… "그림도 제주 닮아가"
  • 입력 : 2025. 05.07(수) 13:31  수정 : 2025. 05. 08(목) 21:18
  • 박소정기자 cosoro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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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 있는 면수동마을회관 2층 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강창열 화백.

[한라일보] 지난달 28일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 있는 면수동마을회관. 1층에 경로당이 있는 자그마한 건물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그림으로 가득한 공간이 하나 있었다. 300여점의 그림으로 둘러쌓인 이 공간에서 머리가 희끗한 모자를 쓴 노년의 화가가 캔버스에 색을 입히고 있었다. 서양화가 강창열(76) 화백이다.

부산 출신의 강 화백은 한국미술계의 아방가르드 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 온 작가다. 어린시절부터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왔지만 어려운 형편에 미대 대신 경영학과를 선택한 그는 졸업 후 결국 전업작가의 길을 걸었다. '열린 시간(Open Time)'이라는 주제로 50년여간 한국적인 소재를 독창적인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표현해왔다.

그는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이름을 알린 작가였다. 2005년 국내화가로는 유일하게 북경국제예술박람회에서 금상을 받았고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독일 등 세계 여러 국가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프랑스의 미술평론가 호제 부이오는 그의 작품에 대해 "독창적인 한국의 작가로 그의 작품은 매우 현대적이지만 태고적 한국의 뿌리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평했다. 또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운영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2010년에는 그의 작품이 고등학교 국어 국정교과서 표지로 실리기도 했다.

그가 제주에 온 건 지난 2014년. 녹록치 않은 현실이었지만 작품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그가 홀로 트럭에 작품들을 싣고 온 곳이 바로 한반도에서 가장 먼 곳인 제주였다. 하지만 작업실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가 정착한 하도리의 면수동마을 주민이 당시에 비어있었던 현재의 작업실을 알려줬다. 그렇게 그가 마을회관에서 그림작업을 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그는 제주와 고향인 부산의 섬인 을숙도와 닮았다고 했다. "제주하고 을숙도와 참 많이 닮았어요. 어린시절부터 외로움을 안고 살았어요. 섬에 친구가 없으니깐 누워서 하늘의 구름도 보고 돌담, 바다, 섬, 물고기, 새 등을 보는게 일상이었는데, 아버지가 쥐어준 크레용과 도화지를 이용해 제가 본 사물에 대해 그림을 그렸어요. 제 작품을 보면 이러한 사물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을숙도에서 지냈던 유년시절의 향수가 제 작품 세계에 영향을 준 것 같아요. 비슷한 느낌에 제주에서의 삶은 고향에 온 것 같이 정겹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고난이 찾아왔다. 파킨스병 진단을 받아 투병생활을 하게 됐다. 병 때문에 손도 떨리고 걸음도 느려지고 한쪽 눈도 보이지 않게 됐다. 그래도 그는 붓을 놓지 않고 그림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작업실이자 거주공간인 이 곳에서 그는 눈만 뜨면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이렇게 그림을 계속 그릴수 있는 건 마을 주민들의 배려 덕분이라고 했다. "마을 주민들이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주고 계세요.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 그림이 제주를 닮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제주의 삶이 제주를 그릴수 밖에 없도록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몸이 허락하는 한, 그릴 수 있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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