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14)남원읍 하례1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14)남원읍 하례1리
하천 생태와 경관이 보배로운 따뜻한 마을
  • 입력 : 2022. 09.02(금)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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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마을에 들어서면 우선 온화한 기운이 감돈다. 이 나라에서 연 평균기온이 가장 높은 마을이라는 선입견이 있어서 그러기도 하겠지만 지형의 흐름 자체가 어딘지 모르는 안도감을 준다. 동서로 하천이 흘러서 바다로 향하고 바다는 예촌망이라고 하는 오름이 막아섰으니 옛날 이보다 더 훌륭한 천연 요새가 어디 있었을까. 그래서일까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이 지역의 모습은 고려 충렬왕 26년(1300년) 14현으로 탐라를 나눌 때, 호촌현(狐村縣)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오지리 등으로 불리워 오다가 1875년 경에 하례촌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그 뒤 하례리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다가 1965년 하례1리와 하례2리로 구분되어 오늘에 이른다.

쇠소깍 동쪽 호촌봉(예촌망)은 하례1리와 바닷가 사이에서 경계를 이루는 형세다. 배를 타고 나가서 바라보는 경관은 거대한 자연성벽이 아름다운 자태로 서있는 느낌이다. 화산의 개념으로는 측화산으로 꼭대기에는 넓고 평평한 구릉지대가 있으며 동서로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원추형 돔 화산체이다. 해안경비에 용이한 위치적 특성 때문에 조선시대에 봉수대를 설치하여 해안 방어에 일익을 담당했었다. 하례1리가 보유한 자원 중에 망장포는 제주 포구의 옛모습을 가장 온전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작은 목선들로 어로활동을 하던 시기에 조상들의 어로활동과 삶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귀중한 자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

주변 마을 주민들에게 하례1리 사람들의 성품과 특징을 물어보면 한결같이 이런 대답을 한다. '부지런한 사람들'. 온화한 성품에 부지런 부자들이 많은 마을이라는 인식이 공통적이다. 노는 모습을 못 봐주는 기질이 마을공동체의 문화로 자리 잡은 까닭이라고 한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해야 동네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삶. 말이 아니라 일로 승부를 내는 근성이 깊이 뿌리 내려 있는 것이다. 허지성 이장을 통하여 듣게 되는 마을 발전 전략을 위한 사업들을 보면 일개 리 단위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 총 33개다. 일 욕심이 이 정도면 기네스북 깜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눈에 띄는 굵직한 사업들만 훑어 봐도 야무진 포부에 일꾼다운 면모가 보인다. 마을이 직면한 현안이기도 한 일들이기도 하다. 경관생태 분야로 큰당복원, 효례천 전망대조성, 걸쇠오름 쉼터 조성. 소득체험 사업으로 황칠나무를 이용하여 소득사업화, 마을목장트레킹 코스 개발, 바다체험장 사업추진. 문화복지 분야로 마을변천사 책자 발간, 마을주민 자서전 편찬사업. 마을공동체 역량 강화를 위해 마을 공동 홈페이지 제작, 스토리텔링 자원 발굴.

여기에 활자화 되지 못한 수많은 일들이 '부지런 1번지'의 명예를 걸로 차곡차곡 이룩해 나갈 것이다. 일은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이뤄지는 성질이 있으니까.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이 곧 마을공동체 정신이기에 더욱 엄숙하게 와 닿는다.

하례1리의 생태 환경 가치는 유네스코가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한 효례천(주민들이 쓰는 효돈천 명칭)의 '개소'와 '남내소'풍광은 일품이다.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관광지 마을. 이러한 엄청난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역으로 주민들의 재산상의 불이익이나 개발에 소외되는 경우를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의미는 지구인의 지속적으로 공유해야 할 가치를 인정한 것이며 환경부가 생태관광자원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은 전 국민이 혜택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다. 명성을 얻었다는 것이 대단한 혜택이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관료주의적 근성이 있다면 하례1리 주민들에게 불이익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 지 각성해야 할 일이다. 그 특수함 때문에, 어떤 불편함이 동반 되게 되는 것인지 면밀한 파악이 필요하다. 최소한 마을공동체가 추구하는 공익적인 사업과 관련하여 지속적인 민관협력 모델이 나와야 한다. 하례1리의 생태환경 의지는 그 자체로 자긍심이 되었다. 생태협의체와 농촌휴양마을 조직들이 자발적이며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 성과 또한 대단하다. 환경보존에 대한 의식이 마을공동체의 미래와 직결돼 있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주민소득과 실질적인 결합이 가능한 일들을 제공하여야 할 주체는 생태마을로 지정한 행정 쪽에 있다. 말과 글이 아니라 하례1리 주민들처럼 일로 답해야 한다. <시각예술가>





우금 가는 길
<수채화 79cm×35cm>
섬 제주를 가장 아름답게 하는 것은 길이라는 표현에 공감하게 되는 곳이 있다면 여기 망오름 서쪽 냇가로 난 이 길을 보여줄 것이다. 경이로운 풍광이 있는 것도 아니며, 특출하게 뛰어난 그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묘한 매력이 있다. 정감이라고나 할까. 좋은 사람과 손잡고 걸어가고 싶은 그런 길이다. 이 길로 내려가면 우금포와 쇠소깍이 있는 바다가 나온다. 바다가 가까이 있음에도 바다가 보이지 않는, 냇가 옆으로 따라가는 길이다. 처서가 지났지만 아직도 맹하의 뜨거운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면서도 강렬하다. 왕성한 초록의 향연을 눈부신 햇살로 거대한 원근의 짜임 속에서 펼치고 있는 중이다. 냇가의 바위들 모두가 자연이 빚은 조형물들이다. 그 귀중한 예술품을 감상하며 걸어가는 길. 넓지 않아서 좋다. 그래서 오래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꾸밀 이유도 없다. 옆에 하천이 모두 알아서 해줄 것이니까. 그리는 내내 '아직'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제주의 옛 길이 남아 있다는 그러한 향수. 남쪽 대로변에서 우금포까지 가는 이 길은 낭만주의자들을 위해 영원히 남겨뒀으면 하는 소망을 그림 속 태양광선처럼 뜨겁게 담았다. 필자는 이 길은 심하게 좋아하여 폭우가 내린 뒷날이면 찾아가 물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꾸밈없는 청량감으로 와 닿는다. 하례1리 조상님들이 부르던 명칭이 너무 정겹다. '우금 가는 길'. 우금의 의미가 그냥 포구가 아니라. 뭔지 모를 궁금함을 향하여 가는 길이라 여기면서.



한가름길에서 지귀도를 보며
<수채화 79cm×35cm>
오르막 길 위에서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은 멀리 지귀도(속칭 찌꾸섬)을 바라보다가 집이며 나무, 그리고 전봇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광선공간을 연출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여 그 풍성한 시간성을 표현하였다. 리사무소 건물 앞이다. 마을 어르신들의 말씀에 의하면 설촌 당시부터 오래된 성씨들의 장손들 집이 이 부근에 대부분 있다고 한다. 중심지였다는 의미로 읽힌다. 마을 전체가 집이면 바다는 마당이다. 앞마당에 섬 하나가 떠있다. 하례1리 옛 조상들이 이 높은 지대에 주로 집을 지은 이유가 혹시 이 풍광을 탐하여 지었던 것은 아닐까? 오르막과 내리막을 힘든 불편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시대의 삶을 반추한다. 조상들도 그렇게 살았으니 나도 당연히 그렇게 살고 있다는 행복한 숙명론을 떠올리며 그렸다. 근경 오른쪽 집 유리창에 반사된 과수원의 빛은 어찌 이리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지. 거대한 그림자 속에 내리막길은 내려가고 있고 빛의 각도들이 생성시키는 공간감들이 모여들어서 화면 전체의 현장감을 그려낸다. 태양 빛을 받는 모든 존재는 소중한 가치를 지녔다는 찬미를 돌담에서부터 지붕에 이르기까지 부여하며 하루의 의미를 되새겼다. 눈부신 광선 속에 가둬진 저기 지귀도는 평화로움 자체가 바다에 떠있는 것. 도식화 된 구도로 설명될 수 없는 시각적 상황을 빛의 시간성은 극복하고 또한 더욱 아름다운 가능성을 발견하여 열어간다. 같은 장소가 다른 시간에 의해 다르게 느껴지는 이치를 여기에서 새삼 다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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