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시간의 궤적
  • 입력 : 2022. 06.03(금)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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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시오페아'.

한 인간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그리고 대개는 가장 오래 관계를 맺는 것은 아마도 가족일 것이다. 가족의 구성원 중 특히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는 특별하다. 부모와 자식의 연을 맺는 일은 실타래가 맘대로 풀어지지 않는 연을 하늘에 날리는 일과도 닮았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애써 풀어냈지만 자주 엉키고, 쉴 새 없이 바람에 흔들리며 가끔은 너무 먼 곳으로 떠나버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는 연 날리기를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연과 타래를 잇고 있는 가느다란 실은 의외로 단단하고 질기기도 해서 높고 넓은 하늘 아래 마치 끈 없이 유영하는 것처럼 보이는 연이 어느새 다시 실타래 가까이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렇듯 단순하게 공식화하기 어려운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는 따라서 모든 경우에서 특수하다. 모든 연인의 언어가 타인의 오독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부모와 자식 사이의 난제 또한 그 누구도 감히 정답이라 조언을 건네기 어려운 고유성을 지닌다. 단순하지만 복잡한 관계인 부모와 자식이 그들의 인생에서 시간을 공유하는 것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 '부모 맘대로 되는 자식은 없다'는 말처럼 유년을 지난 자식들에게 부모란 가장 가깝고도 먼, 타인이 되기도 하고 부모에게도 자식은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긴 시간을 공유하는 것 이상으로 이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의 다른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받아들이는 일이다.

 '러시안 소설', '조류 인간' 등의 작품을 쓰고 연출했고 '동주'의 제작과 각본을 맡기도 했던 신연식 감독의 신작 '카시오페아'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이 관계의 특별함과 특수성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유능한 변호사이자 엄격한 엄마인 수진(서현진)은 30대의 나이에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게 된다. 수진의 하나뿐인 딸 지나(주예림)는 수진이 진단을 받기 전 미국에 있는 아빠 곁으로 조기 유학 길에 오르고 수진의 곁에는 이제 일 때문에 유년 시절을 함께 하지 못했던 수진의 아빠, 인우(안성기)만이 남게 된다. 서로에 대해 여전히 어색한 딸과 아빠는 이제 알츠하이머로 인해 점점 어린아이처럼 변해가는 수진의 시간을 함께 감당해야 한다. 알츠하이머는 기억을 잃는 병이다.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속도로, 누구도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로 한 인간과 그 주변을 낙담과 부담의 늪에 빠뜨리는 이 망각의 질병은 육체의 훼손 이상으로 고통스럽다.

 '카시오페아' 속 수진은 누구보다 명석하게 일을 처리하는 변호사이자 상당한 교육열로 자식을 가르치는 엄마다. 이렇게 똑똑하고 자립적인 딸 수진의 대학 입학도, 결혼도 함께하지 못한 인우는 수진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대견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수진에게 아빠인 인우는 특별한 기억으로, 의지할 존재로 각인되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알츠하이머로 인해 자신의 유일한 보호자이자 양육자가 된 아빠의 손에 맡겨진다. 알츠하이머는 수진으로부터 많은 것을 앗아간다. 행복했던 기억도, 분주했던 날들도, 간절했던 순간까지 거의 모든 것을. 누구보다 총명하고 눈부셨던 그녀는 점점 희미하게 탈색돼 바래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수진이 비참해지는 자신마저 알아볼 수 없게 되는 순간에 그동안 잡을 수 없었던 아빠의 손을 잡게 되고 서른을 훌쩍 넘길 때까지 잡기 어려웠던 딸의 손을 이제는 놓쳐서는 안 되는 인우가 수진의 손을 잡으면서 이 둘은 위태롭지만 균형을 잃지 않고 조금씩 어딘가로 나아간다. 둘의 속도는 느리다. 성장이라는 것이 정해진 방향을 향해 세차게 나아가는 일이라면 수진과 인우의 관계는 정반대를 향한다. 정해지지 않은 방향이라도 멈추지 않고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 그래서 길을 잃었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는 것.

 점점 더 기억을 잃어가는 수진과 점점 더 나이 들어가는 인우 그리고 이들의 속도와는 또 다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수진의 딸 지나까지 '카시오페아'는 각기 다른 시간에 태어나 한 화분에 심어진 식물들의 모습을 닮은 가족 삼대의 시간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싹이 움트고 줄기가 굵어지며 잎이 무성해지고 꽃이 피는 그리고 차례로 다시 꽃이 지고 잎이 시들고 줄기가 물러지는 그 자연스러운 식물사는 인간사와도 다르지 않다. 가족이라는 공간 안에서 우리는 가장 가까운 타인과 자연스러워서 더 어렵고 또 힘든 시간의 흐름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것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공유했던 시간을 통해 서로에게 충분한 의미로 남겨지는 것. '카시오페아'는 누군가에게는 그저 희미하게만 느껴지는 그 의미가 낯선 어둠 속에서 어떻게 빛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진명현 독립영화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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