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6] (2부 한라산-2)우리나라의 산 이름 일반명 산이 점차 고유명사로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6] (2부 한라산-2)우리나라의 산 이름 일반명 산이 점차 고유명사로
한반도의 수많은 산, 그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 입력 : 2022. 05.24(화)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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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으로 매봉이라는 땅이름이 많이 발견된다. 서울 사람들이 많이 올라가는 청계산 정상도 매봉이다. 매가 앉아있는 모습과 비슷하여 매봉이라 한다고들 설명한다. 그러나 매봉터널 위의 매봉을 보면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능선을 가진 모양이 매의 모습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인다. 즉, 매봉은 매의 형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 외도 매봉은 산 이름으로 무수히 발견된다.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과 예천군 상리면과 용문면의 경계에 있는 산도 매봉이다. 높이는 820m로, 응봉이라고도 한다.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경반리에도 해발고도 929.2m의 매봉이 있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의 병천면 용두리와 탑원리 경계에 해발고도 167m의 산도 매봉이다. 응봉, 응봉산, 매봉산이라고도 한다. 이 매봉을 한자로 쓰면 매 응(鷹)자를 써서 응봉이나, 응봉산이 되는데, 성동구에 있는 응봉동이라는 동명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원래 산의 우리말은 미, 뫼이다. 그것이 변해 미, 뫼, 매가 된 것이다.

설악산은 '설악'에 '산'이 덧붙은 사례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산마다 이름이 있지 않아 그냥 뫼였다. 그러던 것이 그 산꼭대기는 정상을 나타내는 봉자를 더하여 매봉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나 자연의 이름을 지을 때 부르기 쉽고 안정감이 있는 세 음절을 좋아하기 때문에 매봉 뒤에 산자가 붙어서 매봉산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일종의 언어습관이 더해진 것이다. 그것을 한자로 쓰면 응봉산이 된다. 여기서 매나 응의 뜻도 산이고 봉의 뜻도 산이므로 매봉산이나 옹봉산은 산·산·산의 뜻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매봉산, 응봉산이 많게 된 것이다. 설악, 치악 등에도 山자를 붙여서 설악산, 치악산, 화악산, 북악산으로 부르게 되어, 악(岳)자가 산 이름 중간에 있게 된다.

노고산, 노고봉, 노고단 등 노고(老姑)라는 땅이름을 가진 곳이 많이 있다. 노고산은 보통 그 지방에서 할미산으로도 부르는데, 노고(老姑)의 뜻을 한자로 풀어보면 '늙은 할머니' 즉 할머니라는 뜻이 된다. 할미산의 땅이름 유래 같은 것을 들어보면 대개가 할머니의 모습, 할머니의 등이 굽은 모습이라서 그렇게 부른다고 돼 있으나 그것은 단지 땅 이름이 생긴 후에 만들어진 얘기이고, 실제는 '한미'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미는 '큰 산'이라는 우리말이 변해 할미산이 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이름으로 강남구 남쪽에 헌릉과 인릉을 품고 있는 대모산이 있는데 대모산의 옛날 이름이 대고산(大姑山)이다. 큰 산이 한미가 되고 이게 대고산이 됐다가 지금은 대모산이 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돌고 돌다 보면 원래의 출발점은 어딘지 모르게 사라져 버리고 지금 같은 문자만이 남아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저 무책임하게 풀어놓은 것이 원래의 이름으로 둔갑해 버리기 일쑤다.



민족 종교, 불교 영향 이름 많아


계룡산엔 가장 높은 봉우리인 천황봉을 비롯해서 연천봉, 천왕봉 등이 상봉을 이룬다. 지리산의 정상은 천황봉이다. 속리산의 봉우리도 천왕봉, 천황봉이 있다. 이처럼 '천(天)'자, '황(皇)'자, '왕(王)'자가 들어가게 된 것은 산을 신성하게 생각하는 우리 민족의 종교와 정서가 산 이름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 노고단은 큰 산이란 뜻의 '한 미'가 '할미산'. 이걸 한자로 쓴 이름이다.

북한산 문수사 뒤에 있는 봉우리가 문수봉이며 그 동남쪽에 보현봉이 있다. 우리나라의 문수신앙은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에 의해서 정착되었다. '화엄경'에 의하면 중국 산서성 청량산(일명 오대산)을 문수보살의 상주처라고 했는데 자장은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가지고 와서 중국의 청량산과 비슷한 지형인 오대산 중심부에 적멸보궁을 건립하고 문수신앙의 중심도량으로 만들었다가 그 후에 이 영향으로 전국적으로 청량산이라는 지명이 생기게 됐고 오대산도 문수신앙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도솔산, 도솔봉, 두솔산, 두솔봉은 미륵이 현재 천인(天人)들을 위해 설법하고 있는 도솔천에 태어나고자 하는 염원이며 미륵산, 미륵도, 용화산, 용화동 등은 미륵보살이 보다 빨리 지상에 강림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은 지명이다. 사자산, 사자봉, 사자암(절·바위) 등 사자를 뜻하는 지명이 많이 있다. 이 역시 불교를 상징하는 사자에서 온 것이다.



특이한 이름 한라산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한라산은 오늘날 제주어에서 할락산으로 발음하고, 두모악, 하로산, 한로산, 할락산, 할로산, 할로영산으로도 부르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를 갸웃하게 하는 것은 이 '한라산'의 뜻이 '운한을 끌어당길 만큼 높다'라고 하는 것이다. 제주도민 열이면 열이 이렇게 알고 있다. 이건 한라산(漢拏山)의 한자 풀이다. 그렇다면 한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에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지어냈다는 말인가? 한자가 들어오기 전엔 한라산이라는 말이 없었는가? 이게 문제다.

‘한라산을 지칭하는 이름은 두믜오름, 두리메, 가메오름은 그 생김새에 붙인 이름으로 그 산이 얼마나 넉넉한지 단박에 일깨워 줍니다. 영주산, 할로산, 하로산, 한로영주산, 한락산 등은 신들의 이야기와 백성들의 노래 속에 있어, 제주에 뿌리내린 사람들의 다양한 삶이 반영된 이름으로 보입니다.’ 2013년 9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개최한 제주국립박물관 기획전시 ‘한라산’ 도록의 머리말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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