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5] (2부-1)한라산 이름은 한둘이 아니다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5] (2부-1)한라산 이름은 한둘이 아니다
'한라산' 산 이름 언제부터, 누가 가져왔을까
  • 입력 : 2022. 05.17(화)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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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통·연대 구별로 추정하는 언어
인류에 수많은 의미를 갖는 ‘산’
음상 변이 없이 유전 가능성 커


제주도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을까? 사람이 살려면 적어도 동식물이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필요조건일 것이다. 의식주를 해결하려면 안정적으로 갖춰진 생태계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화산활동이 마무리 단계에 돌입하는 시점을 고려해 2만5000년 전 쯤일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 또 하나는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변동이다. 구석기시대에 고인류가 바다로 둘러싸인 고립된 섬으로 이주하기 위해서는 대륙으로부터의 이동수단이나 연륙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제주도와 한반도 사이 해저 지형은 대륙붕이 발달해 있어 평균수심 100m 내외이며, 가장 깊은 지점이 120m 이상이므로 빙하기 동안 육지와 연결됐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최후빙하기의 최성기는 극심한 추위로 인해 지구상의 빙하가 최대 규모로 확장됐던 시기로, 그보다 전인 약 2만7000년 전부터 2만년 전 사이는 제주도가 대륙의 일부였을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것이다. 바로 이 시기 유적이 서귀포에서 발견됐다. 천지연 입구 바위 그늘집 생수궤 유적이다. 이 유적에서 측정한 절대연대 중 가장 오래된 연대는 기원전 26.9±3.3으로 나왔다. 길게는 3만년에서 낮게 잡아도 2만4000년 전 유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출토된 석기의 제작기술이 제주지역 여타의 구석기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들과는 구별되는 것이었는데 이는 계통이 다른 집단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인지, 집단의 성격과 관련해 주목을 끌고 있다.

2만4000년 전 유적 천지연 생수궤.

생수궤 유적 이후에는 중요한 유적으로 고산리 유적이 있다. 지금부터 대략 1만1000여 년 전 유적이다. 이들은 또 어디서 왔다는 것일까? 이 두 집단은 같은 계통이었나? 민족의 형성과 관련해 이렇게 고인류를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언어의 진화와 관련해 중요할 수 있다. 인도유럽어에서는 9000년 전, 일본어에서는 1만1000년 전의 언어의 파편으로 추정되는 말들이 밝혀지고 있다.

한민족의 형성과 관련해 그동안 여러 의견 제시가 있었는데, ①바이칼 지방 ②카프카스 지방(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지방) ③알타이 지방 ④몽골 지방 ⑤시베리아 지방 ⑥고(古)중국 북부지방으로부터의 이동과 이입 등으로 정리된다.

그렇다면 제주도 선주민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불과 1000여 년 전 탐라 시대만 하더라도 고구려, 백제, 신라, 일본과 소통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긴 세월 동안 세계 각처에서 이주한 고제주인들은 어떤 언어를 썼을까? 이웃들과 소통할 수 있었을까? 저기 만년설로 덮여 있는 저 산의 이름은 같이 불렀을까?

산은 높다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게 됐을 것이다. 높으므로 멀리서도 보이고, 하늘에 닿을 수 있는 곳이다. 뭔가 하늘과 소통하고 하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일 것이다. 하늘에 닿는 것은 인간의 오래된 꿈이었으니까. 산에는 먹을 것도 풍부하고 입을 옷도 구할 수 있고 비바람과 맹수로부터 피할 곳도 있다. 단군신화에선 환웅이 태백산에 하강해 신시를 열 때 산은 하강처이자 인간 세계의 중심이다. 민족의 발생과 생활의 근거지라는 상징성을 지니는 것이다. 신이 하강하는 산은 신을 모시는 성역으로서 산악숭배의 기저가 되며, 때문에 자연적으로 산신이라는 개념도 생겨나게 된다. 그러므로 단군이 나중에 입산해 신선이 됐다는 것은 산 자체를 타계 또는 피안을 상징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제주인은 어디서 왔을까? 알타이산맥의 한 설산 세츠세그산.

산은 공동체의 대지, 풍요와 삶을 위한 어머니의 품으로 상징하기도 한다. 산을 수호신으로 상징할 때는 남성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국가나 공동체의 수호자로 산을 섬기게 되면서 진산의 개념을 빚어냈다. 우리나라는 곳곳에 이런 관념이 퍼져 산신제를 하는 등 신앙의 형태가 퍼져 있다. 산신제에서는 태양신에 접근하려는 높은 곳을 의미하는 산마루 제단을 통해 은혜에 감사하고 화를 물리치며 은혜에 감사한다. 제주도에서도 이런 전국적 현상과 합치하는 개념이 오랜 기간 지속해 왔다.

반면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높은 곳은 벼락이 치기 쉽고, 깊은 산은 길을 잃어 헤매다 죽을 수도 있으며, 추위와 배고픔과 웅장함에 기가 질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머니, 아버지, 나, 배고프다. 손, 발 등과 같이 가장 먼저 그리고 자주 사용하는 말의 하나가 됐을 것이다.

그러면서 산 이름은 자연히 발생하게 되고 오랜 기간 이어져 오게 되는 것이다. 지리적 개념의 처음이랄 수 있는 방위, 방향, 심지어 날씨, 계절과 시간까지도 한라산과 연관시켰을 것이다. 이렇게 자주 사용하는 말이므로 이건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생물학적으로 하우스키핑 유전자에 속하고, 언어학적으로 일꾼 단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꾼 단어는 자주 사용하는 나머지 변할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러므로 '한라산'이라는 말은 오래전에 제주어에 유입했고, 그 이후엔 음상이라고 하는 형질에 변이를 일으킬 새 없이 그대로 유전해 왔을 것이다. 언어학적으로 보면 '상속'해 온 것이다. 앞으로 이 부분은 계속 다루겠지만 이 한라산이라는 산 이름은 언제부터 불렀을까가 역시 중요한 문제다. 한라산이라는 산 이름을 가져온 사람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한라산은 그 이름이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전국에 많은 산이 있지만 이와 유사한 이름이 없고, 어떤 단어에서도 유사한 음상이나 뜻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라산은 왜 이렇게 독특할까? 우리나라 산 이름의 예를 몇 가지 들어보면 이 한라산의 이름이 얼마나 독특한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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