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부서진 포옹
  • 입력 : 2021. 06.04(금)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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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트로덕션'.

파도가 없는 바다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강이나 호수와 달리 바다는 파도가 있어서 바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파도의 일렁이는 모양과 출렁이는 소리는 바다를 떠올릴 때 반사적으로 함께 다가오곤 한다. 한없이 바라볼 수 있는 어떤 반복의 움직임이지만 막상 바라보는 시선을 두 발로 옮겨 파도를 몸으로 맞닥뜨리는 일은 늘 주저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가 술에 취했거나 사랑에 취했거나 슬픔에 젖었을 때는 머뭇거림 없이 파도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 안에서는 파도의 모양과 소리가 하나가 되어 얼얼하게 차갑고 부드럽기까지 한 두드림으로 느껴지곤 했다. 발목을 타고 올라와 허벅지로 아랫배로 가슴팍 위로까지 부딪혀 오는 파도 속에서 나는 과장되게 웃거나 소리 죽여 울었던 기억이 있다. 간절하게 빠져나오고 싶기도 했고 조금 더 머물러 그 아래로, 더 멀리로 가보고도 싶었다.

 홍상수 감독의 25번째 영화 '인트로덕션'의 마지막 장면은 어느 겨울날 그 파도 속으로 들어가는 한 남자의 장면을 보여준다. 흑백으로 찍힌 영화 속의 이 장면은 느닷없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했다. 겨울 해변에서 두툼한 외투를 벗고 바지까지 벗은 한 남자는 조심스럽게 파도 쪽으로 향한다. 그는 뛰어들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확신을 가지고 걸음을 옮긴다. 파도가 치는 겨울의 바다로 들어가는 이의 뒷모습에는 어찌하여 표정이 새겨져 있었을까.

 걸어가는 이의 뒷모습에 생긴 감정의 표정들, 이를테면 슬픔, 번뇌, 고통, 체념 같은 단어들이 너무 생생해서 나는 그가 죽음을 예고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를 되돌려 세워 겨울 파도의 생생한 감각으로 인해 화들짝 놀란 얼굴을 어서 보고 싶었다. 다행히 영화는 주인공을 되돌려 세워 생의 감각을 일깨운 웃음으로 관객들을 마주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어지는 친구의 포옹. 괜찮니 춥지 어서 몸을 녹이자며 어깨를 감싸 안고 품을 내어주는 친구가 다행스럽게도 바다의 뒤에 그리고 주인공의 뒤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에 나는 세게 철렁하던 마음이 부드럽게 잦아들었고 심지어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심정이 들었다. 나의 앞에 펼쳐진 파도와 나의 뒤에 서있던 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동시에 주인공의 몸을 덮쳤던 파도 또한 그를 안아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기고 안아주고 출렁이고 다독이는 일. 몇 번의 파도가, 몇 번의 망설임이 더 있을지 짐작도 하지 못하지만 인생의 고난이 온전히 혼자의 몫이 아니라는 위안이 '인트로덕션' 속에 있었다.

 파도를 떠올리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로마'또한 자연스레 떠오른다. '로마' 또한 '인트로덕션'과 마찬가지로 흑백 영화이기도 하다. 멕시코시티에 있는 로마 지역을 배경으로 한 중산층 가정의 젊은 가정부인 클레오의 시선을 따라가는 이야기인 영화 '로마'는 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촬영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 전 세계 평단과 관객의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상처와 연대라는 드물지 않은 이야기를 다루는 이 작품은 인생의 격랑을 헤쳐나가는 강인한 여성들의 또렷한 얼굴을 매우 드물게 발견해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로마'속의 인물들은 세찬 파도를 여러 차례 마주한다. 그 파도는 연인 사이에서, 가정 안에서, 사회라는 틀 안에서 그리고 인생이라는 여정 속에서 예기치 못하게 다가와 크고 작은 쓰라림을 남긴다. 일견 고요한 듯 보이지만 웅장한 목소리로 관객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전하는 이 영화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는 실제 바다와 파도의 생생한 질감을 선사한다. '로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수영도 할 줄 모르는 클레오는 바다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거친 파도 속으로 주저 없이 몸을 던진다. 파도는 세차게 부딪혀 오지만 그녀의 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 일말의 불안을 잠식하는 결연한 클레오의 표정은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어떤 태도로 맞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격렬한 파도의 움직임과 강인한 클레오의 얼굴이 함께 스크린에 출렁이고 결국 아이를 구한 클레오가 모래사장에서 가족들과 함께 뜨거운 포옹을 나눈다. 소리 없는 포옹의 뒤로 파도의 소리가 조금은 고요해졌다고 느낀 것은 나의 안도 때문이었을까. 혹은 포옹의 무게 때문이었을까. 여러 의미로 이 가족의 포옹은 부서진 마음을 완전히 재건한다는 느낌이었다.

 출렁이는 마음의 소리들이 몸으로 터져 나올 때가 있다. 오래 웅크린 고독은 결국 우리의 어떤 문을 세차게 열게 한다. 이 고통과 분노를 들어줄 사람도, 하고 싶은 상대도 없다고 여기는 그 순간에 우리는 스스로를 뒤흔들어 놓고야 만다. 주저앉기도 하고 숨어 버리기도 하고 사라지고 싶어 하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의 가속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스스로를 재촉하기만 할 때 우리의 뒤에는 소리 없이 품을 내어줄 채비를 하고 있는 누군가가 없지 않을 것이다. 성난 마음을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볼 때 당신을 뜨겁게 안아줄 그 누군가를 못 본 척하지 않았으면 한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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